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방스를 보지 않고, 어찌 프랑스를 여행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2시간 38분 만에 700km 가까이를 내달린 TGV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작은 도시, 아비뇽에 도착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아비뇽의 유수’라는 사건을 통해 익히 귀에 익은 곳이지만 사실, 한국의 여행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잠시나마 아비뇽 지역을 여행해 본다면 남부 프랑스가 가진 매력에 흠뻑 취해버리게 된다. 지중해와 가까운 곳이기 화창한 날씨가 매력적인 곳인 동시에, 질 좋은 와인의 산지이기도 하다. 차를 타고 다니다보면 와인의 재료가 생산되는 작은 포도나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비뇽을 목적지로 한국에서부터 출발했다면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곧바로 TGV를 타면 3시간20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



아비뇽의 볼거리들

-시간이 멈춘 곳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의 중심가와 교황청은 걸어서 10분 이내에 닿는 지척지간이다. 차를 타고 도착했다면 론강 생베내제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교황청을 향해 걸어 올라가면 된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고, 다시 이 마을을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중세 유럽의 도시다. 가는 길 골목골목마다 오랜 시간의 향기가 켜켜이 쌓여 있어, 주위를 둘러보며 오르는 길이 지루할 새가 없다. 교황청은 입장료 없이 개방돼 있는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와 그 위로 자리 잡은 성모 마리아 상이 교황청 시대의 화려함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한다. 꼭대기까지 오르면 론강과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뷰포인트에서 잠시 흘러간 시간을 감상하고 내려오면 된다.

교황청을 나서서 올라왔던 곳과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아비뇽 시청이 보이고, 이어서 아비뇽의 중심 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중세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맞닿아 있으나, 시간의 격차는 없다. 그 사이엔 노천카페들이 자리 잡아 커피의 향과 함께 여행자들의 시간을 붙잡아 두고 있다.

-거대한 수로 & 다리 퐁뒤갸르

갸르강 계곡을 가르지는 이 다리는 1세기 전반에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즉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서기’의 역사와 그 기원을 함께 한다. 원래 이 다리가 건설된 목적은 강 건너편, 지금의 님 지역까지 50km 떨어진 곳으로 수도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그 아이디어 또한 대단하지만 거대한 다리로서 이를 실현시킨 능력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재도 보존상태가 좋은 이 다리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유로화폐 중 5유로 지폐에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00년 전에 이 거대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를 잠시 생각해본다.

내가 당시, 이곳에 살았다면 과연 무얼 하고 있었을까? 큰 돌을 나르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을까, 아니면 기다란 채찍을 들고 인부들을 종용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저 멀리 성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공사 진척 현황을 보고 받고 있지는 않았을까? 가끔 아주 쓸데없는 생각이 여행을 재미나게 하기도 한다.

-돌덩이로 지어진 성(城)
-보드프로방스

거대한 석회암 언덕 위에 만들어진 보드프로방스는 지금도 옛 모습과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곳에 사람들이 거주하며 관광객들에게 중세의 모습을 전해준다. 지금은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기념품 가게들로 남아 있는 이곳을 걷다보면 마치 ‘커다란 돌덩이에 수많은 세월 동안 마을이 생긴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에 빠지는 듯 하다.

-아비뇽 유수

아비뇽은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로마에서 피신해온 로마 교황이 체재했던 곳으로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는 교황이 건설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중세도시의 전형을 맛볼 수 있다. 바로 옆 론강에는 생베내제교가 있는데 홍수로 인해 붕괴와 보수를 계속하다 현재는 몇 개의 아치만이 남아 옛 부귀영화의 시기를 말해준다.

-아비뇽에서 머문다면
-프로방스의 정(情) 빌라 떼바이드

1973년 프랑스로 이주, 현재의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이곳 프로방스 지역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아비뇽에 자리를 잡은 한국인 소정섭씨(프랑스 이름 서피(Supy)는 이곳에서 전원식 호텔(펜션과 유사하다)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에어프랑스의 직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TGV나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방이 많지는 않지만 총 6개의 방을 각각 다른 꽃을 주제로 꾸며 놓아 안락하고 편안함이 모자랄 데 없다. 3층짜리 집을 꾸며 1층은 객실로 사용하고, 2, 3층은 가족들이 이용하고 있다.

작은 수영장과 정원, 분수가 딸린 이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 떠나기 싫어질지도 모르니 주의할 것. 집안을 꾸미는 소품은 대부분 남편의 집안에서 물려 내려오던 것들을 활용한 터라,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재치 넘치는 유머감각으로 손님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이들 부부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인 앙드레의 프로방스에 대한 애착과 사랑 덕에 작년부터 이곳에서 숙박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아비뇽의 채취가 묻어나는 듯 한다.

-지중해여, 내가 간다

지중해, 그 이름만으로도 한가로운 해변의 따사로운 태양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아직 겨울의 찬바람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중해’라는 단어에서는 강렬한 여름의 느낌이 난다.

그 느낌을 맛보기 위해 아비뇽에서 다시 TGV를 탔다. 이번엔 2층이다. 큰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2층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다만, 천정이 1층보다 조금 더 낮은 듯 하다.

아비뇽을 출발한 지 2시간 30분이 조금 넘자 많이 익숙한 이름의 역에 열차가 머물렀다. 그 이름도 유명한 ‘깐느’, 바로 깐느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뭐 대단한 영화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깐느에 발을 디뎌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TGV의 문이 열린 틈을 타 잠시 플랫폼을 밟았다. 바로 이곳이었구나. 일정 상 깐느를 돌아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다시 기차에 오른다. 열차가 출발할 무렵이 되면 경적을 울려 승객들이 승차할 수 있게끔 하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깐느의 모습을 그려 놓은 벽화가 눈앞을 스치면 다시 지중해의 도시, 니스로 향한다. 깐느 역을 벗어나자 이제 열차는 오른편에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끼고 니스를 향해 달려간다.
아비뇽을 출발한 지 3시간, 우리는 지중해의 도시, 니스에 도착했다. 며칠 동안 찌푸렸던 하늘은 지중해의 푸른 하늘로 거듭나 있었다. 기온도 다르다. 옷을 한 겹 벗어야겠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향이 다르다.



-모나코의 밤에 취하다
-니스에서 20분 만에 도착

니스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반나절. 이 반나절을 어찌 보내야할지 수많은 고민 끝에 ‘모나코’를 선택했다.

니스에서 열차를 이용, 불과 2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이점과 함께 여행 중 또 다른 나라를 가보고 싶은 여행자의 욕구가 강하게 작용했다. 여권에 도장 찍는 재미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늦은 점심을 길거리 케밥으로 적당히 해결하고 니스역에서 모나코행 열차를 탔다.

사실 모나코는 분명 다른 나라이지만 다른 나라로 간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프랑스의 열차를 이용해 중간역에 내리고, 여타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입국심사도 없을뿐더러(물론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면 여권검사를 하긴 하지만 말이다) 유로화도 그대로 사용한다.

다만 모나코 역 관광정보센터에서 모나코 입국 도장을 찍어주니, 가능하다면 꼭 찍고 가자. 물론 공짜다. 다양한 관광정보와 안내서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와인과 함께 한 모나코 항구의 야경

그다지 크지 않은 왕국을 둘러보다 보니, 바닷가에 있는 고급스러운 저택과 건물, 화려한 요트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하는 부러움을 느끼며 “한국에 가면 로또 한 장 사야겠구나”하는 생각을 속으로 해본다.

근위병이 지키는 왕궁을 둘러본 후, 다시 항구로 내려왔다.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니, 모나코의 밤을 느낄 차례다. 모나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저녁식사와 와인 한잔을 함께 한다. 붉은 빛의 와인이 몸을 타고 흐르자 항구의 밤이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다음에는 아내와 함께 꼭 이곳에서 와인을 한잔 하고 싶다.


ⓒ 여행신문(www.traveltimes.co.kr)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취재협조〓레일유럽 02-3789-6110 www.raileurope-korea.com
글·사진〓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