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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섬 족자카르타(Yogjakarta) 특별주의 주도인 족자카르타는 자바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자바 민족의 고향이다.

지역 전체가 전통문화 보존과 교육열로 자바 민족의 자긍심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족자카르타. 신의 섭리에 순명하며 불안정한 자연의 용틀임 안에서도 잔잔하게 평온을 유지하는 고수의 자세를 그곳, 족자카르타에서 만날 수 있다.

새삼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 어느 날, 과연 내가 뜻한 바대로 이루어진 일들은 얼마나 될까 꼽아 본다. 시간이 흐르고 생활도 흐르고 그악스럽게 해내고 싶은 것들에 몸 달아 하며 지낸 시간들이 일순 머리를 스치지만 꼬집어 말해 그 안에 내 계획과 시도의 선명한 깃발이나 그 깃발이 드높이 휘날렸던 혁혁한 자취는 콩알만큼도 발견되지 않는다. 오로지 순간순간의 선택들만이 점점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고 그 선택들을 부추겼던 어리숙하거나 독했던 마음의 그림자들만이 희미하게 기억 속에서 흔들릴 뿐이다.

족자카르타에 도착한 그날도 메라피 화산은 뭉클뭉클 연기를 쏟아내며 성을 내고 있었지만 그 소식을 전하는 가이드 무한디스의 얼굴은 그저 옆집 대소사 전하듯 무심하기만 하다. 자바섬의 잦은 지진은 인명 피해와 이어지는 복구 작업 등, 사람의 혼을 쏙 빼는 작업들을 반복케 하지만 그 또한 일상이 된 듯, 오히려 메라피 화산 일출 트레킹을 권하기까지 한다.

하기야 어디서 그런 활화산의 힘과 공포스러움을 생생하게 가까이서 접해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쨌든 자연재해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이 땅의 사람들이 염려스럽다.
“죽으면 그뿐이죠. 무섭지 않아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일 뿐이에요.”
고수 무한디스! 대한민국 대구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1년 가까이 지냈다는 그의 태도는 매사에 노심초사 안달복달인 질문자를 머쓱하게 한다.

■나도 모르게 만나는 깨달음

오후도 무르익어 1~2시간 후면 일몰이건만 여전히 쨍쨍 내리쬐는 열대의 태양은 보로부두르(Borobudur) 불교 사원 하루치기 관광에 나선 뜨내기 방문객들을 여지없이 몰아세운다. 마침내 사원 앞 돌계단을 오를 때 즈음이면 박한 일정에 대한 고단함과 불평이 벌건 얼굴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마침내 눈앞에 들어오는 거대한 사원 앞에 서서 땀 한번 훔치고 나면 일단은 퇴약볕 아래 발품 판 것이 아까워서라도 그 거대한 세계 안으로 들어가 보고야 만다. 마음이 몸을 챙기고 몸이 마음을 챙기며 그곳으로 다가가는 그 순간부터 나 또한 보로부두르가 원하는 그 방향으로 함께 향하게 된다.

얼핏 거대한 돌덩어리로 보이는 보로부두르 사원은 하부에서부터 최상부까지 욕계(欲界; 욕망에 흔들리는 인간과 저급한 신들이 사는 세계)와 색계(色界; 욕망을 떠났으나 아직 육체를 갖고 있는 존재들이 사는 세계), 무색계(無色界; 욕망도 육체도 없는 존재들이 사는 세계)로 나누어 구분해 놓았다. 어지러운 욕망의 세계에서부터 깨달음의 세계, 세속에서 열반에 이르는 과정과 불경의 가르침을 하나의 구조물 안에 그대로 구현해 놓고 있다. 위로 위로 올라가는 동안 온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돋을새김 벽화들을 촘촘히 두 눈으로 받아낸다. 생로병사에 휘둘리는 인간사와 인과응보, 그리고 부처의 탄생과 출가, 열반 등 부처의 일대기와 불경의 내용 등이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의 감각을 일깨운다.

하지만 역시 이 경이롭고 불사가의한 건축물 앞에서조차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가만히 돌 위에 손을 얹어 본다. 돌 위에 이야기를 새기고 조각조각 맞춰 나갔을 천년 전의 사람들, 그리고 내 손이 닿기 전에 그 자리를 눈과 촉감으로 스치고 갔을 수많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

보로부두르 사원은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을 그 지난했을 건축 과정을 포함해 수행과 예식을 위해 찾아드는 신자들과 무심한 관광객들까지, 그 모두를 일깨우는 거대한 불경 그 자체이며 그들 모두의 짜글짜글한 염원들을 담아 안는 거대한 탑이다. 그리고 보로부두르 사원 벽면을 훑으며 차츰 상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거대한 탑돌이 수행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나만 그런가? 안 그래요?”

최상부에 올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선다. 잠시 잠깐이나마 탑돌이를 통해 감지한 삶의 자세를 수굿이 되새김질하면서 안달투성이 나를 내려놓는 여유를 부려 본다. 안달복달하며 사는 것이 인간사라지만 좀더 높은 가치를 향한 온전한 지향들이 모여 있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내 뜻을 고집하는 마음이 조금쯤은 작아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순간, 순식간에 마음의 평화를 깨놓는 한마디가 있었으니, 저기 스투파 안 부처님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그 효험이 뛰어나다는 부처님을 모신 스투파 주변으로 벌써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내 머리 속에는 소원 1, 2, 3이 떠오르고 그중 무엇을 골라 빌어야 하나 생각의 가닥들이 엉키기 시작한다. 발걸음은 허둥대고 선택은 안 되고, 한편 ‘이러는 내 모양새가 덜 떨어져 보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까지 함께 들썩거린다.

정확하게 동쪽에 자리한 스투파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여자는 왼손 약지로, 남자는 오른손 약지로 부처님의 발뒤꿈치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어야 한다. 왼팔을 스투파 격자 틀 안으로 집어넣어 본다. 앗차차! 안 닿는다! 나의 팔은 영험한 부처님의 발에 닿기에는 너무도 짧기만 하다. 안타깝고 부끄럽다.

고요하고 관조적인 일정의 말미에 벌어지는 이런 해프닝은 내 안에 자리한 닦이지 않은 불성이 인간사 안에서 어찌 휩쓸리고 탁해지는지 보여 주는 웃지 못할 반전이다. “그래, 사람이 다 그렇지, 나만 그런가? 안 그래요?”

일몰의 차분한 햇살이 그 거대한 ‘탑’과 대지를 비추고, 멀리서 사원 전체를 조망코자 너른 잔디밭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작은 점처럼 이리저리 흩어진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글·사진=한윤경 기자 hahny@@traveltimes.co.kr
취재협조=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www.garuda.co.kr,
코리아월드트래블 02-3705-8800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
Borobudur Temple

사원 발굴의 역사 8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은 자연재해에 의해 매몰된 이후 천년 세월을 땅 속에서 보낸 끝에 1814년, 영국인 총독 토마스 래플스에 의해 발견된다. 그후 인도네시아를 식민지 하에 두고 있던 네덜란드의 주도하에 1900년대 초부터 복원작업이 이루어졌으나 재정난과 반복되는 지진으로 그 또한 제자리 걸음을 걷는다. 다시 복원 작업이 진행된 것은 1973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고부터.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보로부두르 사원은 지금도 여전히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미얀마 파간과 더불어 세계 3대 불교 유적으로 손꼽힌다.

사원의 구조 사방 대칭의 구조물은 전체가 9층으로 1층에서 6층까지는 사각형이고 상부 3층은 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체 넓이만 1만2,000m2, 1층 한 변의 길이가 약 120m, 100만개가 넘는 안산암 덩어리로 쌓아올려진 전체 사원의 높이는 31.5m에 이른다. 1층에서 9층까지 약 1,500점의 부조로 장식된 전체 회랑의 길이는 약 4km. 7~9층 사이에 종 모양의 불탑, 스투파(stupa)가 72기 동일한 간격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각각의 스투파 안에는 부처를 모셨다.

사원의 위치 주변으로 메라피 화산을 비롯해 3,000m가 넘는 고봉으로 둘러싸인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족자카르타 북서쪽 42km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족자카르타 도심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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