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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여행자들을 압도한다.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천안문 광장, 거대한 규모의 자금성, 달에서도 볼 수 있다는 만리장성, 드넓고 화려한 이화원까지 ‘최고, 최대, 최다’의 수식어를 동반하는 볼거리들이 수두룩하다. 이뿐인가. 2008년 올림픽을 앞둔 베이징은 ‘최신’까지 덧붙이며 도시 미관에 일대 성형수술을 가하고 있다. 초대형 백화점은 값비싼 명품들로 가득하고, 우람하고 잘생긴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그리며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베이징의 뒷골목 ‘후통’은 다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며 서민들의 잔잔한 일상이 펼쳐지는 곳, 후통 여행을 따라나선 카메라는 녹슨 문고리, 지붕 위의 고양이, 벽돌 하나 등 작디작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글 사진Travie writer 서동철

-후통이 어딘데?

“후통 갑시다!” 광활한 자금성을 빠져나와 지나가는 삼륜차를 붙들고 무조건 했던 말이다. 기사 아저씨는 자신이 직접 진행하는 한두 시간짜리 관광 상품을 이용하라고 권유했지만 두 발로 직접 걸어 보고 싶은 마음에 그저 후통까지 데려다 달라고만 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가 내려 준 곳은 자금성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한 거리의 어느 골목 입구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후통은 베이징의 좁다란 골목을 뜻하는 동시에 작은 행정구역 단위이다. 베이징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 바로 후통이었으니 무턱대고 후통에 가자고 한 내가 얼마나 사전지식이 없었던 것인지 부끄럽기만 했다. 4박 5일간 베이징에 머무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걸어 본 바, 자금성 인근의 큰 길을 벗어나 내키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손쉽게 ‘후통’을 만날 수 있었다.

밝은 회색빛 벽에 빨간색으로 ‘OO후통(胡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곳이 바로 애타게 찾던 후통이다. 중국인 반, 외국인 반인 유명한 왕푸징거리 뒤편 골목 조그만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후통을 찾아 헤매고 숙소로 돌아오던 날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바이수후통’이라 쓰여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후통에서 후통을 찾아 나서다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북경자전거’를 찾아서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에 올라온 17세 소년 구웨이는 한 자전거 택배회사에서 일을 시작한다. 한 달 동안 성실하게 일하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자전거가 제 것이 된다는 이야기에 열심히 일하지만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도시 전체를 뒤지던 어느 날, 자신과 또래인 고등학생 지안이 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안 역시 아버지의 돈을 훔쳐 산 것이긴 하지만 장물인 줄 몰랐던 것. 자전거를 둘러싼 두 소년의 치열한 쟁탈전이 이어지는데….

지난 2001년 국내에서 개봉한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영화 <북경자전거>는 후통을 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가 펼쳐진다.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자전거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스쳐가고,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을 지나, 머리를 바짝 스포츠 머리로 깎고 뛰어 노는 어린아이를 뒤로하고 또 다른 골목으로 달려간다. 후통을 걷다 보면 어느 곳에선가 교복을 입은 지안이 자전거를 타고 튀어나올 것만 같고, 택배 가방을 둘러멘 구웨이가 망가진 자전거를 붙들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후통에서는 사람보다도 자전거를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빠끔히 열려진 문틈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골목 어귀에는 어딜 가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자전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담벼락에 기대어 쉬고 있는 녀석과 다시는 굴러 갈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놈, 그리고 주인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삼륜자전거까지 가지각색 천태만상이다.

-빠져 나오기 아쉬운 미로

후통에 들어서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원(元)대에서부터 시작된 베이징 서민들의 거주 지역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 도통 어딜 향해 걷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들은 미로와도 같은 후통의 지리 때문에 시가전에서 꽤 애를 먹기도 했다지만 여행자들에게 후통을 헤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고색창연할 것도, 웅장할 것도 없지만 700여 년의 전통을 간직한 그네들의 삶의 터전에는 오랜 시간이 켜켜이 내려 쌓인 흔적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학의 날개처럼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앉은 기와지붕 위로 파릇하게 돋아난 풀들이며, 비바람에 풍화돼 깎여져 나간 양각 문양과 대문 양쪽에 세워 둔 돌조각에서도 오래 묵은 것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허나 후통 산책의 하이라이트는 그 무엇보다도 ‘일상 엿보기’다. 자전거를 타고 반찬거리를 사들고 오는 아저씨와 마당을 비질하는 할머니, 폐품을 싣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일꾼, 빨랫줄에 내걸린 누런 속옷, 맨바닥에 나뭇잎으로 장기를 두는 사람들 등 후통은 베이징의 가슴팍에 귀를 갖다 대고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것처럼 생생함을 전해 준다. 골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자동차가 쌩쌩 내달리는 대로로 나오게 되면 왜 그리도 아쉬운지, 후통의 미로는 중독성이 강하니 조심할 일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焞컵瀜

‘이름을 가진 후통이 3,600개, 이름 없는 후통은 소털처럼 많다(有名胡同三千六, 無名胡同似牛毛)’는 말처럼 베이징에는 수많은 후통이 형성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방문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영화 <북경자전거>가 베이징의 구석진 모습들을 보여 준다고 하여 중국 내 상영이 금지됐던 것처럼 후통은 널찍한 도로와 고층빌딩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1980년 이후로 베이징 후통의 40% 가량이 사라져 버렸고, 이에 더해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 차원에서 보기 좋게(?) 꾸며지고 있다고 하니 본래 후통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어서 짐을 꾸려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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