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제주도에서 열린 ‘자유투어 협력사 친선화합 골프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거래 랜드사 대표들은 “이거야말로 신문에 날 일”이라거나 “랜드사 운영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을’일 뿐인 자신들을 여행사가 배려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발생되는 각종 부적절한 행위도 근절하겠다는 강한 의지까지 보여서 놀라움은 더욱 컸다.
일부에서는 “원칙적으로 보자면 협력사에 대한 당연한 배려일 뿐인데 그것에 대해 고마워할 정도의 반응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여행업계 전체의 현실이 뒤틀려져 있다는 증거”라며 씁쓸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면 여행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편집자 주>


■힘든 시기, 배려와 상생 절실

지속적인 여행경기 침체로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여행업계에서도 기존의 각종 소모적 관행에서 벗어나 배려를 통한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힘든 시기인 만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 결국 모두가 긍정의 결과를 얻는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여행업을 둘러싼 외적인 시장환경이 급변했고, 내부적으로도 여행경기 침체, 항공권 판매수수료 제도 폐지(제로컴, Zero Commission) 등의 여파로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은 그만큼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여행업계를 움직일 그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으로 바로 ‘배려를 통한 상생’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김진섭 이사는 “여행업계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데 힘들 때일수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필요한 것 같다”며 “배려는 또 다른 배려를 낳고 작은 배려들이 모이고 확산되다보면 여행업계 전체의 문화가 곧 배려의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배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시아나애바카스 이혜영 대리도 “현재와 같은 어려운 여건에서는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다같이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려의 간과할 수 없는 효과는 바로 상호 윈-윈의 상생을 낳는다는 점. 사전적 정의처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배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에 역지사지의 행위가 도출되고, 배려는 또 다른 배려로 다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언젠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우화 형식의 자기계발서 ‘배려’가 강조한 것도 결국 서로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배려하는 게 진정한 공존의 길이며 사회는 그런 배려로 유지돼 왔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갈 길 먼 여행업계

그렇다면 과연 여행업계에서는 배려를 통한 상생이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 비록 크게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항공사-여행사-랜드사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상하관계가 힘을 발휘하고 있고, 수평적 차원에서도 서로 배려하기보다는 날 선 경쟁과 소모적인 갈등에 더 깊게 빠져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회사 대 회사 간의 차원에서는 물론 회사 대 직원, 개인 대 개인, 선배 대 후배 간 등 대부분의 경우에서 배려를 통한 상생의 원칙은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모 항공전문GSA 관계자는 “배려니 상생이니 운운하기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적대적인데다가, 배려했다가는 오히려 뒤통수 맞고 후회하기 십상인 상황”이라고 현장의 냉정함을 토로했고, 모 유럽전문 랜드사 소장도 “여행사들이 겉으로는 협력사니 동반자니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랜드사를 막무가내로 취급하고 있다”며 “조금이라도 랜드사의 입장을 헤아려준다면 자기네들이 내야할 보증보험료까지 부담시키거나 당연하듯 마이너스 행사, 미수 거래를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공급자 위주의 시장구조가 갈수록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항공사들도 배려에 목말라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한 오프라인 외국항공사 영업담당은 “오프라인 항공사 세일즈는 온라인 항공사에 비해 여행사 방문시 스스로 약간은 위축되기 마련인데, 여행사 직원들까지 드러날 정도로 차별을 하면 속수무책”이라며 “특히 국적사 세일즈가 오면 회사 중역까지 나와서 깍듯이 대해주면서 오프라인 항공사 직원은 ‘찬밥’ 취급하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직원에 대한 회사의 낮은 배려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비교적 큰 상황이다. 특히 경영상황 악화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원과 감봉, 복지축소 등의 조치가 잇따르면서 이와 관련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그런 상황은 경영자나 종사자 모두에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쪽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희생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관광청 관계자는 “연봉을 전액 포기하거나 1달러만을 고집하는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처럼 종업원을 배려하는 경영자들이 여행업계에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작게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넓게는 회사 전체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직원 개개인 차원의 배려도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져 자신의 업무범위를 벗어난 사안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거나,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팀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의 배려 부재 현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사소한 전화메모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낭패를 겪은 일이 허다하다”는 하소연이 있을 정도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

여행업계에서도 점차 배려와 상생의 철학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비록 각종 악재로 인해 어려움은 커졌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와 그를 통한 상생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 눈 뜨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올해 1~2월에 적용되는 유류할증료가 큰 폭으로 내려갔을 때, 유류할증료 인하혜택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12월 마지막 날 밤에 야근을 하고 1월1일에도 출근해서 발권을 해야 하는 여행사들의 고충을 배려해 사전발권 하더라도 인하된 유류할증료를 적용시켜 주도록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다소 손실이 가고 시스템 적용 등에도 신경을 써야 했지만 여행사 카운터들은 “왜 다른 항공사들은 하지 않느냐”며 큰 호응을 보낸 바 있다. 또 토파스와 애바카스 등 CRS·GDS사들도 최근 배려와 상생을 내걸고 여행사 대상 유료 교육 프로그램을 무료화하는 등 상황에 걸맞은 탄력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드블록의 폐해가 점차 심각해질 때 대한항공은 하드블록 전면폐지를 선언했고 이후 다른 항공사들의 동참으로 이어져 여행사들의 무리한 하드블록 부담이 해소된 바 있다. 또 BSP담보제도 개선 등 IATA코리아가 여행사들의 요구를 수용해 항공사와 여행사간의 입장을 조율한 것도 최근 몇 년 동안의 눈에 띄는 배려와 상생의 정책으로 볼 수 있다.

비록 배려와 상생의 원칙이 현재로서는 선언적, 형식적 수준에 머무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지만 위의 사례들처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지속된다면 여행업계에도 진정한 배려와 상생의 철학이 뿌리내릴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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