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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부푼 마음으로 발리로 휴가를 떠난 김 대리. 그동안 수고한 자신에 대한 보답이라 위안하며 5성급 리조트를 이용하는 다소 비싼 상품을 구매했지만 현지에 도착하자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운 낮에는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밤이 되면 리조트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다 먹지 못할 만큼의 산해진미를 만끽했다. 멋진 하루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김 대리. 그런데 낮에 시내구경에서 만난 어린 아이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왜일까. 조악한 팔찌를 팔면서 1달러만 달라던 그 작은 눈이 편안한 이 공간에서 떠오르는 이유는.

-거대 기업만 배불리는 기존의 여행
-공생 위한 ‘공정여행’ 관심 필요해

■여행객 늘수록 생활은 피폐해

‘빈곤 국가의 가장 주요한 수입원은 바로 관광이며, 관광은 현지에 도움이 되는 만큼 투자와 개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왜 호화로운 리조트 주변에 꾀죄죄한 현지인들이 즐비해 있을까. 관광객이 리조트에서 많은 돈을 쓰는 만큼 현지인들은 잘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현실은 이런 여행객의 순진한 생각을 배반한다.

보통 여행객이 쓰는 돈의 대부분은 현지인이 아닌 투자한 외국인에게 되돌아간다. 개발도상국일수록 수익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비율이 높은데 코스타리카는 45%, 태국은 60%, 네팔은 70%의 관광 수익이 거대 기업으로 들어간다. 결국 현지에 가서 실컷 돈을 써봐야 대부분의 비용은 항공사, 여행사, 호텔이 나눠가지며 정말 현지에 돌아가는 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관광객이 몰릴수록 현지 사정은 나아지기는커녕 피폐해진다는 모순도 발생한다. 거대 자본이 리조트 개발을 위해 현지인들의 땅을 매입하므로 농사지을 땅은 부족해지는데다 리조트에서 물과 전기를 엄청나게 써대니 주변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게 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여행’ 위한 움직임 대두

관광객은 많지만 현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관광행태를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에는 ‘공정여행’으로 많이 알려진 이런 방식의 여행은 외국에서 책임관광(Responsible Tourism), 지속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 에코투어(Eco-Tourism), 윤리적 여행(ethnic tourism) 등으로 불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투어리즘컨선(Tourism Concern)이라는 NGO 단체와 2001년 영국에서 설립된 리스판서블트래블닷컴(Responsibletravel.com)등을 통해 더욱 주목을 받게 됐는데 리스판서블트래블닷컴의 경우 연 성장률이 10%에 달할 정도로 자라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트래블러스맵, 착한여행, 제주생태관광, 레스트코리아, 동북아평화연대, 우리가만드는미래, 이매진피스 등이 이런 지속가능한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상품을 운영하거나 지속가능한 관광의 당위성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같은 성격의 관광을 사업목적으로 운영하거나 유관한 사업을 진행 중인 단체 혹은 개인들이 ‘(사)지속가능한관광 사회적기업네트워크(www.sustainabletourism.kr)’를 만들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 아닌 현지에 이익 환원돼야

이들 기업은 아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현지에 도움을 주는 상생(相生)여행, 탄소상쇄 등의 환경보호, 단순히 보고 오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체험하고 교류하는 감정적 경험, 현지 문화 보호까지 아우른다.

2009년 설립돼 올해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트래블러스맵’의 경우 지리산 둘레길 도보여행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둘레길 근처 마을 농가에 묵으며 시골집을 체험하고 할머니가 해주는 밥상을 대하는 프로그램으로 여행의 즐거움과 시골 마을의 경제적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보통 농사일을 많이 하는 이들 시골 할머니들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은 약 2만5,000원에서 3만원 정도로 열악하다. 하지만 자식들이 떠나고 남은 빈 방을 여행객에 민박으로 제공하면 별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힘이 된다.

국제NGO 아시안브릿지의 프로젝트로 출발해 올해 2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착한여행’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일본 등 해외 지속가능한 여행 상품을 운영 중이다. 현지 주민들과 함께 묵으면서 홈스테이를 하기도 한다. 1회에 인원을 15명 정도로 제한해 현지에 피해가 가는 것을 최소화하며, 논에서 같이 일도 하고 마을 주민과 함께 생활하는 일정을 진행한다.

착한여행 여행사업팀 김시온 씨는 “사람 얼굴만 바뀌고 배경이 같은 천편일률적인 여행보다는 새로운 것을 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며 “다녀오신 이들 중에는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분도 있고, 현지에 선물이나 기부를 하는 등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높은 가격은 걸림돌

이러한 지속가능한 여행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제일 먼저 가격이 큰 걸림돌이다. 착한여행의 인도네시아 발리 상품은 168만원, 트래블러스맵의 중국 윈난(운남)성 여행은 169만원이다. 아무리 관심이 있다 해도 기존 상품가에 익숙한 일반적인 여행객이 접근하기에는 가격적 문턱이 낮지 않다. 따라서 상품을 찾는 여행객은 주로 사회이슈에 관심이 많은 고학력자나 경제적 능력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성장률이 높다는 영국의 리스판서블트래블닷컴도 시장점유율로만 보면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여행을 담당하는 업체들은 유류할증료 불포함, 각종 옵션, 팁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것이 ‘정상적인 가격’이라는 설명이다. 지속가능한 여행에서는 무리한 쇼핑 등을 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상품 운영 시 원칙 잃지 않아야

일각에서는 오지를 위주로 상품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오히려 돈과 문명으로 현지를 파괴하는 것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아직은 수요가 그렇게 현지를 망가뜨릴 정도로 많지 않지만 더 늘어나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는 문제다. 결국 지속가능한 여행 관련 상품 운영 시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한 관리를 해야 진정한 상생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래블러스맵 경영지원팀 서선미 이사는 “기존 패키지 상품은 비공정무역에 따라 가격이 낮게 설정돼 불합리한 면이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여행 상품은 현지의 삶을 배우고 함께 하며 경험한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크다”며 “지속가능한 여행의 근본 원칙을 실제 사업에서 끈질기게 붙잡고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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