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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여관을 의미하는 료칸의 인기는 그야말로 선풍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의 트렌드가 ‘보다 프라이버시가 중시되고’, ‘보다 세심한 서비스가 동반되며’, ‘보다 휴식을 강조하는’ 로하스(LOHAS,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그리고 웰빙 라이프스타일의 흐름과 함께 자리 잡았기 때문일 테다. 이제는 ‘밤 도깨비’처럼 짧은 시간동안 효율적으로 ‘번개 불에 콩 볶듯’ 후다닥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묵는 료칸의 경관을 즐기면서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하고 휘황찬란한 가이세키의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천천히’ 여행을 만끽해 보자.

Style 1 : 이보다 더 호사스러울 수는 없다

-‘상상’이 ‘일상’을 지배하는 공간 호시노야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 브루나이 왕국의 ‘엠파이어 호텔’은 7성급 호텔로 명성을 떨쳤다. 다시 말해 별의 개수가 특급이라고 여겨지는 별 5개를 훌쩍 뛰어넘어 별 7개가 반짝거리는 ‘초특급’호텔들이다. 하지만 일본 료칸은 별점 매기기만으로 그 순위를 정할 수 없다. 투숙객의 ‘필요’를 한 발 앞선 서비스와 아늑한 휴식, 숙소에 묵는 것만으로도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고유한 숙박 시설인 료칸에 그 어떤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댄들 공정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초특급 호텔, 어떤 고급 리조트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호사스러운 휴식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료칸은 분명히 ‘있다’.

호시노야(星のや) 카루이자와를 지배하는 두 가지 상상. 하나는 ‘일본이 서양의 영향을 일체 받지 않고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계곡 마을’이 호시노야 카루이자와다.

그리고 두 번째 상상은 다름 아닌 ‘비(非) 일상감의 극대화’다. 일상 속, 마천루가 빼곡한 갑갑한 도시 생활은 매연과 소음에 익숙해진 도시인을 대량 생산해냈다. 신체와 이동통신의 합체, 하루에 여덟 컵의 물 대신 스타벅스의 커피 세 잔을 마시고, 하이힐과 불편한 신발에 발을 끼워 맞추고 디자이너의 옷을 입기 위해 거식증을 기꺼이 자처한다. 이런 타고난 ‘도시인’들에게 호시노야는 ‘일상을 탈피하는 의식’을 일부러라도 거치도록 유도한다.

체크인을 위해 리셉션에 당도하면 웰컴 드링크를 내어 주고, 낮은 음을 평화롭게 울리는‘야구라’를 연주한다. 이때 눈을 어지럽히는 어떤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일체 없을 뿐 아니라, 리셉션을 가득 채우는 향긋한 향까지,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하나 둘 ‘살~살~’ 풀어 준다. ‘진정한 휴식’은 바로 리셉션에서의 이런 기분 전환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후부터 시작이라는 호시노야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체 넓이가 4만2,000km2에 이르는 호시노야 카루이자와. 전용 셔틀카를 타고 계곡 마을을 천천히 드라이브하며 커뮤니티 존(Community Zone)이라고 불리는 카루이자와 마을의 주변 시설들을 소개 받는다. 호시노야는 일본 료칸 최초로 숙박과 식사를 완전히 분리해 전용 레스토랑을 이용하거나 주변에서 식사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호리 타츠오의 소설 <아름다운 마을>에도 등장한 ‘촌민’과 꼭 같은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 노천 온천인 톰보 온천을 지나면 어느 하나 똑같은 모양이 없는 77개의 객실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계곡에 도착한다.



미즈나미(강이 보이는 방), 니와로지(정원이 보이는 방), 야마로지(숲이 보이는 방) 객실로 구분된 방에서는 테라스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미닫이문에서부터 방까지 들어가는 데 열어야 하는 문도 3개나 된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어떤 것도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방 안에 TV와 시계가 없는 까닭은 일상으로부터 철저히 분리하고자 하는 철학의 일부분이다. TV는 없어도 CD 플레이어는 있다. 자체 제작한 이미지 명상 CD로 부유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그만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켜고 널따란 마루 바닥에 엎드려 귀를 기울여 본다. “쯔르르르르르” 벌레 우는 소리, “촤아아아아아” 계곡 흐르는 소리, “뚝, 뚜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단 한번이라도 일상 속에서 자연이 내게 속삭이는 작은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의 속삭임과 정원 나무 한 그루에 비춰진 은은한 불빛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왜 이곳에 그 유명한 일본의 문인들이 휴식을 위해, 명상을 위해 찾는지를 새삼스럽지만 알 것도 같다.

호시노야만의 스타일로 개량한 유카타와 호시노야 어디든 편하게 신고 다닐 양말과 게다까지 다 갈아입었으면 호시노야를 ‘누릴 준비’, 호시노야를 ‘누빌 준비’가 완료된 셈이다.

‘휴대폰’도, ‘하이힐’도, ‘TV’도, ‘인터넷’도 없는 호시노야에서 유일하게 ‘일상’과 연결되는 곳은 메인 레스토랑 오른편에 위치한 ‘라이브러리 라운지’. 이곳은 24시간, 각종 간식과 다양한 차를 즐기며 책과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평화롭고 아늑한 호시노야에서 깜박 잠이 들었더라도 24시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설은 ‘명상 온천(Meditation Bath)’. 카루이자와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쿠사츠는 약산성의 치료 효과가 탁월한 온천으로 유명하다. 호시노야의 명상 온천은 단순히 피로를 푸는 차원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겹겹의 큐브를 하나하나 연결시킨 느낌으로 온천을 이어놓아 소리와 빛을 점점 차단시키며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다. 첫 번째 큐브에서는 폭포처럼 떨어지는 온천수의 소리가 요란하다. 네모난 틈새로 두 번째 큐브에 들어가면 그 소리는 소낙비 내리는 소리로 잦아든다. 다시, 좀더 깊숙이 세 번째 큐브로 들어가 보면 어둠 속, 귓가를 멍하게 하는 정적에 몽롱해진다. 따끈한 온천에 편안하게 몸을 부유시켜 절로 명상에 잠겨 볼 수 있는 기회다. 명상이 성격에 맞지 않는다면 커뮤니티존에 위치한 노천온천 돔보노유 온천도 좋다. ‘비밀’이 숨겨진 듯한 아름다운 숲 속의 맑은 공기와 온천의 더운 열기 속에서 연출되는 환상적 분위기는 또 노천탕만의 운치이니 말이다.

일본 글·사진=신중숙 기자 mybest@traveltimes.co.kr
자료제공·취재협조=호시노 리조트 www.hoshinores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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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칸에 대한 알뜰 정보

료칸의 처음, 그리고 오늘
료칸의 기원은 나라(奈良)시대(710∼784)에 등장한 ‘후세야’. 교통망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 노숙을 하면서 여행길에 굶어 죽던 서민을 위해 승려가 만든 무료 숙소다. 황족과 귀족의 신사 및 사찰 참배 여행을 돕기 위해 봉건제후의 장원과 사찰에 마련한 슈코보(宿坊), 서민 숙소인 기친야도(木賃宿) 등, 이후 시대마다 숙박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식사까지 제공되는 ‘하타고(旅籠)’는 에도시대(1603∼1867)의 것이다.
지금의 료칸과 견줄 만한 것 역시 에도시대의 쇼군 통치기에 등장했다. 당시 각 지방의 다이묘(봉건제후)는 쇼군에게 한 충성서약을 지키느라 에도에 볼모로 잡힌다. 그때 묵던 숙소가 ‘혼진(本陣)’이다. 현재와 같은 료칸은 메이지유신으로 전국에 철도망이 놓이고 관광지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성행한다. 료칸은 식사 제공 형태의 숙소 하타고에 다이묘에 대한 극진한 환대로 점철된 혼진의 접대문화가 접목된 가장 일본적인 숙소인 것이다.

료칸식 산해진미 맛보기, 가이세키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가이세키(懷石, 會席)는 눈으로 먼저 음미하고 그 다음 입으로 먹는다. 한정식이 전통적인 한국 음식을 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내는 것이라면 가이세키는 일본 음식을 코스별로 즐기는 일본식 고급 정식이다. 메인을 다섯에서 일곱으로 늘려 서빙하는 료칸도 있지만 가이세키 요리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일즙삼채(一汁三菜)’. 국물 요리 한 가지와 본 요리 세 가지를 의미한다. 거기에 전채요리와 밥과 된장국, 디저트까지 다 먹고 나면 일본 음식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가이세키는 원래 사찰에서 다도를 위해 즐기던 음식으로 료칸에서는 직접 객실로 음식을 서빙해 주는 ‘헤야쇼쿠’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보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흐름에 맞춰 료칸 내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방식도 늘고 있다. 가이세키 요리는 료칸마다 다르고 계절에 가장 알맞은 요리를 주인장이 엄선하여 내는 코스이므로 반드시 맛보자.

료칸의 ‘꽃’, 온천 즐기기
일본 전역에 5만5,000개쯤 된다는 료칸. 그중 온천 료칸은 3,000개뿐이다. 온천 료칸 하면 자연과 정원을 벗삼아 목욕을 즐기는 노천욕인 로텐부로(露天風呂)를 빼놓을 수 없다. ‘자연과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휴식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로텐부로는 곧 그 료칸의 수준까지 판단하게 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또 일본의 목욕 문화도 미리 알아둘 것. 일본의 온천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것이 아닌 자연 속에서의 휴식을 지향한다. 따라서 일본인은 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샤워나 샴푸를 끝내고 깨끗한 몸으로 온천욕을 즐긴다. 얇은 수건을 갖고 온천탕에 들어가는데 수건은 신체의 일부분을 가리는 용도다. 일본 온천에서는 몸을 모두 보이며 다니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또 탕에 수건이나 머리카락을 담그지 않고 온천욕이 끝나면 물기를 닦은 후 탈의실로 가는 것도 에티켓이다.
온천을 즐기는 즐거움 중 하나는 유카타 입어 보기. 료천 안에서 유카타는 실내복의 역할을 한다. 온천 전후, 식사를 하러 갈 때 유카타를 입고 다닐 수 있다.
온천의 효과가 극대화 되는 ‘때’가 있다. 심신이 온천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일 때 온천을 하는 것이 좋다. 발열이 있거나 임신 초기나 후기, 고혈압, 심장병 등이 있다면 고온의 온천은 피해야 한다. 공복이나 음주 후 입욕은 주의가 필요하다. 온천을 이용하기 전 객실에서 30~60분간 휴식을 취하며 충분한 물을 마신다. 입욕은 하루 3회 정도가 적당하며 몸 상태에 따라 횟수를 조절한다.

료칸에는 ‘우렁각시’가 산다
종종 료칸에 묵으면서, 필요한 용품이나 이부자리 등이 제 시간에 딱딱 준비돼 있는 객실에 들어설 때, 깊은 배려에 감동을 느끼곤 한다. 료칸을 이용하기에 앞서 료칸에 묵는 내내 투숙객의 ‘우렁각시’가 되어 주는 오카미상과 나카이상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 여관이건 현대식 료칸이건 보통 안주인, 즉 오카미상이 있다. 오카미 상은 대를 이어받은 딸이나 며느리가 그 자리에 오르며 여관에 따라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또 나카이상은 객실담당 직원인데 이들은 식사나 잠자리, 온천 등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료칸이 현대화, 호텔화되면서 오카미상 대신 남자 총지배인이 있는 경우도 있고 남자 나카이상도 늘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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