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여행업계는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지만 항상 상승곡선만을 탔던 것은 아니다. 약 10년 뒤 몰아닥친 IMF 구제금융 사태는 여행업계에 직격탄을 안겼고 2001년 미국 9·11 테러사건,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4년말 태국 지진해일(쓰나미) 등 크고 작은 악재들이 이어졌다. 그 때 마다 여행업계의 성장곡선도 곤두박질치면서 부침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러나 변치 않는 사실은 그 부침 속에서도 여행업계는 결국 성장을 일궈왔다는 점이다.

1989년 이후 성장을 지속해온 여행업계가 약 10년 뒤에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대대적인 구조변혁을 맞았던 것처럼, 다시 10년 뒤인 현재 여행업계의 2차 구조변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IMF 때를 상기시키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위기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대응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겪은 숱한 악재와 위기 속에서도 여행업계가 현재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위기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결단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방식과 발상으로 위기를 오히려 재도약과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사례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본다.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1. IMF를 1위 여행사 발판으로 - 하나투어
“위기를 극복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하나투어가 지금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IMF 외환위기였다. 1998년 들어서면서부터 해외여행객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여행사들은 폐업이나 대량해고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투어는 대외적으로는 항공권 발권대행 업무를 시작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인원감축을 택하기보다는 월급을 줄이는 비상경영 체제로 위기에 맞섰다. 언젠가 경기가 회복되면 여행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당시 상황에서는 공감을 얻기 힘들 수도 있었던 확신 때문이었다. 그 확신은 맞아 떨어졌다.

하나투어 권희석 사장<사진>은 “당시 경영진 모두는 위기를 극복하면 반드시 성장의 기회가 온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힘을 다했다”며 “그 판단이 적중해 불과 반년도 채 안돼 경기가 점차 좋아졌고 하나투어는 단숨에 1위 여행사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만약 그 때 하나투어가 다른 업체들과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현재의 모습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이 때의 경험은 이후 9·11 테러사건이나 사스 등의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믿음과 확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됐다.

과연 현재의 위기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권 사장은 “IMF와 사스에 버금가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충격을 줬던 그 때와 달리 이번 위기는 서서히 외부에서 닥쳐오고 있어 스스로 위기의식을 갖는 게 필요한 상황”이라며 “하나투어도 그동안 빠른 성장을 이어오면서 성장에 바빠 효율성과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에 소홀했던 게 사실인 만큼 이번 ‘위기’를 이용해 내부 프로세스 개선, 관리 시스템 및 인력운영상의 효율성 제고,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 등을 통해 ‘펜더멘탈’을 강화해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2010년 항공권 발권 수수료 자유화로 인해 커다란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만큼 여행업계 뿐만 아니라 항공업계까지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굵직한 사건 때마다 여행업계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더 성장해왔던 만큼 이번 어려움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성장통’으로 보고 대비하면 더 큰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서 다시 한번 하나투어의 확신과 믿음을 읽을 수 있다.

“굵직한 사건 때마다 여행업계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더 성장해왔던 만큼 이번 어려움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성장통’으로 보고 대비하면 더 큰 희망이 있을 것""


2. ‘확신 있는 모험’으로 위기 돌파 - 퍼시픽에어에이전시 PAA
“어려운 시기일수록 성공하기 쉽다”


“만약 그 때 판단을 잘못 했다면 현재의 PAA도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16개 항공사의 한국GSA를 맡으며 대표적인 항공GSA 전문업체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는 퍼시픽에어에이전시(PAA)에게도 위기와 그에 따른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2000년 3월, 당시 PAA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던 캐나디안항공(Canadian Airline)이 에어캐나다에 흡수합병되면서 PAA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던 것.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PAA는 오히려 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기존 50평 규모였던 사무실을 3배로 늘리고 직원들도 그대로 유지했던 것.

PAA 박종필 사장<사진>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적자원이다. 인적투자 개념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대신 직원들에게 2년 이내에 함께 잃어버린 70%를 만회하자고 주문했다. 결국 1년 반만에 회복했다. 일종의 모험이었지만 ‘확신이 있는 모험’이었고 현재의 PAA를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확신이 있는 모험은 IMF 때에도 빛을 발휘했다. IMF의 충격파가 최고조를 향해 달리던 1998년 1월, 직원들 가족을 초청해 PAA는 감원과 감봉이 절대 없다고 선언했고 이는 결국 직원들의 사기진작으로 이어졌다. 1998년에 PAA 직원들은 무려 1200%의 보너스를 받는 결과를 일궈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PAA는 지난 5월에 전 직원들에게 인센티브 및 보너스로 100~200%를 지급했다. ‘직원의 행복이 회사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PAA의 사훈에 따른 결정만은 아니다. 위기가 왔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체계적인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모험을 감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사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성공하기 쉽다는 믿음을 갖고 사고의 전환을 이루면 어떤 위기에도 도전할 수 있다”며 “평소에 체계적인 수익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리스크 헤지(Risk Hedge)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PAA는 여객부문과 화물부문의 조화를 통해 시장상황 변화에도 안정성을 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항공사 또한 지역별로 골고루 맡고 있어 지역적 수요변동에도 유연하게 대처해나가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IMF에 이은 제2의 여행업계 구조변혁의 조짐’이라고 바라본 박 사장은 “항공권 발권수수료 폐지까지 겹쳐 IMF 때보다 더 심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고통은 따르겠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산고’라고 생각하고 여행업계도 변화를 따라잡고 체질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단 여행업계 뿐만 아니라 타 업종도 벤치마킹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고 상호 윈-윈을 위한 전략적 제휴와 협력, 위기돌파를 위한 공동의 활동 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성공하기 쉽다는 믿음을 갖고 사고의 전환을 이루면 어떤 위기에도 도전할 수 있다’


3. 첫 광고 낸 날 9·11 테러 터져 - 노랑풍선
“더 나은 상황으로 가는 잠깐의 고통”


노랑풍선이 영업을 개시한 때는 2001년 9월. 정비를 마치고 첫 신문광고를 낸 날 공교롭게도 미국 9·11 테러사건이 터졌다. 의욕과 기대로 첫 발을 내디딘 신생업체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첫 신문광고를 내고 저녁 때 집에 들어가 보니 TV화면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더라고요. 그게 9·11 테러 사건의 긴 터널로 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노랑풍선 고재경 사장<사진>도 물론 당황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에 여행업계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신문광고를 줄이는 등 움츠렸고, 업계 전체가 갈팡질팡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노랑풍선은 흔들림 없이 당초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고재경 사장은 “당시 새로 시작하는 입장이어서 기존 업체들과 달리 오히려 부담이 적었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했던 것”이라며 “항공, 지상비, 광고 요금 조건 등도 오히려 호의적으로 변해 상품구성에 유리했고, 수익이 많지는 않았지만 모객도 꾸준해 자신감을 갖고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두들 움츠린 상황 속에서 노랑풍선의 거침없는 행보는 언론의 주목을 받아 당시 매체 노출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위기를 정면 돌파해 지금의 노랑풍선을 만드는 발판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하는 게 노랑풍선의 전략은 아니다. 고 사장은 “위기와 기회가 함께 오는 것은 맞지만 상황에 따른 정확한 판단이 중요하다”며 “사스 때는 신속하게 광고 중단과 무급휴가를 결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예의주시 하고 있지만 ‘죽을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라며 “그동안 여행업계가 헤쳐 온 숱한 위기들 덕택에 위기에 대한 내성도 커진 만큼 잘 극복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고 사장의 위기관리 철학은 “특별한 답은 없지만 위기에 대해서는 어려울 때가 아닌 활황일 때 대비해야 되며, 더 나은 상황으로 가기 위한 잠깐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항공권 수수료율 폐지도 여행업계가 새로운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노랑풍선은 목표치(70%)보다는 낮았지만 올해 상반기 전년대비 30%의 성장을 기록했으며, 올해 전체적으로 150억 안팎의 매출액에 20만명 정도의 송객실적을 내다보고 있다.

“특별한 답은 없지만 위기에 대해서는 어려울 때가 아닌 활황일 때 대비해야 되며, 더 나은 상황으로 가기 위한 잠깐의 고통일 뿐”


4. IMF 계기 사업 전환해 대성공 - 월드호텔센터
“질적 가치 있는 한 절대 안망한다”


호텔 예약 부문의 대표적인 업체인 (주)월드호텔센터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사업영역을 전환해 성공한 사례다. IMF 이전까지는 미주 전문 랜드사인 ‘도레미투어’를 운영했지만 IMF를 계기로 랜드 업무는 완전히 접고 호텔예약으로 사업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월드호텔센터 이병혁 사장은 “1997년 11월까지는 업무가 폭주했는데 12월이 되자 그야말로 모든 게 멈춰버렸다”며 “이를 계기로 랜드 업무는 완전히 접고 호텔예약 서비스로 방향을 바꾸고 전문성을 키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행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숙박 부문이 향후 급성장할 것이며, 항공과 달리 선택의 여지도 넓다는 판단 등에 따른 대전환의 결정이었다.

이 사장의 결정은 신속했고 후속작업도 체계적이었다. 4개월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 1998년 4월부터 본격적인 호텔예약 사업을 개시했다. 당시 20명 안팎이었던 직원들과 당초의 상여금도 그대로 유지, 지급했다. IMF 여파로 사회 전 부문이 위축돼 있던 상황이었지만 월드호텔센터는 오히려 광고를 늘리는 등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당시 환율상승으로 숙박요금이 급상승한 반면에 저렴한 숙박을 찾는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 등 기회요소가 있었다”며 “사업개시 후 6개월 정도 지난 뒤부터 바빠지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월 2000실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 월드호텔센터는 월 5만실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직원수는 84명. 사업영역도 한국인의 해외호텔 예약, 한국인의 국내호텔 예약, 외국인의 국내호텔 예약, 외국인의 해외호텔 예약 등으로 다각화됐으며, B2B 뿐만 아니라 B2C 호텔예약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사장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꾸준히 강화하는 게 위기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라며 그래야만 “아웃바운드가 좋지 않으면 인바운드 부문이 이를 보충해 주는 등 시장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다양화는 의미가 없으며 핵심부문을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산시스템 강화 등 생산성 및 효율성 제고를 위한 기반확충도 물론 위기 대처 전략 중 하나다. 이 사장은 “매일 위기라고 생각하고 대비하면 실제 위기가 닥쳐도 당황할 이유가 없다”며 “질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면 절대 망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조건적인 다양화는 의미가 없으며 핵심부문을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5. 똘똘 뭉쳐 위기에 공동대처 - 좋은랜드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생존전략 모색”




지금이야 이런 저런 랜드연합체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시초는 지난 1999년 10월에 결성된 ‘좋은랜드’다. IMF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당시 10개 랜드사가 모여 한국 여행업 역사상 최초의 랜드 연합체를 결성했다. 그 뒤 비슷한 류의 랜드연합체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지만 좋은랜드는 변함없이 활동을 지속해 내년이면 출범 10주년을 맞게 된다.

좋은랜드 회장직을 맡고 있는 호돌이미주관광 현광운 사장은 “랜드사 간 공동 활동을 통해 비용절감과 영업력 극대화 등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위험에도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됐다”며 “첫 랜드연합 사례로서 출범한 뒤 현재까지 건재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성취지를 제대로 살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사무실 사용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와 공동브랜드 사용에 따른 대외 홍보효과는 물론 서로 다른 지역의 전문 랜드들이 협조체제를 이루는 데 따른 정보력 확대 등의 부대효과도 크다.

스마일투어 이준모 소장은 “개별 랜드사 차원에서는 3~4명의 영업력일 뿐이지만 좋은랜드 차원에서는 50~60명이 뭉쳐서 영업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며 “힘겨운 상황에서는 서로 뭉쳐서 비용을 줄이고 효과 제고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에 대처능력도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출범 당시 10개사였던 좋은랜드의 회원사는 현재 12개사로 늘어났으며, 매월 정기 회의를 통해 좋은랜드 차원의 성장전략도 모색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좋은랜드는 7월 정기회의에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과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대해 논의했다.

현광운 사장은 “안팎의 여러 상황상 여행업계의 위기감이 커져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좋은랜드 차원에서도 이번 위기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논의를 거듭하고 있으며, 조만간 가시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ANT 박상철 소장도 “IMF 때와는 현재 여행시장의 구조와 환경이 크게 변한 만큼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생존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며 “어려울 때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인식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구체적인 전략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개별여행시장에 대한 랜드사 차원의 새로운 접근방안 등을 포함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역할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힘겨운 상황에서는 서로 뭉쳐서 비용을 줄이고 효과 제고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에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능력도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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