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원 schoi@tourism.australia.com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지사장

‘학습 (學習)’이란 말을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은 뜻밖에도 공자라고 한다. 이 두 글자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는데, 학은 배운다는 뜻이고 습은 익힌다는 뜻이다. 우리는 ‘습’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습이라는 한자는 원래 갓 태어난 새가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날개를 파닥거리며 수도 없이 날개 짓 연습을 하는 모양을 본 딴 ‘상형문자’라고 한다. 배우고(學)나서, 자기 몸에 완전히 익혀질 수 있도록 체득하는(習) 두 가지 과정이 다 갖춰져야 비로소 학습이 됐다는 이야기다. 뭔가 중요한 것을 배웠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면 ‘습의 과정’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도 뭔가 어려운 느낌이 든다. 동양고전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이 명쾌하게 그 뜻을 풀어주시기를, “그게 뭐든 대충 알고 넘어가지 말고, 뭐 하나를 잡으면 파고들어서 끝장을 보는 게 격물이고 그래야 치지, 즉 ‘무언가 알았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학의 실천강령이라는 8조목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앞에는 원래 네 가지 실천 항목이 더 있다. 이 중에서 '격물치지'는 '심신을 닦는다'는 뜻의 수신(修身)보다 앞에 놓여있으니, 수신을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본다. .

오랫동안 일을 해왔으니, 대부분의 시간을 수많은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보낸 셈이 된다. 인복이 많아, 책임감이 강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늘 주위에 있었는데, 가끔은 이력서상 탄탄한 경력을 가진 직원을 뽑아놓고 일을 함께 하다가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기획력은 고사하고, 단순하게 실행하는 일조차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일 잘하는 직원들이 미리 보고 단도리하고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일이, 당사자에게는 보이지도 않으니, 선제 대응도 안 된다. 실제로는 뭐든 대충하면서, 잘돼간다고 생각하니 정작 본인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그걸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도리어 맘을 졸인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너는 항상 기대 이상으로 해(You always go the extra mile)” 우연히 주워 들어 기억하고 있는 영어 표현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태복음에 ‘누가 억지로 5리를 가달라고 하면, 10리를 가주어라’에서 유래된 표현인데, 요즘은 기업의 성과 관리 분야에서 쓰인다고 한다. 이정도면 모두가 잘 됐다고 할 일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바쁜 와중에,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하고 말 그대로 몇 마일을 기꺼이 더 가고야 마는 직원이 있다. 불과 몇 걸음을 더 간 것으로, 놀랍게도 일의 성과는 훨씬 더 의미 있어지고 좋아진다. 얼핏 보기에는 작은 차이다. 그런데 이 직원은 어떻게 된 게 매번 ‘몇 마일’씩 더 간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이 사람이 스스로 체득한 역량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 잡을 수 없게 된다. 이게 무서운 거다.

‘제대로 알고 가고 있는가’, ‘최대한 파악한 건가’, ‘이게 최선의 방법인가’를 되뇌는 직원에게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배운 것을 체득해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면, 그 직원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머리로 파악한 것이 확실하면, 그 후에 손발을 움직여 실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 비를 특별히 좋아하는 팬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TV를 보다가 비가 했던 한마디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내가 늘 열심히 하는 이유는 누구와도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칼럼을 쓰는 필자는 이미 오래된 세대이고, 서서히 ‘지는 해’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회 선배로서, 젊고 패기 있는 후배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그 누구와도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역량을 지닌 사람인가? 그렇게 되고 싶은가? 그럼, 오늘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겠는가?

*중국고전에 대한 부분은 2009년 한국종합예술원 박재희 교수의 논어전문 강의 내용 중 발췌.

■ 최승원 지사장은 1985년 숙명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트항공, 라마다르네상스호텔, 필립스 전자, 포드자동차 등을 거쳐 2004년부터 호주관광청 한국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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