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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실으르막(Yesilirmak) 강의 하류, 말하자면 도시의 초입에 위치한 호텔의 정원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셀주크 시대에 세워졌다는 다리를 열심히 촬영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내 중심가로 산책을 시작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헛수고’였는지를 깨달았다. ‘서프라이즈’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야경은 그 전의 모든 풍경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풍경 속에는 까만 하늘에서 유난히 하얀 달, 강변 쪽으로 목을 빼고 있는 전통 가옥들, 노란 조명을 받고 있는 왕들의 무덤, 여름 저녁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산책은 아마시아처럼 오래된 도시를 찾을 때 반드시 올려야 하는 방문자들의 예절 같은 것이었다. 우리를 환대해준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과 왕들의 정령에 대한 인사였다.

터키 아마시아 글·사진=Travie writer 천소현
취재협조=터키정부문화관광부 한국사무소 02-336-3030 카타르항공 02-3708-8571
아마시아 관광정보 www.amasya.gov.tr




■현대에 만난 근대의 사람들

다음날 본격적인 여행은 태양이 산을 오르기 전에 먼저 꼭대기를 점령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무너진 돌과 복원된 벽으로 이루어진 아마시아 성(Harsena Castle)을 오르는 길은 가팔라서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두 번씩 터키 국기를 게양하고 내리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 내려가고 나자 성에는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해발 700m, 도시로부터 300m 높이에 자리 잡은 북쪽의 수비성은 8겹의 벽을 두른 채 여러 문명의 전쟁을 견디며 무수히 무너졌다 다시 복원되곤 했다. 이 성이 결코 완전히 복원될 수 없듯이 아마시아의 풍경도 아직 ‘현대’에 도달하지 못한 듯 보였다.

이 느낌의 진원은 강변을 따라 서 있는 얄르보유 전통가옥(Yaliboyu Houses)이었다. 로마 시대의 성벽을 배경으로 강가에 도열한 이 가옥들은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샘플이기도 했다. 나무 서까래를 세워 강변 쪽으로 돌출시킨 2층은 내부 공간을 더 넓게 사용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으며 1층의 정원에는 아직도 물이 솟는 우물이 있다. 전통 가옥들은 박물관, 부티크 호텔, 레스토랑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자세한 내부 구조와 일상생활 모습을 보기 위해 하제란라 주택(The Mansion of Hazeranlar)을 방문했다.

1865년 세워진 주택을 1976년 정부에서 구입해 개보수 작업을 마친 후 지금은 아트 갤러리와 주택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왕자 박물관’을 뜻하는 셰자데 박물관(Shahzadah museum)도 얄르보유 전통 가옥 중 하나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완벽하게 의상을 갖춰 입은 왕자들의 왁스 인물상은 기대만큼 잘 생기지 않았지만 박물관 내부는 품격있게 꾸며져 있다.

■돌과 흙이 말하는 역사

아마시아 풍경은 이처럼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주택들과 그 위에 배경처럼 서 있는 하르셰나 산, 그 중턱의 크랄카야 무덤군이 만들어내는 유일무이한 비경이다. 강을 따라 걷으며 주위를 탐색하다보면 시선이 가 닿는 마지막 장소는 항상 크랄카야 무덤군(Kral Kaya Mezarlari)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거대한 석실형 무덤은 돌을 파고 또 파는 고된 노동의 산물임이 분명했다. 큰 것은 높이가 15m, 폭이 8m에 이르고 깊이도 6m나 되며 이후 시대에 따라 감옥, 형집행장소 등으로 사용됐다. 우리는 비탈길을 올라가는 대신 시내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이날르 무덤(Aynali Magara)을 찾아갔다. 12사도와 성모 마리아를 그린 비잔틴 시대의 벽화가 있다는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무덤 뒤의 통로를 한 바퀴씩 순례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헬레니즘 시대의 무덤은 그 공간으로만 존재하지만 아마시아 고고학 박물관(Amasya Archeology Museum)의 안뜰에서 만난 14세기의 시신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한국의 지배계층 가족으로 밝혀진 미라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채 보존했기에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다. 히타이트 시대의 바람신 ‘톄슈웁의 조각상(BC 14~12C), 도미니아누스 황제의 옆모습이 새겨진 금반지(AD 95), 비잔틴 시대의 성모 마리아상를 포함해 12개 문명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고고학 박물관은 인상적인 보물창고였다.

■뿌리 깊은 교육의 전통

다른 곳에서라면 근처에도 못 갈 귀한 유물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특별한 ‘환대’를 느낀 또 다른 장소는 술탄 바예지드 2세 콤플렉스(Bayezid Kulliyesi)의 대학 도서관이었다. 캘리그래피가 발달했던 아마시아에는 오래되고 희귀한 고서적들이 소장되어 있다. 건드리기만 해도 풀썩 먼지로 주저앉을 것만 같은 오래된 책들이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서가에 꽂혀있는 장면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특히 16세기의 캘리그래피 대가였던 세이크 함둘라(Shikh Hamdullah)를 포함해 아마시아에 캘리그래피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다. 술탄 바예지드 2세는 11세에 아마시아의 도지사가 되어 27년간 다스리다가 1481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된 인물이다. 그가 1486년에 세운 모스크, 대학, 빈민급식소 등으로 구성된 콤플렉스는 지금도 아마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다. 웅장한 돔을 가진 모스크뿐 아니라 아마시아 시의 미니어처 모형도는 여행자를 위한 선물이다.

왕자들의 도시였던 아마시아에서 교육은 항상 중요한 부분이었다. 의료 학교로 세워졌던 아쉬룸(Asylum)은 중요한 의료 교육 자료의 보고이자 후에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음악치료소라는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화려한 현관 장식이나 정교한 문양 등 건축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주립음악학교로 사용되고 있어서 항상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던 곳은 코란학교, 카피 아가시 학교(Kapi Agasi Medresesi, Buyuk Aga)였다. 코란을 독송하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애환이 담겨있었고 그 소리는 학교로서는 드문 구조를 가진 팔각형 건물 안을 오래 맴돌고 있었다. 계곡에서 메아리쳐 돌아오는 아마시아의 코란 독경 소리는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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