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
① 캘거리-밴프, 카우보이의 본고장 탐험
② 레이크루이스-재스퍼, 대자연 속 휴식

두 발로, 네 바퀴로로키의 속살을 누비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 ‘세계 10대 절경’과 같은 수식어는 때로 여행 그 자체를 방해하기도 한다. 유명하다는 랜드마크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가는 여행객에게 남는 것은 판에 박힌 감동이다. 레이크루이스로 향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레이크루이스에 간다면 찬찬히 호수 주변길을 산책해보라고. 그리고 직접 차를 몰고 재스퍼까지 ‘길의 여행’을 즐겨보라고. 주체적으로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때 이 세상의 빛깔이 아닌 듯한 호수의 매력과 로키의 비경은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될 것이다. 독자와 함께한 두번째 로키 여정을 소개한다.

캐나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hope@traveltimes.co.kr
취재협조=캐나다관광청 www.canada.travel, 알버타관광청 www.travelalberta.com

■Lake Louise
레이크루이스 하이킹, 여행의 백미

레이크루이스로 가기로 한 날, 불길한 예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잔뜩 낀 먹구름과 옅은 빛줄기는 그 에메랄드빛 호수를 볼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을 줬고, 여행 일정을 변경할까도 고려했다. 허나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고, 그저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레이크루이스로 향했다. 6년 전, 이곳을 방문했으나 한겨울 온 천지가 하얗던 기억만을 간직한 기자는 소원을 빌듯 간절한 맘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호수에 도착하자 낮게 깔린 구름과 유서 깊은 샤또 레이크루이스 호텔이 빚어내는 우아한 비경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잠시 후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햇볕이 비추자 호수는 이내 비밀스런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슴 졸이며 다가온 이방인들에게 에메랄드 빛깔로 화답해 준다.

호수의 오른쪽으로 난 산책길로 걸음을 옮겼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야 에메랄드 빛 호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까닭이었다. 트레킹 표지판을 따라가면서 미러 레이크(Mirror Lake), 레이크 아그네스(Lake Agnes)와 같은 산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호수들을 만나기도 했다. 왕복 2시간이 걸린 산책 코스는 무난했다. 스스로 ‘저질 체력’이라 했던 언니 연숙은 힘든 줄 모르고 산길을 오르내렸다. 여행을 마무리할 즈음, 자매는 입을 모아 말했다. 이 2시간의 산책이 이번 여행의 클라이맥스였다고. “레이크루이스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갔다면 정말 후회할 뻔 했어” 이 말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자매는 되풀이했다.

발목까지 잠기는 눈길, 갑자기 쏟아진 우박, 두터운 옷을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강렬한 햇살. 6월 초, 하이킹을 즐기면서 사계절을 맛본 것도 인상적이었다. 레이크루이스 트레킹의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호수를 감싸고 있는 비하이브(Beehive), 빅비하이브(Big Beehive) 트레일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레이크루이스를 또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고자 자매는 곤돌라에 몸을 실었다. 여름철을 제외하고 스키어들로 북적이는 레이크루이스 마운틴 리조트에서 곤돌라(혹은 리프트)를 타고 절경을 감상하며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눈물방울만한 레이크루이스와 만년설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자 또 다른 감격에 벅차오른다.



■Icefields Parkway
설상차 타고 빙하를 질주하다

연숙, 정화 자매는 이번 여행에서 밴프국립공원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간직한 재스퍼(Jasper)국립공원을 제대로 섭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년설, 빙하 위를 걸어보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 레이크루이스에서 3시간쯤 차를 타고 컬럼비아 아이스필드(Columbia Icefield)로 향했다. 재스퍼국립공원의 일부인 컬럼비아 아이스필드는 수만년간 내린 눈이 쌓여 형성된 빙원이다. 산맥 사이에 형성된 분지 형태의 컬럼비아 아이스필드는 그 크기만 서울의 절반이고, 밴쿠버가 ‘쏙’ 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 빙원이 계곡으로 흘러내린 것이 빙하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에서 녹아내린 물은 강을 따라 태평양, 대서양, 북극해로 흘러간다고 하니 이곳에서의 시간이 더욱 감격스럽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에 있는 6개 빙하 중 애서배스카(Athabasca) 빙하는 관광객들이 직접 두 발로 디뎌 볼 수 있도록 개발되어 있다. 브루스터(Brewster)라는 업체가 운영하는 설상차에 몸을 실은 자매는 이국적인 풍경을 맞닥뜨리자 어린아이가 된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연신 탄성을 질렀다. “빙하수를 한 번 마시면 10년 젊어진다는 말이 있다지?” 설상차에서 내려 빙하 녹은 물을 마셔 보기도 하고, 자매는 눈싸움을 즐기며 완전히 동심에 젖었다.

지구 온난화가 화두인 요즘, 혹시나 설상차가 빙하를 파괴하지 않을까, 혹은 빙하 위를 걷다가 갈라진 틈 ‘크레바스’에 빠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는 버려도 좋다. 설상차는 알버타 정부와 과학자들이 연계해 빙하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하며 길을 선택하고 있고 빙하의 깊이도 60~300m에 이르는 만큼 안전지대만 벗어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다.


■길의 매력 만끽하는 드라이브 여행

캐나다 로키 여행의 백미는 한적한 고속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이다. 특히 밴프에서 재스퍼를 잇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s Parkway)는 ‘세계 10대 드라이브 코스’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230km에 달하는 이 길은 차량 통행이 많지 않고, 네비게이션을 의지하지 않고 지도만 보고도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렌터카 여행에 적합하다. 가는 길에 만나는 호수와 폭포, 빙하 등은 운전 내내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밴프애비뉴에 위치한 렌터카 숍에서 차를 빌려 목적지인 재스퍼로 출발했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직접 운전하며 질주하는 가장 큰 재미는 이동 중 조우하는 풍경에 언제든 멈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보우(Bow)호수, 페이토(Payto)호수부터 애서배스카 폭포, 크로우풋산(Mt.Crowfoot)을 비롯한 명봉들을 내 맘대로 즐길 수 있다. 또 사슴, 산양, 곰 등 불쑥불쑥 출몰하는 야생동물을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구경하고 사진 찍는 재미가 남다르다.

‘목적’보다 ‘과정’의 여행을 즐기며 쉬엄쉬엄 5시간만에 재스퍼에 도착했다. 일반적으로 캐나다 로키의 클라이맥스는 레이크루이스로 꼽히고, 재스퍼는 ‘부록’ 쯤으로 인식돼 있다. 허나 그 매력을 맛본 여행자라면 누구나 재스퍼를 으뜸으로 꼽는다. 소박하고 정겨운 소도시의 매력, 도시 주변에 산재한 아리따운 호수들은 밴프에 비해 여성적인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그만큼 풍경이 주는 감동은 은은하고 잔상은 길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지각색의 매력을 간직한 호수를 보기 위해 차를 몰았다. 마을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메디슨호수, 거기서 또 20분을 가서 만난 멀린호수. 재스퍼트램웨이를 타고 휘슬러산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본 마을 풍경과 짙푸른 빛깔의 작은 호수들. 이 모든 비경은 꿈만 같았다. 렌터카 여행이 아니었다면 여유롭게 즐길 수 없는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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