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와 선비정신
오래 전에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세계의 한국인이 되려면 이탈리아인처럼 정확하고, 프랑스인처럼 겸손하고, 독일인처럼 친절하고, 노르웨이인처럼 유머가 있고, 영국인처럼 국제감각이 있고, 네덜란드인처럼 너그러워야 하며, 미국인처럼 통이 커야하고, 일본인처럼 부지런해야한다. 이 말이 일리가 있고 없고 간에 국제화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정확하고, 겸손하고 친절하고, 유머도 있어야 하며, 국제감각도 있어야 하고, 부지런하면서도 통도 조금은 커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덕목을 갖추면 세계인이며 지성인이며 신사라고 말할 수 있다.
신사라는 말은 전통적인 우리말로는 선비라고 하고, 군자라고 하는 말과 같다 하겠다.
근대에 와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는 선비란 세상물정에 어둡기가 짝이 없고, 고집스럽고, 어리석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우리들 할아버지 시대만 해도 선비란 책이나 읽었지 농사짓는 것, 장사하는 것을 기피하고 알지 못하여 사물에 어두워서 세상에서 뒤떨어진 사람으로 밀쳐져 있었다.
그러나 선비정신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선비의 정신이란 예의와 도덕에 입각하여 굽히지 않는 의지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위로는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하는 데에 근본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집마다 글소리요, 동리마다 서당이 있어서 충효사상이 뿌리내려 효자, 열녀, 충신, 지사가 수없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성삼문이 백이, 숙제의 묘 앞에서 읊었다는 시로 『이 해에 말 붙잡고 감히 옳지 않음을 말하노니, 대외가 당당하여 해와 달처럼 빛나는데 초목도 주나라의 비와 이슬에 젖었거늘 그대 오히려 수양산 고사리 먹은 것이 부끄럽도다』한 것이나,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이익이 되는 것을 보거든 정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고 한 글의 정신이 바로 선비정신 그것이라고 할 만 하다.
선비의 공부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넓힌다는 이른바 격물치지에 근본을 두는 것이다. 공자는 『저 사람이 나를 속이려니 하고 미리 생각하지도 않고, 또 저 사람이 나를 믿지 않으리라고 미리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의 행동을 먼저 아는 것은 현명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맹자는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어른이 되어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맹자자 양혜왕 하)』라고 하셨다. 연암 박지원은 양반전에서 『글 읽는 사람을 선비라 하는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가 되고, 덕 있는 자를 군자라 하며, 무반은 서쪽에 서고 문반은 동쪽에 서게 되어 이를 양반이라 한다』하였다.
그러나 책만 읽는다고 하여 다 선비라고 할 수는 없고 덕을 갖추지 않으면 잘못된 선비관에 빠지기 쉽다.
논에 계씨 편에서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첫째, 볼 때는 분명하게 보기를 생각하고 둘째, 들을 때는 똑똑히 듣기를 생각하고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넷째,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다섯째, 말은 충실하기를 생각하고 여섯째, 일은 조심하기를 생각하고 일곱째, 의심나면 묻기를 생각하고 여덟째, 분이 날 때는 뒷일을 생각하고 아홉째, 이득을 보면 옳은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구사라고 한다. 이것은 교양인으로서 생각하며 몸을 닦는 길을 일러 준 것이다. 이 밖에도 선비라면 지식이 있어야하고, 사서 삼경을 외울 수 있어야 하고, 시 한수 쯤 즉석에서 지을 수 있어야 하고, 주관과 고집스러움이 있어야 하고, 몸가짐에 경솔함이 없어야 하고, 말을 적게 하고, 실천할 줄 알아야 하고, 의리를 중히 여기고, 남의 장점만 말하고, 남의 말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 주견보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인용하고, 자기보다 낮은 사람과 사귀고, 윗사람은 공경하고 아랫사람은 사랑한다. 공사를 사사로움에 앞세운다. 아첨하지 않는다. 염치를 중히 여기고, 명분 있는 행동을 하고, 성실을 첫째 덕목으로 삼는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남의 처지를 생각하고, 효도는 모든 행실의 근본임을 생각하고 부모의 원수는 끝가지 갚고, 조상을 숭배하고, 일가 친척을 극진히 위하고, 사랑은 가까운 데서부터 베풀고, 전통을 중히 여기고, 일찍 일어나서 집안을 청소하고, 집안에서 글소리가 떨어지지 않게 한다. 천한 직업에 종사하지 아니하고, 가난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어려움을 남에게 호소하지 않으며, 사랑에서 거처하여 함부로 안방출입을 하지 않고, 감정 표현에 절도가 있게 하고, 아내를 때리지 아니하며, 도박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등의 덕목과 행동지침들이 있었다.
공자가어에서 선비는 마음은 자리잡혀 있고, 일을 계획하는데는 일정한 목표가 잡혀 있으면 비록 그 근본을 다하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쫓고 따르는 바는 잇게 되고, 비록 백가지 좋은 일을 다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처리하는 바는 있게 되는 것이므로, 이런 까닭에 알기를 많이 힘쓰지는 않아도 반드시 그 아는 바를 확실히 하며, 말은 많기를 힘쓰지는 않아도 반드시 그 이유를 깨닫게 되면, 지식은 아는 것을 다하게 되고, 말은 행하는 것을 다하게 되며, 행동이 이미 까닭을 다하게 되면, 곧 타고난 성품이나 운명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이, 부귀를 더하여 채우려하지 아니하고, 가난을 덜하려고 몸을 상하게 하지 낳게 하는 것이 바로 선비라고 한 밀이 있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거의 우리 것을 저버린 채 서구문명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오느라 지금 우리의 사는 모습이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난장판 같은 서부활극 속에도 불문율은 엄격하여, 말 도둑은 사형에 처하고, 보안관을 죽이지 아니하며, 등뒤에서는 비겁하게 총을 쏘지 아니하며, 정의는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그런 것들이 있다. 우리는 활극 속에서 치고 쏘고, 무법적인 통쾌성을 배웠으면서도 그 속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었음을 놓친 것이며, 정의와 틀을 익히는데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가난을 벗으려는 발버둥 속에서 진정한 선비정신, 한국인의 얼은 잠깐 제쳐놓아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서구의 과학문명으로 우리의 것을 파괴하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 우리에게 알맞은 새 문명으로 소화시키는 슬기와 노력을 해야만 할 때이다. 남의 비도덕적인 것은 나무라면서 자기의 잘못은 고치려하지 않거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염치를 돌보지 않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구 시대적 작태는 이제 버려야할 때이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덜 이익이 되더라도 되도록 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저마다 노력한다면 다름 아닌 선비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기업을 경영함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상업주의적 이익추구에만 급급하던 것에서 선비정신을 바탕에 깔게 되던 기업은 존경받고 그리고 건전한 성장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