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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오백년을 거슬러 고구려와 만나다

제주 섬 곳곳에는 초록으로 뒤덮인 야트막한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지가 말랑말랑했던 시절, 대륙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게 게워낸 열기의 흔적 ‘오름’이다.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품은 그 길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올라 본다. 묘산봉 정상에 오르니 오색찬란한 고구려 성이 눈앞에 펼쳐진다. 동아시아 정복의 꿈을 품던 사나이, 광개토대왕이 먼 길 찾아온 객(客)을 반갑게 맞이한다.

글 Travie writer 류진 사진 박나리 기자 에디터 박나리 기자

-섬세한 고증과 상상이 빚은 조화



제주도 어디에서든 고개를 돌리면 끝없이 푸른 하늘과 바다와 대지를 볼 수 있다. 그 천혜의 풍경을 따라 길 위를 달리노라면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만 같다. 드라마 <태왕사신기> 김녕 세트장을 향하는 길도 그랬다. 하늘과 맞닿을 듯 높이 솟은 나무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천오백년 전으로 순식간에 돌아간다. 내가 탄 자동차가 타임머신이 되는 순간이다.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는 광활한 바다와 대지 위에 베일에 싸여 있던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고의 전성기를 영위한 수도 성답게 멀리서도 황금 지붕이 화려함을 뽐낸다. 외성 문 안으로 들어서면 당시 고구려인들의 삶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다. 저자거리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서민들이 살았던 민가가, 오른편에는 야시장과 호화 객잔, 귀족촌이 위치한다.

‘저자거리’에는 가죽과 비단, 술과 차 등 당시 고구려인들의 생활 용품을 파는 상점들로 가득하다. 10여 채의 상가 건물은 단 한 채도 같은 모양의 집이 없다고 하니 작업팀의 꼼꼼하고 영민한 손길이 놀라울 뿐이다. 광개토대왕의 어린 시절, 당시 고구려는 최고의 번성기를 맞았던 만큼 풍족하고 윤택한 거리 풍경을 느낄 수 있다. 왕이 되기 전, 서민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을 좋아했던 ‘담덕(광개토대왕)’은 몰래 성을 빠져나와 이곳에 자주 들르곤 했다.

외성 문 오른 편은 야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국내성 시장’이다. 찬장에 놓인 술병마다 시원한 곡주가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은 주막과 각종 물건을 쌓아놓은 창고, 먼 길 달려온 상인들이 쉬어가는 객잔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그 나라 사람의 삶을 보려면 시장에 가야 한다고 했던가. 고구려인들의 진짜배기 삶이 이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놀이패가 한바탕 판을 벌리면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삶이 주는 시름을 씻어냈을 법한 곳. 살고 있는 세월은 다르지만 그들과 우리의 일상은 결코 다르지 않아 더욱 눈에 선하다.

이곳에서도 역시 백미는 고구려 최고 귀족 ‘연가려(박상원 分)’의 대 저택이다. 웅장하기로는 대전에 버금가는 저택 안에는 연못과 폭포, 정자와 정원 회랑까지 들어서 있다. 안채는 더 아름답다. 천장을 빼곡히 채운 360개의 사각 단청은 하나하나가 화폭이다. 연꽃, 구름 등은 모두 손으로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화려한 단청이 하늘보다 높은 연가려의 명성(名聲)을 나타내 준다. 집안 곳곳에 놓인 가구와 2층으로 통하는 계단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곳이 없다. 섬세한 고증과 상상력을 통한 고구려 건축물의 재현이 어느 곳보다 더 돋보인다.

이제 클라이맥스만이 남아있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는 해자(垓子) 못을 지나 내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광개토대왕이 살고 있는 대전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만주를 넘어 중원까지 영토를 확장시킨 빛나는 업적을 이루어 낸 위용이 단박에 느껴진다. 드넓은 광장 위에 우뚝 선 대전 주위를 찬찬히 거니는데 꼭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유적지를 둘러보는 기분이다. 뒷마당에 나 있는 침전, 왕궁 도서관, 대신관 처소까지 단숨에 둘러볼 수 있다. 하늘로 치솟은 황금 지붕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더 파크써던랜드, 묘산봉 뜨거운 감자



세트장 입구에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 건물이 하나 놓여 있다. 그 지붕 위에 설치된 간이 전망대에는 매일 수백 명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올라간다. 먼발치에서라도 ‘욘사마’를 보려는 그들의 고갯짓은 자못 애절해 보이기까지 하다. 찾아간 날도 역시 진입로에 정차된 단체관광버스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김녕 세트장은 2010년에 완공될 묘산봉 관광 지구에 개발된 첫 관광 자원으로서 미리부터 제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총 제작비 220억, 세트 제작 기간 1년 반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1만1,000평의 대지 위에 지어진 세트장은 ‘더 파크써던랜드(The Park Southernland)’라는 이름으로 2010년까지 콘도미니엄, 녹지공원 등의 부대 시설과 함께 종합 휴양 단지로 거듭 날 예정이다.

오는 9일, 제주도 깊은 산자락에서 오랜 시간 은둔해 왔던 세트장이 드디어 그 비밀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8월26~30일까지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임시 오픈을 마친 이곳은 드라마 방영과 함께 1차 오픈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전 내부를 제외한 세트장 전체가 개방되며, 촬영이 종료되는 10월경 전체 오픈이 예정돼 있다.

만일, 높은 지대에 올라 차 한잔에 국내성 일대를 감상하고 싶다면, ‘더파크써던랜드 카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귀족 자제들이 학문을 공부했던 ‘태학’ 내부에 새운 1~2층짜리 카페로, 2층 야외테라스에서는 앉아서도 세트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1층에는 ‘욘사마의 의자’를 배치해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선물한다. 오후 10시까지 별도로 운영해 야경을 즐길 수 있으며, 테이크아웃이 가능해 천천히 돌아보며 목을 축이기도 좋다. 별도의 주차 공간을 두어 언제든 쉽게 차를 이용해 닿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제주도를 향한 발걸음이 무섭게 몰려들고 있다. <태왕사신기>의 주인공 배용준의 힘을 빌려 관광객들을 불러들였지만, 그들이 취하는 것은 비단 ‘욘사마’의 준수한 외모뿐 아니라 빼어난 제주 섬의 경관도 함께일 것이다. 세트장이 위치한 묘산봉의 절경은 직접 보고 맛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섬, 제주가 고구려의 기상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내딛는다.

★ 더 파크써던랜드 위치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산 157-4 운영시간 2007년 9월9일 오픈 예정으로 오전 10시~오후 6시(입장은 오후 4시까지) 커피숍은 오후 10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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