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간 전세계를 ‘스포츠 열기’로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2008 베이징 올림픽. 기대 이상이었던 태극전사들의 선전(善戰)으로 더욱 ‘핫’했던 올림픽 현장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여행신문이 출동했다. 행복했던 축제가 지나간 자리를 추억한다.

베이징 글=오경연 기자 ellie@traveltimes.co.kr, 사진=Travie photographer 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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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심장’에 서서

■ ‘혁명의 향기’를 맡다 천안문 광장

명대에 건축, 청나라 황성의 남측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천안문(톈안먼)은 사실 ‘중국 혁명정신의 자부심’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15억 중국민의 뇌리에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365일 철통같은 수비로 경찰, 군인이 지키고 있으며 아침·저녁마다 엄숙한 국기게양식이 치러지는 것은 물론, 범국가적인 행사 때면 어김없이 이곳 천안문이 등장한다. “제가 학교 다닐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받은 교과서 1면에 나와 있던 사진이 바로 천안문 광장이었어요. 그만큼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천안문은 꼭 한번쯤은 와보아야만 하는 ‘성지’와도 같은 존재랍니다.” 연변(옌벤) 출신이라는 가이드는 ‘베이징에 갓 상경하자마자 찾은 곳도 바로 이곳 천안문’이라며 새삼 감회에 젖은 눈치다.

천안문 정면으로 내걸린 모택동(마오쩌둥) 주석의 대형 초상화만 보아도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국보급’ 존경심을 짐작할 수 있다. 인민공화국 정부를 설립하고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마오쩌둥은 베이징 시내 구석구석마다 빠짐없이 회자되는 ‘약방의 감초’(?)인 동시에 ‘중국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 천안문 광장쪽 남쪽에는 마오쩌둥의 사체를 수정관에 넣어 비치해둔 기념당이 있으며, 천안문을 마주하는 위치에는 근대 혁명기의 영웅들 이름이 새겨진 ‘인민영웅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텐안먼 성루 입장료 15위안

■황제가 살았던 구중심처 자금성

천안문을 통과하여 깊숙한 구중심처(九重深處)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몇 개의 성문을 지나 ‘오문(午門)’이라고 새겨진 성문을 통과하면 곧 자금성(쯔진청)과 조우하게 된다. 자금성의 어원을 보면 ‘자(紫)’는 당시 사람들이 옥황상제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생각했던 자색을 의미하며(황제는 옥황상제의 아들로 여겨졌다), ‘금(禁)’은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금하는 뜻에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총 72만 평방미터에 달한다는 방대한 규모의 자금성을 마음먹고 둘러보기 위해서는 최소 한나절 이상의 시간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만일 시간이 촉박하다면 일직선으로 죽 세워져 있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등의 주요 성문을 통과하면서 대략의 개요만을 가늠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궁궐마다 황제가 앉았던 의자, 황후가 입었던 옷 등 몇몇의 전시품이 있지만, 정작 ‘정수’라 할 수 있는 대다수의 사료 및 유물들은 타이완의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기 때문에, 관람시 궁궐 자체의 역사적 가치와 위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듯. 입장료 40위안 문의 6513-2255

■베이징 감상에 좋은 경산공원

거리상으로 인접해 있는 천안문, 자금성을 한번에 둘러보는 이는 많지만, 자금성 바로 뒷편 동산에 숨듯이 자리잡은 경산공원(징샨궁위엔)을 찾기란 여의치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징샨궁위엔은 명의 마지막 황제가 머리를 풀고 자결한 장소이자,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자금성이 가장 잘 보이는 ‘명당’으로 손꼽힌다.

동산이라지만 사당까지 오르려면 다소 가파른, 첩첩으로 쌓인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탁 트인 사당에 일단 도착하면, 바로 조우하게 되는 주변 경관으로 인해 그간의 수고가 싹 가셔질 듯. 정면으로 구중궁궐 자금성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펼쳐지며, 반대편으로는 만수전, 종루 등 원거리의 경치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원(궁위엔)’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사당 아래쪽으로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는 덤이다. 입장료 무료

■그녀의 여름 별장 이화원

청 말기에 군림했던 서태후(시타이후)는 사후 100년을 맞이한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선 ‘역사적 인물’이다. 2대 황제에 걸쳐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던 위상과 잇따른 실책으로 청이 망하게 된 원인이라는 비난, 그리고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사실상의 ‘여제(女帝)’로서 시대를 앞서 나간 인물이었다는 평가가 교차한다.

시타이후가 여름을 지내기 위해 재정비했다는 이화원을 보면 당시 그녀의 권력이 얼마만큼이나 지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이화원을 짓느라 동원된 인력과 자금 탓에 ‘청일전쟁’에서 졌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압도적이다.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으로, 총 290만평방미터에 달하는 이화원의 대다수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인공호수 곤명호이다. 곤명호를 파면서 나온 흙을 쌓아서 만든 인공산, 완셔우산의 높이만 무려 60여 미터에 달할 정도. 곤명호, 완셔우산과 함께 산 정상에 있는 불당 즈후웨이하이는 이화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손꼽힌다. 또한 길이가 무려 770여 미터로 중국에서 가장 긴 복도라는 창랑(장낭)에는 기둥과 벽, 천장에 수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입장료 여름 시즌 20위안, 겨울 시즌 30위안 문의 6076-1422




베이징의‘주변’관광

올림픽을 통해 소개된 베이징 주변의 여러 유명관광지 중 첫번째 ‘관문’은 바로 친황다오(진황도). ‘진나라 황제의 섬’이라는 의미의 이 섬은, 총 길이 약 6,000km에 달하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 시발점이다. 친황다오로 찾아가는 길은 녹록치 않다. 베이징 시내에서 차로 4시간, 왕복으로 계산하면 무려 8시간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기 때문.

■‘황제의섬’에서만리장성을만나다

중국의 길이 단위로 계산하면 무려 1만2,700리.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 유일하게 보이는 인공건축물이라는 거대한 인류유산, 만리장성의 ‘시작’은 생각 외로 소박한 편이다. 흔한 관광엽서를 통해 연상되는, 산맥을 굽이굽이 걸쳐 또아리를 튼 장성의 이미지는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 사람들은 만리장성의 모습을 ‘용’에 비유한다. 그래서 이곳 시작점의 이름도 ‘늙은 용의 머리’라는 뜻의 라우롱토우(노룡두)라 부른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여서인지, 라우롱토우의 모양새는 정말로 거대한 용이 머리를 바다에 처박은 듯한 형상과 꼭 닮았다.

흔히 만리장성을 쌓은 이로 진시황제를 떠올리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면 진시황제는 이전 춘추전국시대부터 주변 민족들이 간헐적으로 쌓았던 성벽들을 통합하여 ‘만리장성’이라는 이름 아래 공사를 시작한 ‘시조’라 하겠다. 진시황 이후로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2,000여 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축조된 만리장성은 그 자체로 중국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만리장성의 ‘시작’이라지만 라우롱토우의 건축 시기는 만리장성 완성 끝무렵인 약 500여 년 전 명 시대로, 만리장성 전체의 역사를 놓고 보자면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다와 인접해 풍화작용 등의 ‘악조건’에 노출되어 명나라 당시의 건축자재 등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보수, 복원작업을 거친 것이다.

라우롱토우 끝에서 동쪽편으로 바라보면 라우롱토우와 거의 맞먹는 위치에 세워진 자그마한 사당과 마주하게 된다. ‘바다의 신’, 하이선을 모신 절이라는 하이선모(해신묘) 역시 바다 위에 세워져 있어 라우롱토우와 나란히 친황다오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워낙에 바다와 인접한 지역인 덕분에, 인근 해변에는 제트보트를 타거나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문의 0335-5053159

★라우롱토우 History
라우롱토우와 하이선모를 동시에 완공한 일등공신은 밍 시대 말기의 명장 치지광(척계광)이다. 왜구토벌에 큰 공적을 세운 그는 중국에서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라우롱토우를 세우게 된 작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 황제의 명령으로 라우롱토우를 세우기 위해 파견된 치지광은 바다 속에 세우는 족족 건물이 무너져 내려 많은 시간과 인명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그 사이에 간신들이 황제에게 치지광을 헐뜯었고, 이에 넘어간 황제는 치지광에게 3일 내로 라우롱토우를 완공하라는 명을 내렸다. 불가능한 임무에 망연자실한 치지광이 3일을 보내는 사이,마지막 날 군사들의 식사를 담당하던 요리사들이 대형 솥으로 바닷물을 막아 무사히 라우롱토우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베이징 문화공연의 진수 ‘맛보기’

건물 외관에서부터 딱 ‘중국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라오셔차관(노사다관)은 그 자체로도 중국적 정서를 엿보기에 손색이 없는 공간이다. 차를 마시는 공간, 차관은 예전부터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인의 특성에 맞추어 중국 전역에서 고루 발전해 왔다. 늦은 저녁시간 차관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차도 마시고, 공연도 관람하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을 것이다. 실제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차관에서는 실내에서의 흡연이 자유롭게 허용되었으며, 20~30년 전쯤 차관 ‘뒷방’에서는 마작판이 벌어지는 등 그야말로 중국적인 문화를 고수해 왔다고.

비록 ‘정통’ 스타일은 아니지만, 라오셔차관에서는 이런 중국적인 차관문화를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어 차를 마시는 동시에 무대공연 감상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중국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인 라오셔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라오셔차관은 1층 카운터에서부터 맛보기 공연으로 눈길을 끌며, 공연장으로 향하는 중간중간 옛 차관의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에서부터 옛날 경극 공연에 쓰였던 무대복, 다기 등이 박물관을 방불케 할 만큼 빼곡히 전시하고 있다.

테이블에 앉으면 찻잎이 가득 든 찻잔과 다식, 호박씨, 춘권 등 간단한 음식을 곁들인 찻상이 차려진다. 잎을 주전자에 넣고 차를 우려내어 따라 마시는 우리나라와 달리, 찻잔 뚜껑으로 찻잎을 ‘막아 가며’ 훌훌 마신다. 찻잔 뚜껑을 열어 놓기만 하면 종업원이 금세 뜨거운 물을 부어 주므로 ‘무한 리필’ 로 차를 마실 수 있다.

공연은 마치 서커스 공연을 온 듯한 희극적 연출로 우선 분위기를 띄운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간판공연들의 하이라이트만을 골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 이어서 선보이며, 대부분 대사가 필요없는 무언극이지만 일부 대사가 있는 공연의 경우 스크린에 중국어로 자막이 나온다. 특히 눈여겨볼 공연 중 하나는 영화 <패왕별희>로 친근한 경극. ‘베이징(北京)’에서 뿌리를 두고 발전했기 때문에 지명을 따서 ‘경극(京劇)’라고 불리게 된 것이란다. 라오셔의 작품 <차관>도 극 형태로 무대 위에서 선보인다. 이 밖에도 그림자극 피잉시(피영희), 소림사 무술을 공연으로 선보이는 소림무술 등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박진감 넘치는 무대가 잇달아 펼쳐진다. 차관 무대의 백미는 가장 많은 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변검인데,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초단위로 가면이 바뀔 때마다 관객들의 감탄사와 박수소리가 쏟아진다.

공연시간 오후 7시50분~9시20분 가격 자리별로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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