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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금강산을 미약한 글재주로 표현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금강산을 굳이 말해 보라면 옛 선인들의 표현을 빌어 그 감동에 조심스레 동참하는 수밖에.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마다 서서 정신 잃고 바라보았다’던 김삿갓의 시심을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2박3일 동안 이 겨울의 금강산은 겨울바람처럼 깊이, 그렇게도 수려하고 아프게 방문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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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주)일연인베스트먼트 www.ekumgangsan.com 1688-2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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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연 폭포줄기에 시름을 잊다

오전 7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내다보는 빗속의 경치는 운치가 있지만 구룡연으로 오르는 오늘의 산행이 사뭇 걱정스럽다. 산행을 하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말에 비옷을 하나씩 챙겨들고 온정각으로 향한다. 온정각은 금강산 관광의 베이스캠프다. ‘따뜻한 물이 나온다’ 해서 온정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곳에 세워진 휴게소는 그 일대가 일제시대부터 이미 온천이 개발되어 관광지로 각광받던 곳이다.

현대가 건설한 휴게소에는 식당과 면세점, 편의점과 커피숍 등이 밀집해 있고, 김정일 방문 기념비와 정몽헌 회장 추모비도 볼 수 있다.

오전 8시20분, 온정각의 현대아산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구룡연을 향해 버스가 일제히 출발한다. 구룡연 계곡은 비봉폭포와 구룡폭포는 물론이고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로 알려진 8개의 옥빛 웅덩이가 있는 상팔담이 있는 계곡이다.

버스가 한창 공사 마무리 단계인 신계사를 지난다. 신계사는 남측 해인사 스님과 북측의 조불련(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의 스님이 함께 이끌어갈 사찰이다. 신라 519년 보훈조사가 창건하고 6·25 때 소실된 것을 재건한 상태다.

어느새 구룡연 입구의 식당 겸 휴게소인 ‘목란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버스가 정차했다. 빗줄기가 점차 잦아드는 가운데 사람들은 서둘러 산행 길에 오른다. 질서정연하게 무리지어 천천히 금강산으로의 첫발을 내딛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약수터인 삼록수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지금부터는 서서히 오르막이다.

금강문에 이르자 암벽 아래 북측안내원이 관광객들을 위해 산삼차를 팔고 있다. 비는 한결 잦아들었다. 옥빛의 맑은 물이 흐르는 옥류동 계곡을 지나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는 중간에 맞이한 비봉폭포 앞에서는 북측안내원이 특유의 발성과 억양으로 설명에 열을 올린다.

어느새 8개의 다리를 건너 저만치 구룡폭포가 가까워 온다. 겨울이라 우렁찬 소리와 함께 내리꽂는 폭포 줄기는 볼 수 없지만, 한창 때의 위용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떨어지는 물줄기 옆 암벽에는 ‘미륵불’이라고 선명하게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불’자의 획이 무려 13m나 된다.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 웅덩이에서 9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연. 그 물줄기에 시름마저 함께 녹아 떨어지고 있었다.



-관동팔경의 하나, 삼일포

오후 일정의 또 다른 선택 관광코스의 하나인 삼일포. 관광객 일부는 온천으로 떠난 가운데, 일부는 삼일포 관광을 선택했다. 36개의 봉우리가 둘레 8km의 호수를 에두르고 있는 관동팔경의 절경 가운데 하나라는 삼일포 또한 온정리 휴게소에서 출발한다. 삼일포는 온정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13km 떨어져 있다.

삼일포라는 이름은 신라시대 사국선이 뱃놀이를 하다가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서 돌아가는 것을 잊고 3일을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의 담수 양어장이라는 삼일포는 육안으로도 10m 깊이의 물 밑이 들여다보일 만큼 맑은 물빛을 간직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소나무 숲 사이 산책로를 따라 낮은 능선을 넘어간다. 삼림욕을 하듯 길을 빠져나가면 눈앞에 넓디넓은 호수가 겨울 햇살에 반짝이며 자태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호수 곁으로 자리한 단풍관에서는 막걸리를 비롯한 먹을거리와 함께 소소한 기념품과 북측 화가들의 작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잘못하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삼일포의 경관과 분위기에 취해 버스 시간을 놓치기 십상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봉래대 쪽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바위 언덕으로 된 봉래대를 오르면 삼일포 주위가 더욱 확연하다. 호수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호수 한가운데는 소가 누운 형상이라 이름 한 ‘와우섬’과 그 옆으로 ‘사선정’, ‘단서암’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며 떠 있다. 주위로는 겨울에도 푸르른 숲이 아늑하게 호수를 에워싸고 있다.

구름다리를 지나 장군대로 오른다. ‘김일성장군만세’라고 쓰인 구호가 다른 곳보다 더욱 도드라지게 바위에 새겨 있다. 장군대에 올라 북측 관광안내요원의 농담 섞인 해설을 듣고 나면 삼일포는 눈앞에서 한결 더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오후 4시, 삼일포 관광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온정리 휴게소에서 평양 교예단 공연을 기다린다. 미리 받아두었던 입장권을 들고 온정각에 자리한 금강산문화회관 내에 지정된 자리를 잡는다. 교예단 공연을 보면서는 세 번의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면서 각고의 노력을 생각해서 흘리는 눈물, 공연 중간에 등장하는 한반도기를 보고 한민족임을 느끼는 데서 오는 눈물 그리고 끝도 없는 진기한 예술적 경지에 너무 박수를 친 탓에 손바닥이 아파서 흘리는 눈물까지. 마지막 순서가 끝나자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자리를 뜨지 못한다. 너무도 감동적이라 할 말을 잊는다.



-일만 개의 봉우리가 빚어낸 절경, 만물상

만물상은 차를 타고 오르는 길목부터가 진기하다. 소나무 숲을 가로지르고 ‘승리고개’라고 불리는 총길이 26km의 급경사의 60여 개 굽이치는 고개를 넘어서야 산행은 시작된다.

만물상은 정상까지의 코스 길이는 짧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아이젠을 깊이 박으면서 오르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불어오는 바람은 쌓인 눈 속에서 시야를 어지럽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이 눈부시다. 금강산이 달리 금강산이 아니라는 것은 만물상에 올라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하얀 눈과 어우러진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금강산의 미’로 대표되는 만물상은 한하계와 만상계라 불리는 골짜기를 지나 주차장이 있는 만상정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만상정에서 오르는 길목마다 곳곳에 이름만 들었던 명소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삼선암, 귀면암, 절부암을 포함해서 정상인 해발 936m의 만물상 천선대까지. 천선대 정상에 오르면 비로소 사방으로 만물상의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아이젠을 박고서 철계단을 오르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만물상의 북측환경요원이 숨을 고르는 객들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이대로 포기하실 겁네까? 정상까지 갈 사람인지 아닌지 9년 동안 일하다 보니 사람만 보면 압네다.” 안내원의 격려 아닌 격려로 다시 힘든 걸음을 뗀다. 드디어 정상이 눈앞이다. 하지만, 이날은 눈이 많이 와,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정상을 10여 미터 남겨두고 부득이 산행을 중지해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겨울 금강 개골산(皆骨山)이 안겨주는 만물상의 비경은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감격적이었다.

정상 가까이에 서서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지만, 눈 덮인 금강산의 경관을 보노라면 코끝이 찡한 것은 비단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만물상의 신비한 매력은 어떤 표현도 진부하리만큼 금강산의 깊이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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