"-2000m 고원에서 세상으로 삼투하다

일본의 중앙 ‘주부(중부)지방’은 ‘산의 나라’ 일본의 면모를 남김없이 과시하는 곳. ‘일본 알프스(Japan Alps)’라는 거대한 산맥이 불뚝거리며 산악미의 절정을 이룬다. 나가노현 마츠모토에서 기후현 다카야마, 이시카와현 가나자와로 이어지는 여행길은 일본 알프스의 매력을 관통한다. 더해서 산악지대의 고립성만이 간직할 수 있는 고풍스런 역사유적과 전통문화가 고스란하다.



-360도 대 파노라마의 벅찬 감동

“오르고 나면 별안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한동안은 세상의 천정이 열린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일본 나가노현 ‘우츠쿠시가하라 고원’.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 면적 600ha의 광활한 규모로 펼쳐진, 일본에서 제일 넓고 가장 높은 고원 용암대지다. 이른바 ‘일본 알프스 전망대’로 불린다. 2000m가 넘는 그 높이와 동서 약 5km, 남북 약 8km에 이르는 그 넓이에서는 물론 일본 산악미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산 좋아하고 자연회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가히 이상향이라 할 만하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춘하추동 사계절 내내, 조석주야 불문하고 그 유명한 ‘360도 대 파노라마’의 웅대한 향연이 항상(날씨만 좋다면) 펼쳐진다. 동쪽과 북쪽으로는 일본 최고봉(3776m)인 후지산을 비롯해 ‘야스카다케 연봉’ 등 고봉준령들이 장엄한 자태로 늘어서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일본의 ‘북 알프스’ ‘남 알프스’ ‘중앙 알프스’가 어깨동무로 맞이한다. 높이 2km쯤 되는 다리에, 면적 180만평쯤 되는 거대한 테이블 주위를 3000m를 넘나드는 높직높직한 산마루와 봉우리들이 커튼처럼 둘러싸고 있는 셈이다.

대충 셈을 해도 3000m가 넘는 봉우리와 산들이 22개에 이르고, 2000m 이상은 무려 64개에 이른다. 백두산(2750m)과 한라산(1950m)의 높이를 감안하면 가히 하늘을 향한 끝없는 키 겨루기다. 일본의 ‘베스트 10’ 산들을 모두 이곳에서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한 걸음 떨어져 조용히 사색하는 관조의 미가 두드러진 곳이다.

어디 조망의 매력뿐이겠는가. 봄이면 200종이 넘는 각종 희귀한 야생화들로 고원초원은 온통 화사하고, 여름이면 앙증맞은 얼룩젖소들이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고원목장이 상쾌하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의 화려함에 눈부시고, 겨울에는 말없는 설산과 기기묘묘한 눈꽃에 눈 시리다. 새벽녘 해돋이는 온화하기 이를 데 없고 해질녘 해넘이는 차라리 장렬하다.

-닿을 수 없는 세상은 속절없고

산을 좋아했던 일본의 한 시인은 “세상의 천정이 열린 듯 하다”며 이곳의 절경을 절찬했다. 그러나 호우 앞에서 세상의 천정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고원대지를 애애하게 뒤덮은 안개 뭉치는 완강하고 드셀 뿐이어서 시선은 채 10m도 날지 못하고 불투명의 허공 속에 고꾸라졌다. 기신기신 안개를 뚫고 전해왔던 목장의 워낭 소리마저 없었다면 그 공간은 백색적막 자체였다. 그 앞은 하염없이 막막했다. 안개 저 너머에 있을 세상에 닿을 수 없었고, 닿을 수 없는 세상은 여전히 파악불능의 존재였기에.

세상을 가려버린 비구름과 안개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고원 최고봉(2034m) 목 좋은 곳에 기세 좋게 가부좌를 튼 ‘오우가토 호텔’ 여주인장(오카미)은 천정이 열린 세상의 모습을 입심 좋게 자랑했다. 하얀 스크린 위로 시간, 계절, 방향을 초월한 세상의 진경이 끊임없이 채색됐고 그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호위하듯 고원을 에두른 수많은 고봉준령들은 자진모리에서 진양조, 휘모리를 질서 없이 넘나드는 여주인장의 재담에 맞추려는 듯, 걸음을 재촉하다가도 느릿느릿 걷고, 돌연 위로 급격히 내빼다가 힘없이 주저앉기를 거듭하며 360도 대 파노라마의 변화무쌍한 곡선을 그려냈다. 구름 위에서 덩그러니 춤추는가 하면 붉은 태양을 내밀며 다소곳하다. 카메라의 ‘파노라마 촬영’ 기능을 꼭 활용해야지 싶다.

호접몽인 듯 몽환의 한바탕 잔치가 끝나자 세상은 다시 탁하고 아득했다. 백색 공간 속을 갈피없이 유영하는 저 멀리 까만 새 한 마리. 검은 흔적이 사라질 듯 말 듯 아슬아슬 명멸하다 그예 가뭇없이 사라졌다. 탁함 너머 세상으로 삼투한 듯이.


- 산중 노천탕의 몽롱함에 취하리니

이 여행길은 높이에서 비롯된 산악미가 고갱이다. 일본 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항(마츠모토공항), 초등학교(미나미마키 초등학교), 현청(나가노현청) 및 시청(치노시) 등이 이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높이를 실감할 수 있을 터.

우츠쿠시가하라 고원이 갖는 차분한 관조의 미, 일본 알프스에 깃들여진 웅장함, 여기에 수많은 고원 호수와 계곡들이 호젓한 미소로 이곳의 산악미를 완성한다. ‘가미코지’가 선두다. 나무와 돌과 하늘과 구름은 그대로 호면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또 하나의 대자연을 만들어낸다. 바람 살랑대 물결 일렁이면 복제의 세상은 실제의 세상을 초월하는 신비감으로 춤추며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정도라고. 5월~11월까지만 개방되는데 이 기간 동안 무려 200만명이 찾을 정도다.

웅장함과 호젓함을 관조하고 싶다면 ‘신호타카 로프웨이’에 오르라. 로프웨이의 움직임에 따라 파도처럼 밀려왔다 물러나기를 거듭하는 북알프스 산들의 절경도 절경이지만 로프웨이 정상에 있는 ‘센고코엔치’ 정원 등을 탐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악지대에 온천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거꾸로 ‘온천왕국’이라 불릴 만큼 온천수도 넘쳐난다. 유명 온천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시라호네 온천’은 그 색깔과 냄새가 독특해 대표적인 산악 온천지역으로 꼽히는 곳. ‘하얀 뼈 온천’이라는 뜻처럼 온천수가 진한 우윳빛을 띠고 있고 톡 쏘는 냄새가 특징이다. 원래 이름은 ‘시라부네 온천’. 20세기 초 일본의 한 저명작가가 이 곳 온천수에 나뭇가지를 띄웠는데 곧 하얀 뼈처럼 변했다고 해서 ‘시라호네’로 더 유명해지게 됐다고. 위장병과 피부에 특히 효과가 높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소주에 온천수를 타서 먹기도 하고(온센 미즈와리), 온천수로 죽을 만들기도 한다.
‘온센 미즈와리’의 몽롱함은 날 선 신경을 달랜다. 산 중 깊숙한 노천탕의 후끈한 열기는 세파에 싸늘해진 몸을 데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곳 산악미의 진경일 수도 있다.

+++++플러스 α+++++

해발고도 약 2000m인 우츠쿠시가하라 고원은 한 여름이라고 하더라도 도심지역보다 온도가 낮아 긴 옷이 필요할 때도 많다.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대략 1도씩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

우츠쿠시가하라 고원 최고봉(2034m)인 오우가토 봉우리에 있는 유일한 호텔로 일본 알프스의 산악미를 감상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객실 45실 규모다. 전망노천탕과 연회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아침 고원 생태체험 프로그램 등도 제공한다. 마츠모토역에서 우츠쿠시가하라 고원행 버스(4, 9번선)를 타면 목장 입구 산장까지 도달한다. 목장에서부터는 호텔 투숙객들만 출입할 수 있으며 호텔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1시간~1시간30분 소요.

일본 주부지방의 히다산맥, 기소산맥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이들 지역은 개별 지역명보다 일본 알프스 지역으로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위치에 따라서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로 구분되며, 영국의 한 엔지니어가 알프스와 닮았다 해서 최초로 일본 알프스라고 부른뒤 일본 근대 등산의 개척자로 알려진 W.웨스턴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신호타카 온천(해발고도 1117m)과 나베다이라 고원(1305m)을 잇는 573m 길이의 제1구간과 여기에서 다시 니시호타카(2156m)까지 2598m 구간을 연결하는 두 번째 로프웨이로 구성된 움직이는 산악 전망대다. 탑승시간은 제1로프웨이, 제2로프웨이 각각 4분, 7분. 요금은 각각 성인 편도 200엔, 1350엔. 제1로프웨이와 제2로프웨이가 만나는 ‘나베다이라 고원’ 내에 레스토랑, 베이커리, 커피숍 등이 있다. 마츠모토나 다카야마시에서 버스로 약 1시간 달리면 ‘히라유’에 닿으며, 여기에서 신호타카까지는 다시 버스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취재협조·사진=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JNTO) 02-777-8601/www.jnto.go.jp
마츠모토-다카야마-가나자와 국제관광루트협의회
일본 마츠모토-다카야마-가나자와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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