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포르투갈-리스본에서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되짚다
[현지취재] 포르투갈-리스본에서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되짚다
  • 김선주
  • 승인 2010.09.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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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출발한 야간 침대열차는 밤사이 국경을 넘어 리스본(Lisbon) 산타 아폴로니아(Santa Apolonia) 역에서 멈췄다. 기차의 낯선 흔들림에 바로 눕다가 모로 눕기를 한참이나 반복했지만, 경계를 넘어 새로운 대지에 발을 딛는 설렘은 선잠의 찌뿌드드함을 너끈히 씻어냈다. 밤새 기차가 바꿔 놓은 것은 비단 물리적 공간만은 아니었다. 공간의 변화는 새로운 풍경을 낳았고 그 새로운 풍경 속에는 스페인과는 다른 포르투갈만의 색다른 감흥이 서려 있었다. 이른 아침 리스본은 북새통의 하루를 시작하기 전의 차분함으로 가득했는데, 왠지 모르게 아스라이 바다 향기가 나고 파도가 일렁이는 듯 했다. 그 가마득한 향기는 포르투갈 여정 내내 사그라지지 않았다.

포르투갈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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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테주강의 공주’로도 불리는 벨렘 탑 2 리스본 호시우 광장 3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안치돼 있는 바스코 다가마의 관 4 발견기념비 광장의 세계지도 5 발견기념비에는 해양개척에 공헌한 여러 인물들이 부조돼 있다


■ 포르투갈의 내면으로 통하는 노래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3F’의 나라다. 파티마(Fatima), 풋볼(Football), 파두(Fado)의 나라라는 의미다. 포르투갈 중서부의 작은 마을인 파티마는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를 권했다는 유래를 지닌 순례지인데, 인구의 대부분(94%)이 가톨릭인 포르투갈의 종교적 성향을 설명한다. 풋볼의 F는, 구태여 말하자면 축구에 울고 웃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축구사랑 이야기일 테다. 포르투갈의 종교와, 종교나 다름없을 정도로 사랑을 받는 축구와 어깨를 견주는 게 바로 파두다. 그만큼 파두는 포르투갈의 정서적 색채를 아우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 전통의 민요로 삶의 애환과 슬픔, 향수, 비탄, 그리움의 감정을 노래하는 애잔한 음악’이라는 게 파두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파두의 영혼으로 불리며 파두를 세계에 알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전설적인 파두 가수(Fadista)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의 파두가 대체로 그러했다는 점도 현재의 그런 정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문외한의 여행객들은 그 정형화된 이미지에만 의존하기 십상인데, 어찌할 수 없다고는 해도 여행 중 맞닥뜨릴 시행착오를 감안하면 대비가 필요하다. 파두를 듣고도 파두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들 말이다.

포르투갈의 옛 수도였고 대학도시로 유명한 코임브라(Coimbra), 자정이 코앞인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여장을 푸는 둥 마는 둥 곧바로 파두 선율을 찾아 나섰다. 어딘가에서 유혹하듯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그 음악의 끄트머리는 파두를 공연한다는 지하 카페였다. 드디어 파두를 듣게 되는구나 하는 기대의 느낌표는 노래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허탈의 물음표로 바뀌었다.

애잔하다고 하기엔 그 음역이 높고 리듬이 경쾌했기 때문이다. 흡사 성악의 테너 같았다. 어떤 대목에서는 손님들이 흥겹게 손뼉장단을 맞추기까지 했다. 포르투갈어를 모르니 더욱 답답할 수밖에.

하지만 그 경쾌하고 음역 높은 노래도 파두였다. 기어이 파두를 듣겠노라고 작정하고 찾아 나선 리스본의 파두 하우스 역시 비슷했기 때문이다. 비좁지만 나름 무대가 있고 파두 가수도 숄과 정장으로 차려 입어 격식을 갖췄다는 정도만 다를 뿐, 그곳의 파두도 죄다 애잔한 것만은 아니었다.

삶의 애환과 그리움, 회한 등을 노래해 구슬프고 애잔한 느낌이 파두의 주를 이루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모양이다. 그 경쾌했던 파두 선율은 삶의 환희와 해학을 노래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소중한 추억이 그리움의 모태가 되고, 절망의 끝자락에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 것처럼 희, 노, 애, 락은 파두에서도 공존의 요소여야 맞다.

또 파두는 ‘리스본 파두’ ‘코임브라 파두’ 등 각 지역별로 그 색채와 특징이 다르다고 하니 무조건 무겁고 서글프기만 하다고 뭉뚱그릴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코임브라 파두의 경우 남자가 여성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의 특색이 강해 밝은 노래가 많다고 한다.

그런 다양한 면모는 아마도 파두가 어부, 노동자 등 서민들의 고된 하루를 달래고 내일의 희망을 불어넣은 대중의 노래였다는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래서 파두는, 비록 이방인이 온전히 감정을 이입하기 힘든 존재라고 하더라도, 포르투갈의 내면으로 통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대항해 시대를 향한 향수의 파두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파두 선율로 표현하자면 그리움의 파두, 향수의 파두가 될 것이다. 바로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의 영광에 대한 그리움이다. 대항해 시대를 이끌며 남미, 아시아 등 세계 각지로 영토를 넓히고 부를 축적했던 영광이 무색하게, 현재는 유럽의 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으니 이방인의 시각에서는 당연한 느낌일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항해 시대의 추억을 되짚는 것은 리스본 여행의 메인 테마 중 하나다. 대항해 시대에 대한 포르투갈의 자부심과 그리움이 동시에 배어 있는 곳은 바로 벨렘(Belem) 지역. 벨렘 지역 내 테주 강(Rio Tejo)가에 서 있는 탑이 바로 ‘발견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인데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나라의 꼿꼿한 자부심이 배어 있어서인지 실제 높이 53m보다 더 높고 위용스럽다.

발견기념비는 ‘해양왕’으로 불리는 포르투갈 해양개척의 선구자 엔리케(Henrique, 1394~1460) 왕자의 사후 500년을 기념에 1960년에 세워졌다. 기념비가 들어선 위치 또한 1498년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가 항해를 떠났던 자리라고 한다. 기념비의 양쪽 측면에는 여러 인물들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맨 앞의 엔리케 왕을 필두로 천문학자, 선교사, 선원 등 대항해 시대에 기여했던 각종 인물들이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항해를 떠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기념비 광장 대리석 바닥에는 태양을 형상화한 듯한 커다란 원형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세계 이곳저곳에 포르투갈이 발견(?)하고 정복했던 연도가 표기돼 있어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컸는지 실감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발견기념비에 올라 인근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테주 강을 따라가다 보면 강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강이 되는 지점에 벨렘탑(Torre de Belem)이 떠 있는 듯 서 있는 듯 자리잡고 있다. 이 역시 대항해 시대의 영광이 한창이던 1519년에 대서양으로 드나들던 선박들을 통제하고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마누엘 1세(Manuel 1, 1469~1521)가 세운 탑이다. 마누엘 1세는 대항해 시대 황금기의 왕이다. 1층은 죄수 수용소로 사용됐다고 하는데, 조수 차에 의해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구조여서 가혹함마저 느껴진다.

그 가혹함과는 달리 마누엘 양식의 아름다움이 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레이스 장식의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테주 강의 공주’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마누엘 양식은 마누엘 1세의 재위 기간에 번성했던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인데, 바다를 개척하고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16세기 포르투갈의 영예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건물의 외벽이나 천장 등을 장식할 때 산호나 조개, 해초, 항해도구, 부표, 밧줄 등 바다나 항해와 연관된 이미지들을 활용한 게 주된 특징이다. 마누엘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이 바로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mimos)’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1세가 엔리케 왕자 등 선조들의 위업과,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업적 등을 기리기 위해 1502년에 건축을 지시, 1551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수도원 외벽에는 엔리케 왕자의 동상을 비롯해 성 제로니무스의 생애, 수태고지와 그리스도의 탄생 등을 표현한 조각이 있는데 그 섬세함과 화려함에 마누엘 양식의 걸작품이라는 데 곧 동의하게 된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면 바스코 다 가마의 관과 함께 대항해 시대 개척자들의 업적을 서사시로 노래했다는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Luis de Camoes)의 관이 안치돼 있다. 밧줄을 꼰 듯 독특한 형태의 기둥 등 내부 장식에도 마누엘 양식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6 리스본 파두 공연 모습 7 마누엘 양식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8 리스본 시내 고지대와 저지대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9 알파마 전망지구의 풍경


■‘덜컹덜컹 땅앙~땅앙~’ 트램을 타고

리스본 구시가지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물씬한 트램(시가전차)이 달린다. 여러 노선의 트램이 리스본 구석구석을 누비는데, 여행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은 단연 28번 트램이다. 리스본의 옛 가옥들과 골목들이 온전한 알파마(Alfama) 지역 등 관광명소들을 두루두루 들르기 때문. 덜컹덜컹 흔들리다가 땅앙~땅앙~ 소리를 내며 철로를 달리는 트램에 몸을 싣고 있노라면 광장이며 성당이며 옛 건물이며 리스본의 갖가지 표정들이 창문 밖으로 스치고, 골목이든 전망 좋은 곳이든 정차할 때마다 내리고 싶은 충동에 절로 즐거워진다.

하차 충동이 가장 큰 곳은 알파마 전망대 역할을 하는 ‘포르타스 도 솔(Portas do sol)’ 광장 부근이다. 알파마는 서민들의 주거지역인데 언덕 비탈을 따라 옛 가옥들이 빼곡하고 가옥 사이사이마다 꼬불꼬불 골목길이 이리저리 뻗어 있어 정겹다.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너는 아낙네는 수줍은 미소를 던지고, 동네 꼬맹이들의 재잘거림도 상쾌하다. 알파마 전망대는 언덕 중간쯤에 형성돼 있는데 이곳에 서면 산 쪽으로는 성 조르지(St. Jorge) 성이 반기고 저 멀리로는 바다를 닮은 테주 강의 짙푸름이 넘실댄다.

‘7개 언덕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만큼 리스본 시가지는 언덕이 많다. 시내 중심부 평지대를 고지대가 감싸고 있는 형국이어서 평지대와 고지대를 연결하는 지그재그 계단과 샛길도 많다. 걷는 여행이 버거워지면 트램을 타거나, 평지대와 고지대를 오가는 케이블카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다.

호시우(Rossio), 코메르시오(Comercio), 피게이라(Figeuira) 광장 등 리스본의 숱한 광장들은 대부분의 트램이나 시티투어버스가 거치기 때문에 여행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 목적지이기도 하다. 근사한 카페나 쇼핑타운, 유적지 등 여행의 볼거리들도 이곳 광장 언저리에 산재해 있으니 광장에서도 여유를 만끽하는 게 당연하다.

★Travie tip. 리스본 파두박물관과 파두 거리
포르투갈 각 도시에는 카페나 레스토랑 형태의 파두 공연장이 있어 여러 가지 형태의 파두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리스본에는 일종의 ‘파두 밀집거리’가 형성돼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서민 주거지역인 알파마(Alfama)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데,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서 구시가지 쪽으로 도보로 10~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이곳에는 파두 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파두 연주에 사용되는 기타와 역사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박물관 맞은편 광장 너머 주택가에는 파두를 공연하는 여러 파두 하우스들이 골목골목에 들어서 있다. 저녁식사를 겸해서 파두를 감상할 수도 있고, 음료만 주문할 수도 있는데 일부 파두 레스토랑의 경우 식사를 주문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추가요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요금은 비싼 편이다. 저녁식사를 할 경우 주문음식 등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략 1인당 40유로 정도는 예산으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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