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겸 tourlab@jnu.ac.kr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단풍이 한창이던 지난달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 한 켠에 버스 꽁무니마다 관광객들이 쭈그리고 앉아 음식을 펼쳐놓고 먹고 있었다. 간만에 여행 떠난 한동네 무리인 듯 보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며칠 전 산행차 들렸던 국립공원 입구 주차장에서도 마찬가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예 간이 테이블과 취사용 가스버너까지 싣고 와 버스 옆에서 조리를 해가며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소주가 한 순배 돌고 음악까지 곁들여진다.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급기야 어깨를 들썩이고 춤까지 춘다. 본인들은 왁자지껄 기분이 좋겠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민망할 따름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관광버스는 ‘달리는 무도장’으로 불릴 정도로 춤과 노래로 가득했던 적이 있었다. 경찰이 순찰차까지 동원해 단속하곤 했었지만 이제 이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여행문화는 많이 성숙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글로벌화를 외치고 삶의 질을 말하는 시대에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정말 후진적이다. 언제까지 버스 꽁무니에 둘러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여행문화가 계속돼야 할까.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긍정적으로 이해하자면 이것도 우리 문화란 생각이 든다. 논두렁에 모여 앉아, 동네 어귀 평상에 둘러 앉아 함께 새참을 나누어 먹던 농경문화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잔칫날 동네에서 십시일반 음식을 준비해 함께 나누어 먹던 공동체 문화의 유전자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물론 이렇게 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저렴하다는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단체가 한꺼번에 들어가 먹을 만한 마땅한 공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휴게소 식당에 한꺼번에 40명이 들어가 주문하기란 여간 번잡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 거기에는 ‘관광지 식당 음식 가봐야 별것 없다’는 경험에서 나온 불신도 깔려 있을 것이다. 같은 값이면 다소 번거로워도 제 입맛에 맞게 준비해 먹는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그저 스쳐 지나는 일회성 단체 손님이라며 대충 서비스하고 바가지 요금으로 일관했던 식당들의 무감각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이것도 우리 문화라면 고속도로 휴게소와 관광지에 제대로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마련하면 된다. 음수대와 그늘을 갖춘 피크닉장을 만들어주면 된다. 한편 휴게소와 여행지 식당에서도 단체 고객을 위한 서비스 개발에 나서야 한다. 최근 지방도시마다 외국인 단체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하지만 정작 관광객들은 메뉴와 가격, 서비스 삼박자를 갖춘 식당을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국민들도 이용하기 어려운 식당인데 하물며 외국인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행객들도 이제는 음식 문화를 체험하는 데 아낌없는 투자를 하기 바란다. 음식은 문화다. 여행의 즐거움은 그 지방의 독특한 음식을 맛보고 문화를 느끼는 데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의 여행은 여기저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패스트 투어(fast tour)’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차에서 내려 자연을 만나고 지역문화를 체험하고 제철 음식을 맛보며 여유롭게 여행하는 ‘슬로 투어(slow tour)’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물론 성숙한 여행문화를 만들고 관광 경쟁력으로 이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관광버스 꽁무니에서 길거리 식사하는 관광객들에게 얼굴을 찌푸릴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여행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공간, 품위 있게 식사할 수 있는 인프라와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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