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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잡다한 짐이 가득한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유레일패스를 한 장 들고 유럽을 여행한 이후, 유럽은 잡히지 않는 꿈속의 무엇처럼 늘 나의 가슴 속 어딘가를 맴돌았다. 유레일패스, 이것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 라는 자신감 때문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여기저기를 그저 방랑자처럼 휘젓고 다녔었다.

그 때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간혹 떠오는 잔상 때문에 그리워만 하던 유럽을 꼬박 10년 만에 다시 찾게 됐다. 가기 전, 분명 그리 길지 않은 일정이라 자신했건만, 인천공항에 도착해 불과 며칠 전을 떠올려 보니, 어! 까마득하다.

10년 전처럼 유레일패스 하나 믿고 떠났던 이번 유럽 기차여행은 그렇게 또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생채기를 남긴 채, 다시 치유를 바라고 있다. 10년이든, 20년이든, 다시 그곳을 여행할 때까지 완쾌되지 못할 여행의 그리움을 말이다.

글·사진〓류한상 기자 han@traveltimes.co.kr
취재협조〓레일유럽 02-3789-6100
www.raileurope-korea.com

-7박9일, 이번 여행의 알찬 일정은?

출발부터 도착까지 총 9일간의 일정이었던 이번 여행 중에는 가능한 한 많은 유럽의 기차들을 체험해 보기 위해 여행 일정이 짜여졌다. 프랑스의 파리로 입국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 니스, 모나코, 이탈리아의 밀라노, 스위스의 루가노, 취리히, 티틀리스 산, 암스테르담, 그리고 다시 파리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점심때를 조금 지나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 가까이를 비행한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3월 초의 파리는 아직 찬 밤공기의 힘이 강해 꽤 쌀쌀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좀 덜 추운 것 같았다.

장거리 비행이 피곤했지만 그냥 잘 수가 있나? 호텔 앞에 있던 카페에 들러 프랑스 맥주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1664’라는 맥주를 서빙해 준다. 8유로. 아직 유로에 대한 감이 잘 안 잡히지만 대략 계산해보니 우리 돈 1만원 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돈을 생각하면 분위기가 안 산다. 잔을 부딪치고 파리의 향취에 취한다. 드디어 유럽 여행의 시작이다.

-유레일셀렉트패스로 여행을 시작!

다음날 아침, 파리의 짧은 밤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알았는지 가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비뇽을 향하는 TGV 기차를 타기 위해 걸어서 리용역을 향했다. 리용역은 프랑스의 남부 도시들로 가는 기차들이 들고 나드는 거점 역할을 하는 기차역이다. 내가 가지고 간 패스는 유레일셀렉트패스 5일권과 스위스패스 4일권 두 종류다. 이곳에서 유레일셀렉트패스를 개시한다.

유레일패스에는 첫 사용일과 마지막 사용일 그리고 실제로 내가 사용하는 날짜를 기록하게 돼있는 공란과 여권번호란, 그리고 역무원에게 도장을 받는 란이 따로 마련돼 있다.

패스를 사용하기 전, 사용일자들을 기록해 첫 사용 기차역에서 창구에 제시하면 유효도장을 찍어주게 되는데 이제부터 패스 이용이 시작된다. 단, 패스별로 사용규정의 차이가 있으니 자신의 여행에 필요한 패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확인해 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유레일셀렉트패스는?

유럽 22개국 중 국경이 인접한 3~5개국에 한해 사용하는 티켓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제한 없이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특별할인 탑승권이다. 티켓의 유효기간은 보통 6개월이며 개시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자신이 선택한 일수(5, 6, 8, 10, 15일) 만큼 연속 또는 비연속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2인 이상이 동반할 경우 세이버 패스를 구입하면 요금할인이 가능하고, 첫 탑승일 기준 만 12세 이상~만25세 이하의 여행자는 2등석을 이용하는 유스 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밖에 TGV나 시살피노 같은 특급열차들을 이용할 경우에는 사전에 예약이 필요하니, 자신의 여행계획에 맞춰 미리 열차예약을 하면 보다 편안한 여행이 가능하다. 어쨌든 유럽 여행에 있어 적어도 하나의 열차 패스는 필수품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 외에도 패스별로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건 주의하세요!

셀렉트패스 구입시 선택할 국가들은 반드시 국경이 맞닿아 있어야 하며, 다른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 유레일 직행열차 및 선박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 규정은 구입 시 여행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국경이 맞닿아 있지만 노르웨이에서 핀란드로 가는 직행 열차가 없어 스웨덴을 경유하기 때문에 인접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또 이탈리아는 스페인과 육지에서는 국경이 맞닿아 있지 않지만 인접국으로 간주된다.

-TGV, 아비뇽을 향해 출발하다

10년 전 처음 유럽 여행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KTX가 없던 시절이다. 그 때 TGV를 탔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통일호, 무궁화호만 타다가 TGV를 탄 느낌은 ‘열차가 얼음판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썰매인 줄 알았다’가 당시의 내 감동이었고, 아직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당시 유럽 기차에 대한 인상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KTX도 타고 이런저런 해외의 특급 열차들도 타봐서 인지 그때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2층으로 구성된 TGV는 또 다른 유럽여행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TGV에 올라 예약된 1층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꾸며진 실내가 고급스럽고 아늑한 인상을 준다. 지난 해 프랑스 철도청은 TGV 인테리어 콘테스트를 개최해, 현재 일부 노선에서부터 세계적인 디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의 인테리어로 변경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사진으로만 본 보라색 계열의 TGV도 꼭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700㎞, 2시간 38분에 주파

TGV는 2줈1석으로 구성돼 편안하게 이용이 가능했다. 2층과 1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마치 고급 호텔의 계단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에 KTX가 생긴 이후, 천안이나 대전에서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TGV도 마찬가지란다. 우리가 출발한 파리에서 아비뇽까지 700km에 달하는 거리를 TGV는 단 2시간 38분만에 주파하기 때문에 프랑스에는 이미 오랜 전부터 장거리 출퇴근족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출퇴근 시간에 열차에서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이들을 위해 220v의 전기 콘센트도 마련돼 있다.

기차가 30분가량을 달렸을까. 유니폼을 갖춰 입은 차장이 티켓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유레일패스와 함께 TGV를 예약한 구간 티켓을 함께 제시하면 된다.

시간이 급하거나 해서 미처 첫 기차를 타기 전에 역에서 확인 도장을 못 받더라도 대부분은 다음 역에서 확인을 받으라는 말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으니, 노심초사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물론 가능하면 패스 이용의 규정을 따르는 것이 좋다.

ㅁ기차여행의 매력

1 인연은 한데로 : 여행은 낯선 이들을 한데로 모아준다. 그렇다면 기차는? 같은 곳을 향하는 기차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의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한다.

아비뇽으로 가는 TGV에서 만났던 샤샤는 아비뇽까지 가는 내내 우리 일행의 귀여움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먼저 아비뇽에서 내리게 되자 엄마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던 4살짜리 꼬마 아가씨는 그때, TGV에서의 인연을 기억할 수 있겠지? 세월이 흘러도.

2 도시락 까먹기 : 기차여행의 매력하면 역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기차 안에서 까먹는 도시락 아닐까? TGV에는 식당칸도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간단한 식사류와 함께 커피, 맥주, 와인, 스낵류도 판매하기 때문에 여행자의 출출함을 달랠 수 있다.

맛난 음식 또는 한 잔의 와인, 차와 함께 창밖의 풍경을 즐기다 보면 기차 여행의 지루함 따위는 저만치 달아난다. 마치 비행기 기내식과도 비슷한 느낌의 식사에서도 와인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니 프랑스 사람들의 와인 사랑을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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