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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라오스(Laos)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것이란 명예와 돈, 권력 등 우리가 욕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욕망의 마지막 한 점까지를 땅바닥에 내려놓아야 라오스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여행할 수 있다. 아니 라오스를 여행하다 보면 모든 욕망은 덧없어진다. 그래서 어떤 여행자들은 당초 계획보다 라오스에 더 머물고, 어떤 여행자들은 서둘러 라오스를 떠난다.

글·사진 Travie writer 최갑수
취재협조 베트남항공 02-757-8920

-“싸바이디!”

하노이를 거쳐 라오스 루앙 프라방(Luang Prabang)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여행자를 반기는 듯한 스콜이 와당탕 퍼부었다. 나는 공항 처마 아래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속절없이 담배를 피우는 낯선 동양인을 향해 ‘툭툭이’ 기사들은 넌지시 미소를 던지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들의 미소에는 이런 말이 묻어 있었다.
‘여기선 원래 그래.’

루앙 프라방 공항에서 숙소인 빌라산티 호텔까지 미니버스를 타고 약 20분을 가는 동안 라오스인 가이드 캠벨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캠벨은 유창한 영어로, 세계 여느 가이드가 그렇듯이, ‘간략하게’ 라오스에 대해 설명했다.
“라오스는 동쪽의 베트남과 서쪽의 미얀마, 남쪽의 타이, 북쪽의 중국 등에게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과 프랑스, 미국으로부터 무자비한 노략질을 당해 왔죠. 국토는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캠벨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웃으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역사는 아픔의 연속이었지만 우리 국민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오스인들은 행복하고 언제나 즐겁습니다.”
우리가 호텔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한 노상주점에 앉아 맥주 ‘비어 라오’를 마시는 일이었다. 길 건너에서는 메콩 강이 흘러갔다. 강물은 누런 색이었다. 캠벨은 내 잔에 맥주를 붓고는 커다란 얼음 서너 개를 띄워 주었다.
“이렇게 하면 맥주가 더 차갑고 맛있어요.”

거리는 프랑스식으로 지은 식민지 풍 건물과 라오스의 전통양식으로 지은 건물이 함께 서 있었다. 햇살은 바늘처럼 따가웠고 그 햇살을 맞으며 누런 법복을 입은 승려와 허름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아이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싸바이디(Sabaidi)” 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라는 뜻.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곳 루앙 프라방에서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나요?”
내가 캠벨에게 묻자 캠벨은 집게손가락으로 거리를 가리켰다.
“사람들이요. 저들의 맑은 얼굴과 얼굴에 스민 미소와 그 미소에 묻은 그들의 마음이오. 그리고 루앙 프라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약간 뜸을 들인 후 캠벨이 말했다.

“별로 없어요. 일어나서 차 마시고 거리를 걷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저녁 무렵이면 근처 시장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여행자들 혹은 라오스인들과 맥주를 마시는 정도?”

캠벨의 말에 따르자면, 라오스의 국토 면적은 23만6,000㎢. 남북한 면적의 1.1배다. 하지만 인구는 590만명에 불과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500달러 수준으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총 교역량도 19억7,6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공업화 기반은 거의 없으며 철도는 식민 지배를 했던 프랑스가 부설한 7km 구간이 전부란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행복해요.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전세계 5위 안에 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돈과 명예가 아니에요.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루의 평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캠벨이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나는 내일부터 당신을 가이드해야 하지만 사찰 몇 곳과 시장을 제외하고는 사실 보여 줄 게 별로 없어요. 그것들 역시 이 호텔에서 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에요.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



-탁발행렬과 아침 시장

빌라 산티 리조트 호텔에 묵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이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거리로 나섰다. 후텁지근한 열기와 습기가 덮친다. 호텔 앞 거리는 ‘왕의 대로’라고 부른다. 캠벨에게 “왜 왕의 대로라고 부르냐”고 물어 보니 “예전 수도였을 때 왕이 이 거리를 다녔고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을 뿐이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게 뭐 중요하냐”는 듯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할까.’

10분 정도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기 시작한다. 아직 어둑어둑하다. 소쿠리를 옆구리에 걸치고 있는데 그 안에는 찹쌀밥과 바나나 등 먹을거리들이 담겨 있다. 사라고 권하지만 고개를 흔들면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난다. 팔아야겠다는 의지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몇 사람이 계속 내 등을 툭툭 친다. 밥 한 덩이를 산다. 1달러. 루앙 프라방에서는 모든 게 1달러다. 맥주도 1달러, 밥도 1달러, 팁도 1달러, 툭툭이 요금도 1달러, 기념품도 1달러. 1달러밖에 없다고 하면 그것만 달라고 한다.

다시 10분 정도 지나자 관광객을 실은 미니버스가 한 대 멈춘다. 태국 관광객들로 보인다. 보도에 깔개를 깔고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후 여러 물건을 앞에 펼쳐 놓는다. 밥덩이는 기본. 오렌지 주스, 칫솔과 치약, 두루마리 화장지, 껌 등이 각양각색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캠벨이 어깨를 툭 치며 거리 한 쪽 끝을 가리킨다. 사원에서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 수백 명이 일렬로 서서 걸어오고 있다. 루앙 프라방의 상징인 새벽 탁발행렬(살밧)이 시작되는 것이다.

탁발행렬은 루앙 프라방에서만 볼 수 있다. 라오스의 수도인 위앙짠에서도 볼 수 있지만 1년에 한두 번 정도다. 루앙 프라방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새벽 탁발행렬이 이어진다. 루앙 프라방의 각 사원의 승려들이 마을을 돌며 아침거리를 공양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승려들이 앞장서고 서열에 따라 승려들이 한 줄로 뒤를 따른다. 승려들은 시주들 앞을 지나가며 바리때 뚜껑만 반쯤 연다. 그러면 시주들은 미리 준비한 음식물 등을 스님들의 바리때에 넣는다. 승려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혀 답례하는 일이 없다. 당연한 듯 다음 또 다음 시주를 향해 빠르게 지나친다. 승려 수백명으로 이루어진 탁발행렬이 지나가지만 거리는 조용하다. 관광객이 누르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시주들이 웅얼거리는 진언소리가 전부다. 승려들은 공양이 많다 싶으면 시주들 끝자리에 앉아 있는 걸인들에게 나눠 준다. 호텔 앞 대로변에는 주로 관광객들이 앉아 있고 마을 주민들은 마을 뒷길에 앉아 있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40여 분간 이어집니다. 루앙 프라방 사람들은 아침 시주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밥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죠.”

캠벨은 “당신은 이제 루앙 프라방에서 가장 큰 볼거리를 보았다”고 말했다.
“루앙 프라방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침 탁발행렬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불교적 세계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캠벨은 “저들 중 아무나 붙잡고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무엇이었냐’고 물어 보라”고 말했다.

“아마 대부분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돈이) 있을 때 남에게 베풀지 못한 것이라구요.”



★ 루앙 프라방

루앙 프라방은 라오스 제2의 도시다. 하지만 전체 인구라고 해야 4만명에 불과하다. 시내 중심가는 메콩 강과 남칸 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상주 인구는 8,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마을을 생각하면 된다.

‘툭툭’이나 ‘삼론’ 같은 오토바이 택시와 소형 트럭의 엔진 소음을 빼면 소란스러울 것이 없다. 루앙 프라방은 1353년부터 18세기까지 라오스의 수도였다. 그랬던 까닭에 왕궁과 수많은 불상으로 가득한 동굴, 사원 등을 간직하고 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사원, 왕궁, 전통 민가,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의상과 풍습은 물론 30~40년대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 등을 후세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종합 평가한 결과였다. 이후 많은 유럽 여행자들이 방문하고 있지만 아시아인들은 아직까지 그다지 많이 찾는 편이 아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빼고도 호텔만 11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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