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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 앞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마켓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이면 으레 아빠 양말을 찾아 있는 힘껏 늘여놓던 때가 있었습니다. 큰 선물을 받고 싶은 욕심에 비하면 4살 꼬마의 양말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복스러운 하얀 수염 대신 얼굴 위에 드리운 까무잡잡한 아빠의 수염을 목격한 그 날, 꼬마는 엉엉 울고 말았어요. 그리고 더 이상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답니다…”로 끝나는 잔인한 동화 속 주인공이라면 올해 크리스마스는 비엔나에서 보내는 것도 좋겠다.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마켓과 체온을 녹이는 따스한 글루바인, 귓가에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동심을 잊은 그대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줄 테니.



■동화 속 이야기가 있는 그곳, 크리스마스마켓

찬바람이 부는 11월, 유럽 곳곳에서는 때 이른 크리스마스 준비가 시작된다. 강림절(크리스마스가 되기 이전에 네 번의 주일을 포함한 절기)에 맞춰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리는 것. 14세기부터 시작됐다는 크리스마스마켓은 스위스, 독일, 핀란드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비엔나의 크리스마스마켓이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98년 알브레하트 1세(Albrecht Ⅰ)가 비엔나 사람들에게 ‘12월 마켓(Dezembermarkt)’을 열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으며 1975년부터는 전역에 걸쳐 열리고 있다고.

비엔나의 크리스마스마켓은 11월 중순부터 12월24일까지 자연사박물관과 예술사박물관 사이에 위치한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벨베데르 궁전, 쉔부룬 궁전, 스피텔베르크 거리 등 광장에서부터 비좁은 골목에 이르기까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도시 전역이 환한 조명과 거대한 트리로 물드는 것.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활기와 설렘이,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켓에는 정겨움과 아늑함이 있어 어디를 가든 기대 이상의 크리스마스 만나게 된다.

비엔나, 아니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마켓으로는 시청사(Rathaus)앞이 유명하다. 98m 높이의 첨탑과 네오 고딕 양식을 자랑하는 시청사는 7~8월엔 뮤직 필름 페스티벌의 무대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마켓으로 변신한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의 시청사는 멀리에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위풍당당한 건물과 아름드리 트리가 오렌지 빛 조명으로 환히 빛난다. 야경이 멋진 곳이라더니 역시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잎을 잃은 앙상한 나무엔 하트 모양의 전등이 어둠을 밝히고 멈출 듯 계속 돌아가는 회전목마의 리듬에 따라 아이들의 웃음도 커져만 간다.

유럽의 여느 국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비엔나의 크리스마스마켓은 단순한 마켓이 아니다. 가족들의 놀이터다. 아빠 목마를 타고 인파를 누비는 아이, 엄마를 붙잡고 초콜릿을 사 달라 조르는 형제, 서로의 체온이 필요한 듯 두 손을 꼭 잡고 손자, 손녀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 노부부…. 마켓 사이를 누비다 만나는 사람들의 넉넉한 표정이야말로 산타클로스가 건네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까. 실제로 시청사에선 11월14일부터 12월23일까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워크숍을 연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께 선물로 드릴 성탄쿠키를 직접 만들 수 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고 색색으로 무늬를 넣으니 어느새 달콤한 쿠키가 뚝딱. 주방장 모자를 쓰고 앞치마까지 두르니 꼬마 요리사가 따로 없다.

이런 아이들과 달리 아직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두 눈을 크게 뜨시길. 크리스마스마켓엔 트리를 장식할 소품을 비롯해 보석과 악세서리, 인형 등의 전통 수공예품으로 가득하다.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저녁 시간이 되면 먹음직스러운 프레즐과 도넛, 파이 가게에서 솔솔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미 저녁을 먹고 온 것이 후회가 될 지경. 하지만 아무리 배가 불러도 글루바인만큼은 꼭 마셔야 한다. 머그컵에 담겨 나오는 뜨거운 글루바인을 홀짝이면 어느새 알코올 기운이 온 몸에 퍼져 한 겨울 추위도 내 것이 아닌 게 된다. 크리스마스마켓의 글루바인은 5유로지만 다 마시고 난 후 머그컵을 반납하면 2유로를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청사와 쉔부룬 궁전 등 각각의 마켓에 따라 고유의 머그컵이 있어 기념품으로 모아도 좋고, 깨끗이 씻어 선물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시청사 크리스마스마켓 오픈 시간 일~목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30분, 금~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12월24일은 오후 6시까지) 홈페이지 www.christkindlmarkt.at

비엔나 글·사진=이민희 기자 dumpling@traveltimes.co.kr
취재협조=오스트리아관광청 한국사무소 www.austria.info


■Must-See in Vienna

▶슈테판대성당 Stephansdom
슈테판대성당은 137m에 달하는 첨탑과 하늘로 솟구친 지붕,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외관으로 여행자를 압도한다. 과연 이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 손꼽히지만 실은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바 있다. 지금의 모습은 1359년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갖추었다고. 공사 기간만 65년에, 건물 길이는 107m, 천정 높이가 39m에 이른다. 이후 1683년엔 터키군에, 1945년엔 독일군에 의해 파괴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여전히 비엔나의 지붕, 비엔나의 혼(魂)과 같은 다양한 수식을 거느리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www.stephanskirche.at

▶벨베데레 궁전 Schloss Belvedere
1714년에서 1723년에 이르기까지 사보이 왕가의 왕자, 오이겐(Eugen von Savoyen)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된 벨베데레 궁전은 일견 소박한 느낌이다. 하지만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찾을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전망좋은 방’이라는 뜻의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Upper Belvedere)과 하궁(Lower Belvedere)으로 나뉘어 있으며 상궁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에곤 쉴레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하궁에서는 오는 2010년 1월31일까지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헤르베르트 뵈클(Herbert Boeckl)의 작품을 전시한다. 한 장의 티켓으로 상궁과 하궁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입장 시마다 티켓을 제시해야 하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www.belvedere.at

▶미술관지구 MQ, Museums Quartier
현대미술관(MUMOK, 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 쿤스트할레 빈(Kunsthalle Wien), 레오폴드미술관(Leopold Museum) 등이 모여 있는 미술관지구는 1997년 조성됐다. 이중 2001년 문을 연 레오폴드미술관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을 대량 소장하고 있어 미술관지구에서도 꼭 들러야 할 필수 코스로 손꼽힌다. 이쯤되면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서 이제 예술의 도시, 비엔나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 미술관들 가운데 마련된 광장은 계절을 불문하고 밤마다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이자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www.leopold museum.org(레오폴드미술관), www.mmkslw. or.at(현대미술관)

▶케른트너 거리 Karntner strassee VS 나쉬마켓 Naschmarkt
600m에 이르는 케른트너 거리는 유명 브랜드와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 좋은 카페 등이 몰린 비엔나 최고의 번화가다. 아직 국내에 입점되지 않은 H&M과 오스트리아의 자랑이자 세계 최고의 크리스털 제품으로 인정받은 스와로브스키 매장이 두 곳이나 있다. 연말을 맞아 사람들로 더욱 붐비지만 보행자 전용도로라 차와 사람이 얽히는 일 없이 한가로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케른트너 거리가 ‘다이아몬드’를 떠올리게 한다면 나쉬마켓은 대대로 내려오는 ‘금가락지’와도 같은 느낌이다. 신선한 과일과 독특한 향신료 등 눈길을 끄는 아이템으로 가득한 재래시장으로 비엔나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Must-Eat in Vienna

▶멜랑제 Melange
비엔나에서 ‘비엔나커피’만 찾다간 떠나는 그날까지 커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을 게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엔나엔 비엔나커피가 없다. 대신 꼭 마셔봐야 할 커피로는 진한 커피에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얹어내는‘멜랑제’가 있다. 제대로 된 카페에 가면 은접시에 커피와 물잔 그리고 초콜릿 한 조각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초콜릿은 진한 커피맛을 상쇄하기 위함이요, 은접시는 찻잔 등에 테이블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비너 슈니첼 Wiener Schnitzel
송아지 넓적다리로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돈가스와 맛이 비슷하다. 접시를 다 덮을 정도로 양이 많으니 중간중간 함께 나오는 레몬을 뿌려 느끼함을 없애는 게 좋다. 레스토랑에 따라 치즈가 얹어서 나오거나 샐러드를 곁들일 수도 있다.

▶글루바인 Gluewein
와인을 주재료로 끓인 다음 레몬, 사과, 귤, 계피가루, 설탕 등을 지역과 기호에 따라 다르게 넣어 마신다. 추운 겨울, 유럽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감기 예방에 좋고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비엔나에서는 크리스마스마켓 어딜 가나 글루바인을 만날 수 있다. 따뜻한데다가 알코올이 들어있기 때문에 체온을 녹이는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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