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채우는, 내 안의 ‘보물찾기’

일주일 내내 바쁜 일상 속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에서 시달리고, 책상 위 수북하게 쌓여 있는 일거리에 치이고 나면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어 버린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도 계획을 짜고 시간을 내는 것도 또 다른 부담이 된다. 이럴 때 주말을 이용해, 맑은 공기와 정갈한 분위기가 저절로 긴장을 풀어 주는 산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차를 마시거나 산사를 거닐며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자아성찰의 기회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도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휴가철이 다가온다. 일찌감치 이번 휴가만은 절대로 집에 박혀 마냥 쉬지만은 않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나니, 어디를 가야 할지, 시간은 언제 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휴가란 게 늘 그렇다. 일 년 동안을 휴가를 기다리며 살아온다고 늘 말하다가도 막상 닥치게 되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렵게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하고 떠나도 어디든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막히는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십상이다. 휴가 후유증은 말할 것도 없다. 휴가란 것이 본래 그런 게 아닌데 오히려 일거리와 피로만 더 얻는 셈이 되고 만다.

좀 색다르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디 조용하게 휴가를 보낼 장소가 없을까? 뭔가 나 자신을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의 끝에 템플 스테이가 있다.

이쯤에서 커밍아웃을 하자면 나는 기독교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좀 어중간한 기독교인이다. 일요일이면 교회 갈 시간을 피하려 늦잠을 자고 잘못을 저지를 때만 손 모아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휴식형, 불교문화체험형, 생태체험형, 전통문화체험형, 수행형, 템플라이프형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된다.

■황악의 산자락, 직지사로 가는 길

경북 김천에 위치한 직지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절 중 하나이다. 구름도 쉬고 넘는다는 추풍령 아래 첫 동네가 김천시이다.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황악산은 백두대간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추풍령에서 잠시 기세를 낮추었다가 다시 힘차게 일어나는 학의 형상이라고 하여 ‘황학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을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누런 금빛의 ‘황학(黃鶴)’이라고 부른 이유는 이 산에 상서로운 기운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지사는 황악산의 상서로움만큼이나 그 이름에 재미있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직지사는 이 절을 창건한 아도화상이 절터를 찾아다니다 지금의 절터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고 해서 ‘직지(直指)’, 영어로는 ‘Direct Pointing Temple’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여름 때문에 도착하기도 전, 버스에서부터 땀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직지사로 향하는 굽이굽이 길을 지나며 바쁜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바람 소리와 맑은 공기에 온몸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직지사에서 서강대학교 어학당에서 온 30여 명의 외국인 학생들을 만났다.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러시아, 콜롬비아, 그루지야, 미국 등 출신지도 다양했던 만큼 그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걱정하는 사이에 그들이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건네 온다.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에 왔고, 한국의 불교를 직접 느끼고 싶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파란 눈과 까만 피부를 가졌다고 다를 건 없었다.



■남기지 않고 비워내기 ‘발우공양’

짐을 숙소에 내려놓자마자 스님을 따라나섰다. 보통 가을빛이 완전히 여문 가을 산사의 모습이 제일이라 말하지만 따스한 초여름의 햇살과 오색단청 아래 흐르는 은은한 향내음, 낮게 흐르는 목탁소리와 볼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직지사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마흔 채가 넘었던 건물들이 불타 없어지고 폐허가 되어 아낙네들의 치성터 정도로 쓰이다가 1966년 복원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찾았다. 직지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천불전이다. 천불전 안에는 표정이 각기 다른 천여 개의 옥돌로 된 불상이 보는 사람의 경탄을 자아낸다. 그 불상 가운데에는 알몸의 동자상이 하나 있는데 첫눈에 이 동자상을 찾아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이곳을 찾는 아낙들은 동자 찾기에 열심이라고.

사찰 곳곳을 한참 걷고 나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스님들은 보통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예불을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5시에 저녁 공양을 드린다. 출출하던 차에 이른 저녁공양은 너무나 기쁜 소식이다. 처음 접해 보는 발우공양. 발우는 공양 때 쓰는 그릇을 일컫고, 공양이란 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을 말하기도 하지만 죽은 이의 영혼에게 바치는 음식을 뜻하기도 한다. 공양 후 남은 음식은 탐욕을 부려 아귀도에 떨어진 귀신 아귀가 먹게 된다. 발우공양은 발우를 비워내고 그 안에 숭늉을 받아 노란 단무지로 발우의 안쪽 면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그 단무지와 숭늉 또한 비우고 나면 마무리된다. 발우공양에는 자기가 먹을 만큼의 양만 담아서 먹고 깨끗하게 비워내는 절제와 비움의 가르침이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여유를 찾는 ‘다도’

요즘은 식사 후엔 차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지만 막상 다도(茶道)를 제대로 알고 차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도란 차를 마시는 멋과 여유로운 삶을 지향한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차를 달여서 마시는 전 과정을 중요시한다. 차를 마시는 일은 마음자리를 닦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함께 차를 나누는 사람들과의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차는 오감으로 마신다고 한다. 귀로 찻물을 끓이는 소리를, 코로는 향기를, 눈으로는 차와 다기를, 손으로 찻잔의 감촉과 따뜻함을 그리고 입으로는 차의 진정한 맛을 느끼는 것이다. 차를 오감으로 음미하려면 무엇보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일상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찾아가는 다도의 정신은 꼭 되새기며 실행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조용히 나에게 질문을 던지다 ‘명상’

새벽 예불의 가장 큰 적은 졸음이다. 밖은 아직도 캄캄하고 몸은 조금 더 눕고만 싶은 마음뿐이다. 모든 미물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 스님의 목탁 소리와 함께 108배를 시작한다. 절은 삼보(불佛, 법法, 회僧)에 대한 예의와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의 표현이며,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수행 방법 중 하나이다. 한 번 한 번 절을 할 때마다 발끝이 저려 오고 이마에서 땀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전신의 기혈이 활발하게 돌아 머리는 더욱 상쾌해지는 것을 느낀다. 108배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 눈을 뜬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려는 모습이고 자신의 본 모습은 눈을 감았을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긍정한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용서를 받지도, 남을 용서하지도 못한다. 이제껏 내가 누구이며 나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조용히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남은 물론 자신조차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는 울력을 위해 모두 마당으로 나선다. ‘울력’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한다는 의미로 이를 통해 자연과 대화하고, 함께하는 이와 화합을 이루며, 또 자신의 수행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소리가 새벽 산사에 울려 퍼지고 마음속에 있던 안 좋은 것들까지 함께 쓸어 내버리는 기분이다.

당신은 세 잎 클로버를 찾기 원하는가, 아니면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원하는가? 사찰을 떠나는 우리들에게 스님이 질문을 던지신다.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한다. 이미 행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운까지 바라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가는 방법
직지사로 들어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황간 IC나 김천 IC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추풍령 휴게소에서 4호 국도로 나오는 톨게이트도 있으므로 이곳을 이용해도 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김천공용터미널에서 11번 혹은 111번을 타면 된다. 기차역으로는 김천역에서 내려 직지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글·사진=Travie writer 김준영,
취재협조=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불교문화사업단 www.templestay.com



★템플 스테이, 이것이 궁금하다

Q. 템플 스테이는 언제든지 참가 가능한가요? 주말에만 운영하는 사찰도 있지만 많은 사찰에서 상시운영하고 있다. 우선 템플 스테이 홈페이지(www.templestay.com)를 통해 필히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단체 참가인 경우 일정 조정이 가능하다.

Q. 참가시 준비물은? 대부분 사찰에서 참가자에게 수련복을 지급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수련복은 없으니 아이들을 동반한다면 편한 옷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 세면도구와 환절기 및 겨울철엔 따뜻한 옷 지참 필수.

Q. 참가비는 얼마인가요? 1박2일 어른 1인 기준, 3만원에서 5만원 정도. 숙식비와 프로그램 진행에 필요한 제반경비를 포함한 금액이다. 프로그램별, 대상별 참가 비용에 차이가 있으니 해당 사찰에 미리 문의해야 한다.

Q. 종교가 다른 경우, 예불이나 기타 종교행사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나요? 종교가 다를지라도 예불에 참석하면 좋다. 절을 하기 부담스러우면 사찰과 상의를 해서 법당에 들어가 뒤에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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