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남 gab@traveltimes.co.kr
여행신문 편집국장

뻔한 스토리의 신파 드라마가 떠오른다. 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는 착하고 예뻤고 남자는 잘 생기고 똑똑했다. 여자와 남자는 가난했지만 서로 사랑했고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 믿었다. 여자는 똑똑한 남자를 지극정성으로 도왔고 남자는 결국 고시를 패스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남자는 결국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여자를 떠나고 여자는 충격으로 쓰러진다.

2010년을 맞는 여행업계의 모습이 안타깝다. 2008년 7월1일, 대한항공은 2010년 1월부터 항공권 판매수수료를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줄 테니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연이은 세계 경제 위기와 신종플루 등으로 여행업계는 생존 자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조금 희망이 보이고 정신을 차리려 했더니 시간은 속절없이 빨리 흘러 벌써 경인년의 아침이 밝았다.

부랴부랴 TASF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비상 조치는 취했지만 TASF는 어디까지나 취급수수료를 주겠다는 소비자의 동의가 있을 때 유용한 결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했어도 일반석보다 10배 비싼 1등석을 구입했으니 수수료도 10배를 주겠다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수익의 절반을 항공권 판매에서 얻고 항공권 판매 수익의 60%를 대한항공에서 얻는 여행사라면 새해 첫 날부터 전체 수익의 30% 이상을 날리고 시작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드라마처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인정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주는 것이 없으면 받는 것도 없고 파트너 관계도 끝이다. 수수료 자유화라고 포장하려 해도 볼륨인센티브 계약을 맺는 일부 대형 여행사를 제외하면 이제 여행사와 대한항공은 동반자라기보다 경쟁자에 가까워졌다. 게다가 이 경쟁은 서로 출발선부터 다른 힘겨운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여행사는 어떻게 취급수수료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지만 대한항공은 수수료 고민 없이 항공권만 판매하면 그만이다. 대한항공은 온라인 광고와 각종 이벤트 등을 실시하며 직판을 늘려갈 것이 뻔하고 여행사를 통해 판매가 이뤄진다고 해도 수수료 걱정이 없으니 밑질 것 없는 장사다. 예매 사이트에서는 9,000원짜리 영화 티켓을 팔며 500원의 수수료를 붙이지만 극장 사이트에선 수수료 없이 좌석까지 선택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옛 정’이 남아있다면 벼랑 끝까지 내몰린 여행사를 아예 밀어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대한항공은 2008년 수수료 폐지를 공식 발표하면서 “새로운 제도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정착하고 여행사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후방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여행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그 가치에 따라 고객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제도변경의 당위성을 업계와 공동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말했던 후방지원을 체감하고 있는 여행사는 찾기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대항항공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요금을 보고 더 큰 위협을 경계하는 여행사들이 많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여전히 여행사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으니 여행사들의 배신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줄 몰랐느냐’며 착해 빠진 여자의 미련스러움(?)을 탓하며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하길 기대해도 소용없다. 당장은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또한 ‘세계적인 추세’라며 언제 결별을 선언할지 모른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자생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복수의 칼을 갈던 여자가 보란 듯이 성공해 남자와 재회하듯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항공사가 제공할 수 없는 부가서비스를 개발해서 내 고객을 붙잡아야 하고 필요에 따라 아직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항공사들을 잘 이용해야 한다. 걸음마 단계인 저비용 항공사들도 당분간은 여행사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가 아는가. 떠나간 남자가 돌아올 수도 있고 돌아온 남자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클라이막스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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