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비 넘겼지만 아직 샴페인 터뜨릴 때 아니다”
“여행업계 위상은 종사자 스스로 높여야”


여행업에 입문한 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익 모델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여행업은 매일이 위기다




FIT, 상용, 패키지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3명의 CEO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이들에게 던진 “여행업, 위기 그 후”라는 주제는 다소 무거웠다. 그러나 1시간30분, 서울 정동극장 카페에서 진행된 좌담은 진지하면서도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여행업계의 숨통을 조였던 위기가 지나고 태평성대가 도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3명의 CEO는 말한다. “위기가 아니던 적이 없고, 지금이 가장 큰 위기”라고. 그럼에도 이번 좌담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여행업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이들 3명의 CEO가 각자의 개성이 있듯이, 각 회사의 성격도 차이가 크다. 그래서 서로 몰랐던 부분도 많았다. 체감한 위기의 온도도 달랐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이견’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행=김기남 기자 gab@ 정리=최승표 기자 hope@ 사진=박우철 기자 park@

-2008년부터 시작된 위기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회고한다면.

▶홍기정 사장 (이하 홍)
2008년부터 시작된 고환율, 경기침체, 신종플루의 영향은 ‘악재 3종 세트’라 불릴 정도로 최악의 위기를 가져왔다. 강도 높은 비상경영을 시작했고, 직원들의 동의 하에 무급휴가, 감봉 조치를 취하며 허리띠를 바짝 조였다. 당시만 해도 2년간 10~15억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이른 시점에 여행경기가 회복됐고, 2009년에는 흑자를 보게 됐다. 비상경영으로 직원들에게 16억7,000만원의 임금을 주지 못했는데 지난해 12월31일 부로 전부 돌려줬다. 어찌 보면 필요 이상으로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한 것도 같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내성을 기르고 직원을 챙기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업계 전반적으로는 옥석을 가리는 시기로 어느 정도 시장이 재편됐다고 본다.

▶송경애 사장 (이하 송)
지난해 상용 거래처에 따라 매출이 50~80%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들을 많이 거래하다보니 위기 징후를 비교적 빨리 포착했고, 대비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계열사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 여행사 자체로는 20억원의 흑자를 봤다. 지난해만 특별히 위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업을 해온 23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항공권 수수료가 사라진 지금이 가장 큰 위기다.

▶이진석 사장 (이하 이)
글로벌 경기침체와 신종플루로 여행업이 위축된 지난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창립 이래 최고 흑자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시작될 무렵, 엄청난 위기가 몰려올 것으로 예상해 회사와 직원들을 살리기 위해 개인 부동산을 팔아 현금화했는데 판단이 틀렸다. 생각보다 일찍 회복된 것이다. 덕분에 돈만 잃었다.(웃음) 그런데 최근에 항공사 사람들을 만나면 ‘요새는 먹고 살만 하지 않냐?’고 하는데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여행업에 처음 입문한 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익모델이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여행업은 매일이 위기다.

▶홍
두 분은 위대한 CEO이기에 감봉을 안하고도 잘 이겨냈던 것 같다.(웃음) 그리고 늘 위기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일여행과 비티앤아이는 미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패키지 여행사들이 경기 침체 때 감원, 감봉을 했다고 해서 경영에 실패했다고 보면 안된다. 수백명, 천명을 거느리고 있고, 인건비만 수십억에 달하는 회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송
전적으로 공감한다. 패키지와 상용, FIT 전문 여행사는 처한 환경이 전혀 다르다. 회사별로 맞춤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비티앤아이는 모두투어처럼 직원을 늘릴 수도 없고 아무리 어려워도 감봉을 할 수 없다. 거래처 관리가 중요한 만큼 직원들이 혹시나 그만두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그렇다. 기업별로 위험 관리 매뉴얼은 전부 다르기 마련이다. 당시 우려했던 것은 대형 여행사들이 감봉했다고 작은 여행사들이 다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는 이미 IMF를 지나면서 리스크 관리, 인재 관리에서 성공한 기업 아닌가. 그 방식을 다른 여행사들이 무작정 좇아간다는 것은 옳지 않다. -위기를 겪으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송
지난해에는 남는 시간에 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거래처를 추스르며 숨을 골랐다. 동시에 제로컴 이후 거래처에 트랜잭션 피(Transaction Fee)를 제대로 부과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다행히 올해 적용한 결과, 예상했던 대로 되고 있다. 일부 여행사들은 볼륨 확대에만 치중하는데 당장의 매출보다 건강한 수익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본질을 벗어나는 순간 회사의 운명은 끝난다고 본다. 투어익스프레스는 올해 1월1일부터 취급수수료, 환불수수료 부과를 시작했다. 수익이 30% 증가했다. 타 온라인 여행사와 반대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일부 거래처 기업들이 취급수수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쟁 여행사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가격으로 승부하고 있다. 비즈니스클래스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평소 직원회의를 안하는데 지난해 10월 팀장들과 회식을 하며 말했다. “올해는 위기가 아니다. 공급자(항공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내년을 철저히 대비하라”고 말했다. 상용 여행사만큼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위기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홍
어떠한 업종도 원가가 노출된 곳이 없다. 제로컴으로 여행업계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 분명하다. 이 와중에 커미션을 전부 풀고 볼륨 경쟁에 치달으며 여행업계에 물을 흐리는 업체들이 많아 우려된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여행업계에서 자주 실감했다. 그동안 여행업계 전체에 해악을 끼친 여행사들이 얼마나 많았나. 여행업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빨리 손을 들고 나갔으면 한다. 여행업은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도 못하는 독특한 업종이다. 진정으로 여행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올해 2007년에 준하는 호황이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제로컴이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홍
매출, 수익을 계산해 보니 지금 속도라면 7, 8월이면 지난해에 예상했던 실적을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패키지가 중심인 여행사는 아직까지 제로컴의 파급효과를 피부로 느끼고 있지는 않다.

▶이
지금이 가장 큰 위기라고 하는 것은 많은 여행사들이 위기를 위기로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중견 여행사들이 커미션을 다 풀고 물량을 늘려 볼륨인센티브를 받겠다고 하는데, 그 다음 해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당장 매출이 늘어나는 것에 착시현상을 느끼고 있는 꼴이다.

▶송
볼륨인센티브를 절대 주수익으로 봐서는 안 된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비티앤아이와 투어익스프레스에서 취급수수료 정착을 위해 준비하고, 당장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본질에 대한 문제다. 최근 일부 카드사 중에는 항공권을 12%까지 할인해주는 곳도 있다. 피해가 극심하다.

▶홍
카드사의 덤핑에 대해서는 선례도 있기에 협회 차원에서 자정을 요구하는 행동을 해야 될 시점이라고 본다.

▶이
카드사들은 여행업으로 수익을 보겠다는 게 아니라 자사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여행업계에 큰 위해가 된다.

▶송
결국 여행사 본연의 서비스로 승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정당한 서비스피를 받는 만큼 서비스만큼은 자신이 있다. 단지 가격 때문에 다른 여행사로 갔다가 돌아온 거래처도 지금까지 많았다.

▶이
결국 비티앤아이가 승리하리라 본다. 가격으로만 승부한다면 큰 흐름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다. 카드사도 지금의 방식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직원들한테 못하게 하는 말이 있다. “다른 여행사는 상품가가 얼마인데….”라는 말이다. 상품성에 자신이 없으니까 가격만 갖고 얘기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여행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홍
여행업은 IT정보통신, 생명공학과 함께 미래의 3대 성장산업 중 하나다. 사람들이 돈 자체보다 즐기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유망 직종으로서 여행업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재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투어는 절대 규모를 줄이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위기를 통해 절실히 느낀 바는 직원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이다.

▶송
직원은 회사의 재산이 아니라 ‘직원이 곧 회사’다. 한 명의 직원이 회사를 대표하는 만큼 자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한명의 직원이 너무도 소중하다. 그러나 여행사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자부심이 없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안타깝다. 그런 점에서 갈 길이 멀다. 회사 차원에서는 처우를 계속 개선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직원들에게 줄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최선의 목표는 아니지만 CEO부터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정도를 걸으며 직원들도 열정적으로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홍
현실적으로 여행사의 수익 구조 상 대기업만큼 연봉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여행업에서는 다른 업종에 없는 매력이 많다. 전세계를 다녀볼 수 있고, 여행을 하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1만9,000개 직업 중 남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나도 즐거운 직업은 흔치 않다. 모두투어에 있는 대기업 출신 직원들이 만족도가 높다는 것도 이 점을 반영한다.

▶송
그것도 여행사마다 다르다. 거래처를 매일 관리해야 하는 상용여행사에서 ‘잦은 출장’은 꿈도 못 꾸는 일이다.(웃음)

▶이
회사는 투자 차원에서 해외 출장 기회를 주는데 다녀와서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아서 허탈하기도 하다.(웃음) 현재 여행사 처우는 많이 개선됐다. 이미 상장기업이 된 모두투어, 비티앤아이, 하나투어 등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할을 잘 해줄 것으로 본다. 독일에서 마이트래블이라는 여행사가 항공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홍
그렇다. 일본에서는 일본항공(JAL)보다 JTB로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결국 여행업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업계 종사자들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외국인들과도 더 많이 어울리고, 해외 관광전에도 많이 가봐야 한다.

▶송
오랫동안 여행업계에 있었던 사람부터 달라져야 한다. 얼마 전에 대한항공 우수대리점 초청 세미나를 태국에서 했는데 많이 실망했다. 생산적인 세미나는 없이 술만 진탕 마시고, 골프에 한맺힌 사람들처럼 골프만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답답했다. 젊은 여행사 사장들은 윗분들 눈치 보느라 말도 못하고…. 이런 모임부터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대한항공에 제안했다.

▶홍
그렇다. 여행업이 제대로 대우 받으려면 우리부터 자부심을 갖고 공부하고, 더욱 노력해야 한다. 끝으로 이런 귀한 자리를 마련해준 여행신문에 감사하며, 더불어 창간 1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모두투어 홍기정 사장
모두투어의 창립 멤버로 지난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영업본부장, 관리본부장, 부사장을 역임하며 체득한 현장 감각을 발판으로 모두투어를 이끌고 있다. 여행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으며 원만한 대인관계로 어느 자리에서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홍 사장은 관광공사교육원 영어안내부분 강사를 비롯해 캐나다, 프랑스, 괌, 뉴질랜드, 호주 등 관광대사 및 자문위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내일여행 이진석 사장
배낭여행 전문여행사로 출발해 개별여행 브랜드 ‘금까기’를 최고의 FIT 브랜드로 만들고, 토종 호텔 예약 시스템 돌핀스트래블을 키워낸 진정한 의미의 여행업계 ‘트렌드 세터’다. 다른 FIT 전문 여행사들이 지난 2년간의 위기 속에 움츠러든 사이 내일여행을 더욱 단단히 키웠다. 현재 서울특별시관광협회 일반여행업위원회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글 솜씨 또한 뛰어나 지난해 ‘관광, 빛을 보다’라는 칼럼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비티앤아이 송경애 사장
미국에서 성장하고 한국에서 여행사를 창업해 지금의 비티앤아이(BT&I)를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드문 여성 CEO라는 사실만으로 주목을 받는 그녀는 상용 전문 여행사로서 기존 여행사들의 관행을 답습하지 않는 한결같은 경영철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금연기업을 선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6년 코스닥에 상장했으며, 이후 투어익스프레스와 호텔트리스를 인수해 상용 전문 여행사에 날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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