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타이항대협곡
① 도화곡~왕상암 코스
② 곽량촌과 만선산 코스


1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어 놓은 철계단‘현공잔도’


‘우공이산’그 아찔한 현장을 가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 등장하는 태형산(太形山)은 타이항산(太行山)의 다른 이름이다. 막상 그 현장에 와 보니, 우공은 그냥 고집 센 노인이 아니었다. 90세 노인이 옮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남한만한 면적의 거대한 지괴였다. 그 정도 집념이면 어느 신이든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다. 마치 타이항대협곡의 경치에 누구나 가슴 깊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수백 미터 아래로 드리워진 붉은 벼랑을 마주하니 문득 우공이 그리워졌다.

글·사진 천소현 객원기자, 취재협조 대아여행사 02-514-6226

오래 달린 버스가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천진에서 허난성(河南省)의 임주(林州)까지 550Km를 실려 온 사람들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타이항산맥의 남부, 임려산(林慮山)의 거대한 석벽이 나타났다. 좁은 길을 따라 버스가 방향을 비틀 때마다 전·후방으로 드리워지는 붉은 절벽은 조금의 간격도 없이 늘어 선 수직의 파편들이었다. 오르고 넘어설 가능성이 없는 각도라는 생각이 든 순간, 사방이 캄캄해졌다. 터널 안이었다.

■도화곡, 물길을 따라서

절벽을 통과했으니 산행은 이미 깊은 협곡 안에서 시작된 셈이다. 타이항대협곡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는 도화곡(桃花谷)이었다. 남북으로 50km, 동서로 1.5km 길이의 협곡은 해발 고도가 800~1,739m로, 크게는 1,000m 이상의 낙차를 보여준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길을 잘 찾는 것은 물이다. 물이 흘러 내려오는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 지 오래지 않아 황룡담이 나타났다. 옥빛의 넉넉한 소(沼)에 가로막혀 더 이상 길이 없다 싶었을 때, 또 다시 길이 보였다. 왼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어놓은 철계단, 현공잔도(懸空棧道)가 시작되고 있었다. 수직의 벼랑에 매달린 길은 저 홀로 계곡을 건너고 다시 건너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로 나타난 폭포를 넘어서니 ‘지(之)’형의 지그재그 협곡이 꽤 오래 이어졌다. 몸을 구겨가며 좁은 길을 통과하고 다시 줄다리를 건너면 함주(含珠), 이룡희주(二龍嬉珠), 비룡협(飛龍峽) 같은 새로운 경치가 나타나는 식이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서니 집채만 한 낙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약 5억 년 전에 형성됐다는 이 백운암(白云岩)들은 주변의 암석보다 연대가 훨씬 어리다. 떨어져 나온 자리가 궁금하다면 정상까지 올라가라는 말에 호기심을 접었다.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도화곡 트레킹은 아홉 개의 폭포가 모여서 흐르는 구련폭(九連瀑)에서 끝이 난다. 폭포 옆으로 난 계단을 타고 도화동민속촌에 올라서니 일명 ‘빵차’라고 불리는 소형 봉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2, 4 왕상암 코스를 내려오는 길. 보기에도 아찔하다 3 88m의 회전 사다리‘통제’5 계곡 사이를 연결한 짚 와이어. 강심장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6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놓여 있는 왕복 2차선 도로


■하늘에 길을 올리다

태항천로(天行天路)를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도화곡 풍경구와 왕상암 풍경구 사이를 연결하는 25km의 2차선 포장도로는 1,000m 높이에서 협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하늘길이다. 그 위험천만한 길에서 여행객을 나르는데 익숙한 운전수는 마치 신나는 드라이브를 하듯이 비트 강한 음악의 볼륨을 높였다. 저마다 그럴듯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을 봉우리들은 대부분 자욱한 안개 속에 숨어 있었다. 주마간산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전망대에 오르니 안개 속에서 작은 마을이 희미하게 떠올랐고 저 멀리 우리가 올라왔던 길도 어렴풋했다. 30호 안팎의 마을 뒤로는 고산이요, 아래는 절벽이다. 척박한 심산,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돌뿐이지만 목동은 양을 치고, 농부는 층층이 계단 논을 일구는 것이 수백 년 이어온 삶의 양식이었다. 사람과 동물을 제외한 마을의 모든 것은 석판암과 약간의 나무로 이뤄져 있다. 선판으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다. 등산로의 쓰레기통조차도 돌이었다. 얇은 육면체로 쉽게 쪼개지는 석판암은 가공할 필요가 없는 천연의 건축 재료였다. 석기 시대라면 노다지 땅이라고 불렸을 법 하다. 다시 ‘빵차’를 타고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달려 왕상암 코스의 정상부로 이동했다.

■타이항산의 혼 ‘왕상암 코스’

타이항산의 혼이라고 불리는 왕상암(王相岩) 코스를 거꾸로 내려가는 길은 스릴 넘치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시작부터 경사가 급했던 계단은 웬만한 성인 남자들도 벽에 붙어서 엉거주춤하게 만드는 난이도였다. 수직 절벽의 중간에 자리 잡은 옥황각에서 잠시 부드러워지는가 싶었지만 이내 길은 다시 좁아지면서 폭포 뒤편의 동굴로 이어졌다. 이 코스를 정말 ‘모험’으로 만든 것은 짚 와이어(Zip Wire)였다. 계곡의 양쪽을 연결한 와이어에 매달린 한 아가씨가 눈앞에서 쭉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익스트림한 모험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면서 자리를 피하고 보니 어느새 그 유명한 통제(筒梯)가 나타났다. 볼펜 스프링처럼 생긴 88m 높이의 회전 사다리 통제는 절벽 중간에 수직으로 걸려 있었다. 빙글 빙글 도는 사이에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하늘이 멀어지고 땅이 가까워졌다.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비교적 완만하고 울창한 숲길을 걷으며 이제야 일반적인 산행을 즐기게 되나 싶은 순간 상상 못할 지그재즈 철계단이 운명처럼 다가와 있었다. 계단 바닥의 틈 사이로 다른 일행이 지나가고 머리 위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의 발그림자가 비치는 식이었다. 일행에 뒤쳐질까 그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내려와 왕상암 매표소 앞에 도착했을 때,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아침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막막한 낭떠러지, 그 중심을 가로지르는 지그재그의 잔도, 그 모든 것이 꿈인 것만 같다.

★ 타이항산맥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이가 400km나 되고 허북성, 베이징, 허난성, 산시성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최고봉인 소오대산의 높이는 2,882m, 평균 해발이 1,500~2,000m로 타이항산맥을 경계로 서쪽은 산시성, 동쪽은 산둥성으로 구분된다. 특히 타이항대협곡(太行大峽谷)은 최대 낙차가 1km에 육박하는 수직 절벽이 수십 km씩 이어지는 중국 10대 협곡 중 하나로 도화곡(桃花谷), 왕상암(王相岩), 왕망령, 만선산 등 중국 AAAA급 풍경구를 여럿 숨기고 있다.

임려산·타이항대협곡 코스
도화곡 : 황룡담~함주~이룡희주~구련폭포(약 1시간 소요)
태항천로 : 차량으로 이동(약 30분)
왕상암 : 옥황각~사자동~높이 88의 통제~관경대~잔도~목마파~흔들다리~매표소(약 3시간 소요)

▼ More to See
도화곡에서 3대 명물로 꼽히는 것이 있다. 한 겨울에 핀 복숭화꽃, 한 여름에 언 얼음, 내리치면 돼지 울음소리를 낸다는 저규석(猪叫石)이 바로 그 것. 아름다운 고산호수인 태항평호와 국제패러글라이딩 행사가 열리는 임려산(林慮山) 활공기지도 자랑 중 하나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인공수로 ‘홍기거(紅箕渠)’다. 항상 물이 부족했던 산동성의 기갈을 해결하기 위해 태항산맥 건너편의 산서성에서부터 1,250개의 산과 152개 고개를 깎고 400개의 동굴을 뚫어 1,500km의 인공수를 축조한 대업은 1960년부터 10년 간 진행된 중국판 새마을운동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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