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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음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때로는 잔잔하고 감미롭게 마음을 다독여 주고, 때로는 거세게 감정을 휘몰아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감싸 안을 넉넉한 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하이자오 7번지(海角七號)>의 바다와 음악이 그렇다. 60년의 세월을 건너 수취인을 찾아온 러브레터와 함께 컨딩의 바다는 애틋함과 좌절과 슬픔과 희망과 사랑을 모두 품고 음악처럼, 그렇게 넘실거린다.

글·사진=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
취재협조=타이완관광청www.tourtaiwan.or.kr 영화스틸컷 제공 피터팬 픽처스

■<하이자오 7번지>, 컨딩을 선택하다

록음악의 꿈을 펼치기 위해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로 올라갔던 아가(阿嘉)는 어느 날 어둑한 뒷골목에서 아끼던 기타를 부수곤 고향 컨딩으로 돌아온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아가는 우체부 일을 시작하게 되고, 꼬박꼬박 우편물을 받아오긴 하지만 자신의 방에 쌓아두기만 할 뿐 전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꿈을 접고 사람들과의 소통마저 끊어버린 아가. 편지에 담긴 사연과 소식들은 그의 마음처럼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방 한구석에 부려져 있다.

이즈음 한때는 잘 나갔을 법한 일본인 모델 토모코도 컨딩에 도착한다. 모델로서가 아니라 매끈한 서양 모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자신들이 꿈꾸던 것과는 다른 삶 속에서 지쳐가던 두 사람이 타이완의 남쪽 끝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한편, 해변의 샤또비치 리조트에서는 일본의 유명가수를 초청해 공연을 열기로 한다. 마을사람들의 강요(?)로 마을 내 밴드를 조직하게 되는데 이때 모여든 사람들이 가관이다. 교회 성가대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지만 박자가 제멋대로인 소녀, 오토바이 점포에서 일하면서 사장의 아내를 사랑하는 드러머, 특수경찰이었지만 몸을 다쳐 시골로 내려온 교통순경, 술을 팔기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빼어 줄 듯한 영업맨, 전통악기인 월금(月琴)밖에 칠 줄 모르는 노인까지…. 우여곡절 끝에 아가가 리드 보컬을, 토모코가 이 밴드를 코디하는 역할을 맡게 되지만 삐걱거림과 불협화음은 그칠 줄을 모른다.

<하이자오 7번지>는 지난 2008년 타이완에서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28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을, 45회 타이완금마장에서 영화음악상과 남우조연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당시 타이완에서 블록버스터인 <적벽대전>과 <아이언맨>의 흥행성적을 뛰어넘었다는 이 영화는 사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컨딩의 파도처럼 잔잔하게 마음 한 곳을 촉촉하게 적셔 줄 뿐이다.

지난 3월 우리나라에서 개봉해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운 컨딩의 바다는 영화 마니아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영화가 컨딩을 촬영지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바다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과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듯,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컨딩의 바다는 그 출발점이 다른 물줄기들을 모두 껴안아 하나로 넘실거린다. 한 일본인이 타이완을 떠나며 남겨진 연인에게 쓴 7통의 편지가 60년의 세월을 건너 아가의 손에 의해 전달되어질 때, 닫혔던 마음은 컨딩의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리고 상처와 아픔은 그 바다로 인해 위로받는다.



■아가와 토모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아가가 타이베이에서 컨딩으로 돌아와 머문 곳은 ‘헝춘구청(恒春古城)’이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청나라 때 지어진 이 고성은 지금도 견고함을 자랑하며 작은 마을을 감싸고 있다. 130여 년의 세월에도 건재한 성곽의 서문으로 들어서면 아가의 발자취와 함께 토모코의 모습이 떠오른다.

서문을 지나 헝춘구청 안으로 들어가면 지방 소도시의 아기자기한 마을이 나타난다. 3층 높이의 건물들이 길 좌우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중산라오지에(中山老街)를 따라가다가 우회전하고 첫 번째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면 아가가 머물던 집이 나온다. 영화의 인기가 여전한지 평일이었음에도 현지 관광객들이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1층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된 소파와 탁자 그리고 텔레비전, 선풍기 등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타이완 살림집의 풍경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영화를 촬영할 때 찍었던 배우들의 사진과 그들의 친필 사인이 벽면에 가득 붙어 있어 <하이자오 7번지>의 장면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부엌 입구 쪽에 붙어 있는 계단을 오르면 아가가 사용했던 방이 나온다. 빛이 가득 비춰 들어오는 창문 아래 검소해 보이는 침대, 한쪽 벽면을 온통 차지한 붙박이장, 아가가 작곡을 하던 작은 책상까지 영화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금방이라도 초록색 우편배달부 복장의 아가가 우편물을 들고 계단을 올라올 것만 같다. 술에 취한 토모코가 매사에 삐딱하기만 한 아가의 집에 찾아와 신발을 던져 미닫이문의 유리를 깨고, 아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집 앞에서 잠이 든 토모코를 이 방에서 재우게 된다.

얼마 후 깨어난 토모코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아가. 그렇게 숨겨둔 마음이 서로를 향해 열
리고, 방 안에 쌓아두기만 했던 우편물들은 밴드 친구들의 손에 의해 제 주인을 찾아가게 된다. 침대 옆 작은 탁자에는 어색하게 한 침대에서 깨어나던 아가와 토모코의 사진, 그리고 60년 전의 러브레터가 놓여 있어 스크린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 준다.

헝춘구청 서쪽 해변에 자리한 ‘완리통(萬里桐)’이란 바닷가 마을도 인상적인 장면을 촬영한 장소이다. 결혼식 파티로 마을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신다. 마냥 즐거울 것만 같지만 왁자지껄한 파티 속에서도 각자가 지닌 아픔들은 왠지 더욱 또렷해지는 것만 같다. 그렇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 곳은 완리통의 한 해변.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교통순경,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해 보이는 호텔 종업원 등 이런저런 소소한 역할의 배우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밤바다를 바라다본다. 누구나 아프고 당신만 아픈 것이 아니라고 말을 거는 듯 완리통의 바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상처와 아픔들을 모두 위무해 준다.

완리통 근처의 작은 항구인 ‘산하이위강(山海漁港)’도 잠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60년 전 연인을 남겨두고 타이완을 떠나야 했던 한 일본인이 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타는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패전국의 국민인 그는 항구에 나와 있던 연인을 훔쳐보며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 오랜 뱃길 위에서 그리움이 가득 담긴 7통의 편지를 쓴다. 영화 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그 남자의 내레이션은 60년 전의 연인들과 현재를 연결하며 그들이 못다 이룬 사랑을 아가와 토모코로 하여금 열매 맺게 한다.


★travel info. 아가네 집

다른 곳들은 아무 때나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지만, 일반 가정집인 아가네 집으로 들어가려면 50위안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면 아가가 입던 우체부 복장을 하고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886-8-8895879

★travel tip. 초록색 우체통을 찾아라!

컨딩 현지 주민들이 아니라면 영화 촬영지를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를 꼼꼼히 봤더라도 다소 비슷비슷해 보이는 건물들과 바닷가 풍경은 아리송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 주민들이 일러주는 대로 찾아가 원통형의 초록색 우체통을 찾아보는 것이다. 헝춘구청의 서문 입구, 아가네 집, 완리통 해변, 산하이위강에는 이곳이 <하이자오 7번지>의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우체통이 서 있다. 그곳이 영화 촬영지였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초록색 우체통을 찾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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