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항대협곡에서 만난 봉우리들은 하나같이 이상야릇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야 한다는, 산의 형상에 대한 상식을 뒤집고, 중력의 작용마저 거부하는 듯 보였다. 더 가까이 보려하면 이내 물결처럼 중첩되면서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수많은 산의 정령들이 한 봉우리씩을 차지하고 앉아서 도술이라도 부리는 것일까. 만선산(萬仙山)에 가서 물어야 할 일이었다.

타이항대협곡 글·사진 = 천소현, 취재협조 = 대아여행사 02-514-6226, 진천훼리 02-517-8671


1 단분구 협곡 트레킹 역시 도화곡 코스처럼 흥미롭다 2 타이항대협곡의 신비를 화폭에 옮기고 있는 미술학도의 모습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3 흑룡담폭포 4 해와 달과 별 문양을 품고 있는 일월성석


임주(林州)를 떠난 버스는 남동쪽의 신샹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허벅지의 묵직한 통증과 함께 전날 걸었던 도화곡-왕상암 코스의 강렬한 잔상을 곱씹는 동안 버스는 드디어 만선산(萬仙山) 매표소(입장료 1인 60RMB)에 도착했다.
이제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지만 풍경이 심상치 않았다. 도로가 가팔라지기 시작하더니 겨우 13명이 5년간 고통스러운 노동 끝에 완성했다는 1,200m의 동굴도로, 절벽장랑(絶壁長廊)에 진입했다. 절벽의 중턱에 무작정 뚫기 시작한 복도형 터널은 원시적인 도구와 시간만으로 완성했다고 믿기가 쉽지 않을 만큼 달리는 차를 넉넉하게 맞아들였다. 절벽 쪽으로 불규칙하게 트인 구멍을 통해 햇빛과 공기가 드나들었고 간혹 맞은편 절벽에서 달리고 있는 차의 옆구리가 흘깃 보였다.
절벽장랑은 시간의 복도였다. 마치 인간계에서 신선계로 넘어가는 듯, 터널의 전과 후를 사이로 모든 풍경은 달라졌다.


■그림 같은, 영화 같은 곽량촌

해발 1,672m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곽량촌(郭亮村)에는 어린 예술 지망생들이 한 움큼 뿌려져 있었다. ‘중국의 위대한 자연 현상’이라는 찬사를 받는 타이항대협곡은 인근에 위치한 100개가 넘는 미술학교 학생들에게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다. 캔버스와 팔레트, 물통을 손에 든 젊은이들이 폭포 아래나 계곡, 마을에 앉아 몇 시간씩 산을 응시하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특히 중국의 유명한 영화촬영지이기도 한 곽량촌에서는 골목마다 캔버스를 펼쳐 놓은 학생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텅 빈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산골 마을은 별 수고없이 그대로 카메라만 돌려도 한 세대쯤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에 많은 시대물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마을의 식당 겸 여관들은 아쉽게도 나무가 아닌 석재 건물이었지만 분위기만큼은 금방이라도 황비홍이 2층 난간을 부수며 뛰어내릴 듯하다. 직접 채취한 산나물을 고소하게 볶아내는 소박한 음식들은 아직 그들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한국의 산골 마을들과도 다르지 않았다.

날씨 운은 여전히 좋지 않아 ‘빵차’로 이동하는 드라이브 코스에서는 많은 것을 놓치고 말았다. 칼 봉, 칠형제봉, 호리병봉 등 신선들의 작품들은 전날보다 뿌연 안개에 쌓여 실루엣마저 희미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듯, 별 4개의 최고급 풍경구에는 붉은 벼랑과 깊은 협곡, 그 사이를 수직 낙하하는 폭포와 연못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차에서 내려 하산 트레킹을 시작했다.

■바다의 기억, 파도석과 일월성석

단분구(丹分溝)협곡에서 시작된 트레킹은 전날 오른 도화곡 코스의 아슬아슬한 잔도를 다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1.2km의 짧은 구간이지만 풍경이 하도 변화무쌍해서 진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돌계단과 바위를 지나면 나타나는 좁은 철계단, 이어서 대나무를 엮어 만든 흔들다리를 건너면 다시 철계단과 바위길이 번갈아 등장했다. 물이 많은 협곡의 길은 미끄럽기도 해서 선두의 두어 명이 엉덩방아 찍는 장면을 보고 나서야 속도를 줄일 생각이 났다. 그러다 갑자기 길이 사라지고 막다른 난간 아래는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였다. 저 멀리 맞은편 절벽에서는 흑룡담 폭포가 무심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함께 흘러온 물은 바로 옆에서 백룡담폭포로 낙하 중이었지만 소리만 들릴 뿐 폭포는 보이지 않았다. 사라진 것 같았던 길은 왼편의 절벽을 따라 급하강하는 계단으로 바뀌었다. 지상으로 내려오니 흑룡담폭포가 바로 눈앞이었다.

이틀간의 산행동안 비룡, 황룡, 백룡, 흑룡을 모두 만난 셈이다. 일월성석이 있는 남평까지는 길이 순했다. 밤나무 우거진 숲길을 천천히 내려오다 보니 안내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일대는 구조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으로 암석의 연대는 12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부한 산화철 성분 때문에 붉은 색조를 띄는 석영 사암들은 저마다 독특한 줄무늬를 품고 있다. 부드러운 잔물결이 뚜렷한 파도석들도 쉽게 발견된다. 오래전 이 땅이 바다 속에 있었다는 증거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모든 돌이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1994년 마을의 한 농부가 발견한 일월성석(日月星石)은 자연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선명한 해, 달, 별 문양을 품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거액의 제안을 거부하고 이 돌을 마을의 보물로 모시고 있다. 이 돌의 기운을 축복처럼 받으며 만선산의 산신들과도 헤어졌다.


★ 진천훼리로 떠나는 타이항산 6박7일

대아여행사는 진천훼리를 타고 떠나는 타이항산 6박7일 트레킹 상품을 런칭했다. 인천항에서 천진까지 26시간, 그리고 다시 진천에서 타이항산맥의 관문 도시인 임주까지 650km를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이지만, 그 모든 시간은 특별한 산행을 위한 준비 시간이자 여백으로 봐도 좋다. 타이항대협곡 코스 중에서 백미로 꼽히는 도화곡-왕상암 코스와 만선산 코스에서 각각 하루씩의 시간을 보낸다. 산행 초보자도 부담 없이 올라갈 수 있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와 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를 적절히 배합해서 난이도를 조절한 것은 타이항산을 속속들이 답사하고 연구한 현지 랜드의 노하우가 돋보이는 부분. 이 밖에도 중국의 불교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융흥사, 본향에서 관람하는 오교 서커스는 돌아오는 길의 알뜰살뜰한 재미다. 마지막으로 진천훼리의 편의시설을 맘껏 누리며 돌아오는 잔잔한 바다여행은 협곡의 기억을 더욱 입체적으로 간직하게 한다. 일정은 인천-진천훼리(1박)-석가장(1박)-한단-도화곡 코스-임주(1박)-만선산 코스-한단(1박)-석가장 융흥사 관광-오교 서커스 관람-천진(1박)-천진훼리(1박)-인천. 매주 화요일 출발. 요금 49만9,000원부터. 문의 대아여행사 02-514-6226."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