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중국-시탕 上-무채색 천년 수곽에 삶은 잦아들고
[현지취재] 중국-시탕 上-무채색 천년 수곽에 삶은 잦아들고
  • 김선주
  • 승인 2008.05.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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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파서블’한속도감
시탕과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시탕의 느림과 잔잔함과 고즈넉함은 더욱 대조를 보이며 도드라질수밖에없었다. 게다가 악당을 물리치고 무사히 아내와 재회한 뒤 다정스레 수로 석교를 건널 때의 모습은 해질무렵 시탕의 아늑한 풍경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시탕과 완전한 일치를 이뤘으니, 그야말로 정반합의 흡인력은 대단했다.

■ 시탕, 그 한껏 늘어진 시간

찬찬히 살펴보면, 마을을 가로지르는 폭 10m 남짓의 수로 속 탁류는 흐르려는 듯 멈추려는 듯 미동이어서 후줄근하다고 할까 수수하다고 할까 싶은 뱃사공의 삿대질은 들인 품보다 더 선명하고 굵은 물결을 나룻배 뱃머리와 옆구리에서 튕겨낼 수 있었다. 헬 수 없이 스쳤던 물살에 닳았는지 물살에 얹혔던 세월에 낡았는지 너절해진 나룻배가 사공의 삿대질로 움찍거릴 때 물결의 씨알은 제법 굵었는데 그마저 지척의 뭍에 채 닿기도 전에 기진맥진 흔적 없이 사리지기 일쑤였다. 느릿느릿 어쩌다 가까운 뭍 쪽에 찰싹 닿더라도 매가리 없는 것이 태반이라 수로와 맞닿은 수변 여관(객잔) 작은 뜰에서 봄날 아지랑이 같은 햇볕을 쬐며 한껏 게으른 책읽기를 하던 투숙객은 아랑곳없이 책장을 넘겨 여린 햇빛을 얼굴에 반사시킬 수 있었다.

오랜 만의 좋은 볕이었던지 대강 세워진 대에 대충 힘없이 걸쳐진 빨랫줄에 하얗고 갈색이고 간혹 빨강인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널던 아낙도 하던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고, 갓 걸음마를 시작한 손자 재롱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할머니가 된 듯한 젊은 촌로가 수더분하게 웃음 지을 때 만두인지 찐빵인지 파는 상인은 늘 그랬듯 지나치는 행인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렸다. 물은 멈춘 듯 흘렀고 나룻배는 조용히 물살을 갈랐으며 한갓진 일상은 오늘도 변함없이 시간을 한껏 늘어지게 했다.

찰칵, 찰칵…. 여기에 더해지는 낯선 광경. 250분의 1초, 125분의 1초의 속도가 풍경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가히 이질적이다. 낯선 발걸음들은 메뚜기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닌다. ‘안단테(느리게)’의 삶을 ‘비바체(매우 빠르게)’의 템포로 훑는다. 그 왁자지껄함은 이곳에 없던 생경한 음역이다. 찰나의 속도와 빠른 템포, 어수선한 부산함이 풍경을 분절하고 재촉하고 어지럽히려 든다.

하지만 어림없어 보인다. 낯선 수채화 붓질이 아무리 거듭돼도 투박한 무채색 크레용 원판은 변하거나 뒤바뀌지 않는다. 단지 색칠해지지 않은 빈 공간에 낯선 색채의 조그마한 삼투만을 허락할 뿐이다. 강남 6대 수향 시탕(서당)이다.



■ 시탕에서는 ‘임파서블’한 속도감

중국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 반 정도면 상하이와 모든 게 다른 대척점에 닿는다. 저장성(절강성) 지아싱(가현)시에 속한 물의 마을(수향) 시탕. 상하이가 자랑하는 대도시의 현란함과 번잡함 대신 여유와 푸근함이 천 년 수로를 따라 흐른다.

시탕의 물길은 춘추전국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접경지역으로서 양국이 시탕을 두고 서로 견제하고 또 교역했으며, 이후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사람들이 늘고 수로를 중심으로 거리 곳곳에 건물들도 즐비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의 수로마을 구획이나 건축양식 등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있어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저우좡(주장), 우쩐(오진), 통리(동리) 등과 함께 강남의 6대 수향 중 한곳으로도 꼽히고 있으니 예사로운 곳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시탕은 최근에서야 세간의 이목을 받기 시작했을 뿐이다. 아마 인근의 다른 강남 6대 수향에 밀렸거나, 상하이 여행의 세트메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상유천당, 하유소항(하늘에는 천당이,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의 쑤저우와 항저우에 가려졌었기 때문이리라.

시탕이 최근에 신흥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시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지의 속도감과 박진감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의 마지막 마무리 장면 촬영장소로 외부에 알려지고 난 뒤,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던 시탕은 일약 관광명소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았는가, 보았다면 기억하는가? 비밀임무수행기관인 IMF(Impossible Mission Force) 소속의 ‘이든 헌트’(톰 크루즈 분)가 인질로 잡힌 아내를 구하기 위해 수변도로를 전력질주하고, 수로 위 카메라는 ‘롱 테이크(Long Take)’로 그를 숨 가쁘게 따라잡았던 장면을. 다닥다닥 붙은 암갈색 기와지붕을 아슬아슬 내달리고 우당탕 총격전을 벌이고, 좁다란 골목길에서 악당 우두머리와 엎치락뒤치락 최후의 몸싸움을 벌이던 순간을. 이전 상하이 촬영장면에서 상하이 시내의 휘황찬란한 야경을 배경으로 아찔한 마천루에서 뛰어내릴 때의 스릴과 긴박함이 그대로 시탕으로 건너온 것이다.

대도시 상하이에서라면 몰라도 시탕에서 녀석의 질주는 너무 빨랐고 대결은 과하게 치열했다. 분명 시탕과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시탕의 느림과 잔잔함과 고즈넉함은 더욱 대조를 보이며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악당을 물리치고 무사히 아내와 재회한 뒤 다정스레 수로 석교를 건널 때의 모습은 해질 무렵 시탕의 아늑한 풍경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시탕과 완전한 일치를 이뤘으니, 그야말로 정반합의 흡인력은 대단했다.

■ 아직은 어설프니 그래서 아름답다

2006년 영화의 개봉과 흥행 이후 시탕의 풍경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고 시탕 또한 영화포스터나 촬영당시의 사진 등을 내걸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시탕의 ‘변질’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외부의 때가 묻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형식적인 다른 유명 관광지들과 달리 시탕은, 여전히 시탕만의 원형질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 뱃사공은 빠른 손놀림으로 종착지까지 서둘러 가려하기보다는 기꺼이 젖던 노를 여행객에게 내어주는 여유를 지녔다. 좌판을 벌인 상인은 감히 여행객을 조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혹 눈이라도 마주치면 제가 먼저 멋쩍어 웃는다. 원형 테이블에 올망졸망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가족들은 느닷없이 터진 카메라 스트로보를 탓하지 않는다. 이 가격 밑으로는 절대 안 된다며 완강하던 부채 장수는 매몰차게 등 돌리는 손님을 그냥 놔둘 정도로 심리전에 익숙하지 못하다. 외지인들의 호들갑에는 무신경한 듯 수로 양 옆 보도에는 옷가지며 시래기 등의 일상이 햇볕을 쬔다. 후덕하고 수수하니 이맛살 찌푸릴 일 없고 경계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물론 다른 강남의 수곽들에 비해 시탕이 별쭝난 매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비슷한 분위기에 비슷한 풍경이다. 오히려 아직은 어설프고 서툴다. 시탕의 진정한 흡인력은 바로 그 미완의 부족함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 우리는 그네들 삶의 본류 속으로 흘러 들어온 작은 지류에 불과하다. 작은 지류가 제 아무리 세차다 해도 결국 본류 속으로 잦아들고 말 듯, 서너 시간 하릴 없이 시탕 이곳저곳을 거닐다보면 어느새 발길은 느긋해지고 마음은 아늑해진다. 그렇게, 수향 시탕의 물결은 천 년 세월의 흐름을 이어왔나 보다.

중국 시탕 글·사진=김선주
취재협조=대한항공 02-751-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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