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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페(Sass-Fee)는 자욱한 밤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사스탈(Sasstal) 기차역에서 우편버스로 갈아타고 까만 어둠을 뚫고 왔던 터라 안개 자욱한 사스페의 첫인상은 더욱 신비로웠다. 까만 밤의 하얀 안개는 한적한 골목길을 비추는 노란 가로등 불빛을 산란시키고 있었다.
몽환적이기까지 한 그 풍경 덕에 겨울의 싸늘함은 느낄 수 없었고 아늑함과 포근함으로 가슴이 훈훈해졌다. 그 아늑함과 포근함이 사스페의 표정이다.


사스페가 알프스의 진주인 이유

사스 골짜기(Sass Valley)에 자리 잡은 사스페는 4000m 이상의 알프스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아늑한 산골마을이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아무리 느린 걸음이라고 하더라도 3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아담한 크기여서 정겹기까지 하다. 4545m의 돔(Dom) 봉우리를 비롯한 고봉준령들이 사스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으며, 만년설로 뒤덮인 3500m의 미테알라인(Mitteallain)은 4계절 내내 관광객들과 스키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상징로고로 쓰인 것으로 유명한 마테호른으로 향하는 근거지인 인근의 체르마트와 마찬가지로 사스페도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전기자동차만 운행된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애틋한 환경보호 노력까지 더해져 사스페는 언제나 산뜻하고 신선하다. ‘알프스의 진주(Pearl of the Alps)’라는 칭호는 그래서 얻게 됐을 것이다.

이튿날에도 사스페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 ‘미테알라인에 올라가봤자 아무 것도 볼 수 없겠다’는 실망감에 힘이 빠졌던 것은 당연지사. “Don’t worry, Sunshine up there!” 경험에서 우러나온 게 분명한 호텔 주인할머니의 확신은 헛된 게 아니었다. 안개를 뚫고 10여분쯤 오르자 케이블카(Alpine Express) 위로 돌연 파란 하늘과 맑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 것. 안개 위 세상은 온통 눈꽃 세상이었으며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의 날렵한 몸놀림이 순백의 도화지 위에 수를 놓고 있었다. 알프스의 진주다운 면모가 펼쳐졌다. 그야말로 스키어라면 반드시 주목해야만 하는 풍경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또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회전식당과 지상 최대높이의 지하철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15분쯤 오르면 3500m 지점(Felskinn)에서 멈추는데 여기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운행되는 톱니바퀴 지하철(Metro Alpine)을 만날 수 있다. 메트로 알파인은 여기에서 3500m 지점의 미테알라인까지 운행되는데, 암벽을 뚫고 톱니바퀴 철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계 최고 높이의 지하철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하철의 종착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회전식 식당이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의 원형식당은 눈치 못할 정도의 속도로 회전하는데 어쩌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좀 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미테알라인에서는 주로 고급 수준의 스키어와 보더들이 활강을 즐기는데 초중급자라면 산 중턱 이곳저곳의 코스에서 알프스 스키를 만끽할 수 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한바탕 눈싸움을 벌이거나 미테알라인의 얼음동굴(Ice Pavillion)을 찾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스위스 속 이탈리아, 티치노

스위스 남부의 티치노(Ticino) 지역은 또 다른 스위스다. 언어가 다르고 기후가 다르고 삶의 방식도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작은 이탈리아라고나 할까. 이탈리아 접경지역이어서 이곳에서는 이탈리어가 제1의 언어로 사용되며, 날씨도 다른 스위스 지역보다 온화한 편이다. 야자수 가로수가 늘어서 있고 다른 곳들보다 더 많은 꽃들이 훨씬 더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눈 덮인 알프스와 꽃이 공존한다. 사람들의 성격도 이탈리아인들처럼 밝고 쾌활하고 수다를 즐긴다. 거기에 호수와 호반 도시의 여유로움까지 더해졌다. 티치노의 전형적인 풍경은 햇볕 따스한 호숫가 노천카페에서 형형색색의 꽃들과 야자수 이파리들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티치노 지역에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산 조르지오를 비롯해 제네로소, 브레 등의 산들이 있기는 하지만 알프스 산맥이 관통하는 스위스 중앙 지역과 비교하면 이곳은 호반도시의 색채가 물씬하다. 이탈리아와 공유하고 있는 거대한 루가노(Lugano) 호수와 스위스의 가장 낮은 고도에 해당하는 마죠레(Maggiore) 호수가 티치노 지역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티치노 최대의 도시인 루가노가 들어서 있고, 로카르노국제영화제로 명성이 높은 로카르노(Locarno), 문화예술의 도시 아스코나(Ascona), 세계문화유산인 벨린조나(Bellinzona)가 티치노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예술과 문화가 일렁인다, 아스코나

스위스 초행의 여행객들은 대부분 루가노와 로카르노를 중심으로 여행을 하고, 기껏해야 오다가다 벨린조나에 잠깐 들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성을 찾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좀 더 경험 많은 스위스 마니아들은 아스코나를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아스코나는 로카르노에서 자동차로 10여분이면 닿는다. 비록 작은 마을일 뿐이지만 예부터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아 온 지역답게 마을 전체에 문화와 예술의 향취가 가득하다. 구시가지에는 중세시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골목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미술관들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마죠레 호수가의 룽골라고 거리(Lungolago)는 연인들이 산책하기에 맞춤인 낭만의 거리다. 낭만 물씬한 길가의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하고, 마죠레 호수와 아스코나 구시가지, 만년설로 쌓인 알프스 봉우리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어쩌면 티치노의 진수는 작은 호숫가 마을, 이곳 아스코나에 숨겨져 있는지는 모른다.

스위스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취재협조=스위스관광청(www.myswitzerland.co.kr) 02-3789-3200


▣ 다언어의 나라 스위스

스위스는 국어가 4개인 다언어의 나라다. 지역에 따라서 2~3개 언어가 공용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독일어의 경우 스위스식 독일어가 사용되는데 전체 국토의 60% 정도에서 사용하며, 20% 정도인 프랑스어는 서부 지역에서 주로 쓰인다. 이탈리어는 티치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 사용되며 약 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는 라틴어 방언 중 하나인 로망슈어(Romansh Language)와 기타 언어들이 사용된다. 다언어 국가이어서 인지 대부분 영어도 능숙하다.

국어가 4개이다 보니 정식 국가명도 어느 특정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라틴어를 사용해 ‘콘페데라치오 헬베티카(Confoederatio Helvetica)’로 제정했다. 스위스 국가코드나 통화단위, 우편번호, 인터넷 도메인 등에 ‘CH’가 사용되는 이유다.

▣ 스위스 패스 하나면 통한다.

유럽 여행시에는 ‘유레일패스’가 일반적으로 이용되는데 만약 스위스를 좀 더 자세히 여행하고자 한다면 ‘스위스패스’가 유용하다. 유레일패스의 경우 스위스내 민간철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칫하면 비용이 더 증가할 수도 있기 때문. 스위스패스는 ‘스위스 트래블 시스템’이 제공하는 교통패스 중 하나로 자신의 여행일정에 맞춰 4일, 8일, 15일, 22일, 1개월의 유효기간과 좌석등급을 선택하면 된다. 유효기간 동안 자유롭게 스위스 국철은 물론 대부분의 민간철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37개 주요 도시의 전철이나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부가적으로 박물관, 등산철도, 케이블카 등에서도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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