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아버지의 따끔한 가르침

1.누구도 여행사를 몰랐던 그 시절
2.‘50년 근무 기록 세우고 싶다’


일화 하나 들려줄까? 내가 전무시절이었던 1979년 얘기야. 대기업인 D통운에서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여행사, 항공화물 업무를 모두 하고 있었는데 항공화물만 흑자고 여행사는 계속 적자를 기록하니까 사람을 스카우트 하자고 결정이 난거야. 세방여행에 이상필 전무라고 있는데 항공화물, 인바운드, 아웃바운드 모두 경험했으니 데리고 오면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 이렇게 보고가 올라간 거지.



■대기업 스카우트의 유혹

그래서 나한테 부사장으로 제의가 들어왔어. 마침, 나도 80년이 되면 뭔가를 새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만큼 오래 근무했으니까 재벌 회사에 가서 끗발 좀 날려봐야겠다는 마음에 결정을 했지. 그래놓고 보니 내가 회사를 옮긴다고 하면 직원들이 줄줄이 따라 나올텐데 어떻게 빠져 나갈까가 고민이 되더라구. 당시 세방에는 아웃바운드와 항공화물을 총괄했던 염부현 부회장이라고 계셨어. 내가 그 분 밑에서 큰 거지. 그 때는 10.26 사태로 통행금지가 9시인가 그랬는데 전무라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쑥 사표 던지는 것은 말도 안되고 내일 일본으로 출장 간다는 부회장님을 붙잡고 술을 마시러 갔지.

그 자리에서 ‘재벌회사에서 스카우트가 돼서 가려고 합니다. 저 이제 놔 주세요’하고 어려운 얘기를 했어. 그랬더니 그 분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면서 한참 후 ‘그래, 난 평생 너랑 일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구나. 일본 출장서 오 회장을 만나니 그 때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고 나만 믿어라’하고 말씀을 하시더라구. 그래서 이제 됐다고 생각을 했지.

■오늘을 있게 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

난 매일 아침 아버지와 도봉산에 물을 뜨러 가는데 그 다음날 아버지께도 ‘신상에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스카우트가 돼서 갈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지. 그러자 아버지가 ‘조건이 좋은 모양이구나. 잘 됐다’ 하셔서 와이프에게도 얘기하고 마음 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다음날 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오다 모닝 커피 한 잔 하고 갈까 하시는 거야. 커피 마시러 가셔서는 ‘손 좀 내놔 봐라’ 하시더니 손을 꽉 잡으시더라구. 그리고는 ‘너 내말 잘 들어라. 그 회사가 이상필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방여행사 전문이사를 데려가는 거다’ 이러시는 거야. 아버지가 ‘내 눈을 똑 바로 봐라. 누가 너를 키워줬느냐. 지금 너의 결정은 문제가 있다. 난 너를 고등학생 때까지만 키워줬다. 그 다음은 선배와 동료들이 키워준거다. 네가 어떻게 해서 이 위치에 올랐는지를 모르면 사람도 아니다. 당장 이력서 빼와라’ 하시더라구.

아버지를 설득하려고도 했는데 사표 안가지고 오면 시골에 내려가신다고 하시더라구. 워낙 완강하셔서 자칫 아버지와의 의가 상할 것 같아 가지 않기로 결정을 했지. 그래서 당장 이력서를 빼왔어. 이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이셨어. 아버지 말을 듣기를 잘한거지. 참, 내가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구. 아찔한 얘기야. 그리고는 미안해서 더 열심히 일했지.

시간이 한참 흘러 2000년이 돼서 염 부회장께 그 때 일을 물어본 적이 있어. ‘예전에 일본 출장 가서 오 회장께 얘기 했을 때 회장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했더니 ‘그 놈은 가라 하기 전까지는 절대 못갈 놈이다. 그 놈 성격을 그렇게 모르냐. 가라, 가지 마라 일체 얘기를 꺼내지 마라’고 하셨다더군. 부회장께서도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얘기 안했고 나도 아버지의 반대 이후 다시 이야기를 꺼낸 적 없고….

■좋은 선후배와 건강이 재산

지금 생각하면 세방이 아닌 다른 여행사에서 일을 시작했다면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싶어. 오세중 회장의 추진력, 한상현 부회장의 다져나가는 것, 염부현 부회장의 프리랜서 같은 스타일이 뭉쳐 세방여행사를 만든 거야. 오 회장님은 전세기 계약하고 와서 ‘채워, 180명 채워’하는 식이었어. 밀어붙이는 것은 오 회장님 식이었지. 염 부회장은 아주 멋쟁이였어. 규정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지. 내가 1975년부터 하루하루 약속과 행사를 빼곡히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느데 이 메모하는 것은 한상현 부회장께 배웠어. 그 양반은 아주 정확하시지.

지금 아웃바운드를 보면 랜드사에 세방 출신이 많고 여행사는 고려여행사 출신이 많은데 보면 함부로 나쁜 짓을 배우지 않았어. 떳떳하게 훈련된 사람들은 여행사를 경영하는 것을 봐도 다르거든. 우리 회사에 ‘세우회’ 라는 퇴사한 직원들의 조직이 있는데 70명 정도가 전국에서 여행사를 하는데 다들 잘해. 돈을 어렵게 알고.

난 건강이 허락하면 50년을 한 회사에 근무했다는 기록을 세우고 싶어. 그러려면 건강이 허락해야겠지. 지금은 여행업계에 선배가 한 분도 안 계셔. 오래 근무하려면 좋은 선배들과 좋은 동료들 그리고 고객이 많아야 해. 여행사뿐만 아니라 무슨 직종이든지 우선 선배들을 잘 만나야 하고 좋은 동료, 후배들을 만나면 아무 것도 겁날 것이 없어. 일이 다 되게 돼 있어.

사람은 인간적으로 사귀어야 하고 그게 다 재산이 되는 거야. 난 사람을 사귀더라도 동창처럼 사귀었어. 같은 학교 선배나 동창처럼 사귀면 완전히 자기 재산이 되는 거야. 그리고 체력관리 잘해서 몸이 건강하면 돼. 그럼 세상살이 하는데 겁날 것이 없어. 몸 건강하고 좋은 선배와 동료가 있는데 무엇이 겁나겠어. 그리고 자기 직업을 즐겨야지. 난 다시 태어나도 여행사에 근무하고 싶어. 후회도 없고 아주 즐겁게 지냈어. 전 세계 안 가본 곳 없고, 안 먹어 본 음식 없고 그러면 성공한 인생살이 아니겠어?

정리=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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