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터키 1. 아마시아를 이해하는 4가지 키워드-역사가 공존하는 터키의 알프스
[현지취재] 터키 1. 아마시아를 이해하는 4가지 키워드-역사가 공존하는 터키의 알프스
  • 천소현
  • 승인 2010.08.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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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터키_아마시아 AMASYA
1. 아마시아를 이해하는 4가지 키워드
2. 아마시아에서의 3일 밤과 낮
3.아마시아로 가는 길


전통 혹은 역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모습은 아마시아 같아야 한다. 예실으르막 강변의 전통 가옥들.


역사가 공존하는 터키의 알프스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떠나 온 이스탄불과 비교하면 아마시아의 풍경은 적막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변화 때문인지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미루나무와 양떼의 풍경에도 바보처럼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아마시아의 사람들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해도 다시 ‘우와’를 연발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들의 예고대로 아마시아의 본편은 거장의 작품과 같았다. 첫 장면부터 관객들을 사로잡더니 끝까지 감동에 감동을 더하며 기립박수와 함께 끝난 엄청난 수작. 하지만 7500년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방대한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뽑은 4가지 키워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터키 아마시아 글·사진=Travie writer 천소현
취재협조=터키정부문화관광부 한국사무소 02-336-3030 카타르항공 02-3708-8571

1. 14개의 왕관을 쓴 도시

터키의 중북부, 흑해에서 75km 남쪽에 위치한 아마시아는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사의 중요한 역사적 무대였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 히타이트와 우라르트, 프리기아, 스키타이, 페르시아와 헬레니즘, 로마와 비잔틴,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등 14개 문명의 흔적이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왕조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아마시아에 대한 권력자들의 편애는 시들 줄 몰랐다는 뜻이다. 무엇이 언어도, 종교도 달랐던 그들을 이 땅에 매료시켰는지를 묻고 싶지만 그들을 이미 단단한 돌무덤 속에 누워있다. 다만 이 도시가 누구나 매료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왕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할 뿐이다. 7,500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아마시아 사람들에게 역사는 강물 속에, 바람 속에, 그리고 숨결 속에서도 살아있는 무엇이다. 아마시아박물관은 작지만 감탄이 나올 만큼 알차고, 아직 발굴하지 못한 무수한 유적이 발밑에 존재하고 있다.

2. 왕과 왕자들의 도시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왕들의 무덤이다. 예실으르막(Yesilirmak) 계곡을 따라 하르나 산(Mt. Harsena) 중턱에서 발견되는 23개의 돌무덤군은 세계의 불가사의에 포함되어야 할 만큼 경이롭다. 큰 것은 높이가 15m, 폭이 8m나 되기도 한다. 시대가 흐르면서 감옥이나 종교 집회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던 이 무덤들이 헬레니즘 시대(BC333~AD26)에 만들어진 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밝힌 사람은 아마시아 출신으로 기원 전후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고고학자 스트라본(Strabon)이었다. 또한 아마시아는 ‘왕자들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스만제국의 왕자들(Shahzadahs)은 누구나 왕이 되기 전 아마시아에서 도지사로 군림하며 군주 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시아는 위치적으로 이스탄불에서 그리 멀지 않고(671km) 산과 계곡으로 이뤄진 천연 요새였기에 왕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을 다스렸던 왕은 총 36명이었는데 12명의 왕자가 아마시아에서 성장했고, 그 중 6명이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 1453년에 이스탄불을 정복한 메흐멧 2세도 그 중 한 명이다. 아마시아에 학교, 도서관 등의 교육시설이 발달한 것은 왕자를 포함해 인재를 양성했던 정책이 전통으로 남은 부분이다.

3. 폐랏과 쉬린의 사랑 이야기

터키 사람들이 가장 아낀다는 슬픈 사랑 이야기의 무대 또한 아마시아다.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화가였던 페랏(Ferahat)은 아마시아 왕의 여동생인 쉬린(Sirin)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를 반대한 왕은 페랏을 멀리 보내기 위해 엘마 산을 통과하는 수로를 완성하면 동생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예상을 깨고 페랏이 18km 떨어진 곳에서부터 돌을 깎아 물길을 만드는데 거의 성공하자 다급해진 왕은 페랏에게 쉬린이 죽었다는 거짓 전갈을 보낸다.
절망에 빠진 페랏은 손에 쥐고 있는 연장을 던져 머리에 떨어지게 해서 죽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쉬린도 현장으로 달려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상되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페랏이 만들었다는 수로에 가 보면 그 진정성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이제 2km 정도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수로는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넓고 가슴팍까지 올라올 정도로 깊으며 물이 막힘없이 흐를 수 있도록 경사까지 계산했다. 오직 ‘사랑’만이 이룰 수 있는 기적이다.

4. 한없이 부드러운 터키의 알프스

그들은 감히 이렇게 말했다. ‘아마시아를 보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자부심이 강한 터키 사람들다운 표현이라고 치부했지만 그것은 이유 있는 자부심이었다. 이곳의 풍경은 이스탄불, 파묵칼레, 카파도키아와 달랐고, 세상 어디와도 달랐다. 계곡 사이로 푸른 강, 예실으르막(Yesilirmak)이 흐르고 그 계곡을 둘러싼 780~910m 높이의 돌산은 수천 년 역사의 고성과 왕들의 무덤을 품고 있다.
강변을 따라 도열한 전통 가옥과 모스크들을 담느라 밤이 늦도록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고, 돌아서면 또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정말로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게 했던 힘은 다정한 아마시아의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이방인을 경계하지 않았고,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아마시아에 있는 동안 마음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어느 쪽 산으로 올라가든 계곡을 불과 10분 정도만 벗어나면 황홀한 야경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멋들어진 전망대나 타워가 아니라 아마시아를 스쳐간 수많은 왕들이 야경을 감상했을 바로 그 자리에서 똑같은 호사를 누렸다.



★The way to Amasya
아마시아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도착해 버스(6시간)를 이용하는 것이다. 카타르 항공은 도하를 경유해 앙카라까지 가는 항공편을 매일 운행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를 타면 11시간이 소요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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