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원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지사장
schoi@tourism.australia.com

잊을 만하면 한번씩 일어나는 북한 관련 사건들에는 무덤덤하다가, 작년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에는, 이러다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 전쟁 이후, 잿더미 위에서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전면전은 없어야 할 텐데 하고 걱정도 한다. 뜬금없이 중국인 직장 동료에게 중국 정부가 북한을 도와 전쟁을 일으킬 의도는 없어 보이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60여년 전 한국 전쟁에 파병을 했던 두 나라를 떠올리게 됐다.

한일 월드컵 개최 전, 유럽 출장 길에 터키를 잠시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유명 관광지나 쇼핑몰에서 만난 터키인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면서 무척 반가워 했다. 일종의 상술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엔 심지어 필자를 와락 껴안는 터키인도 있었다. 그래서 “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이 참전했고 수많은 군인들이 한국에서 죽었다”는 답이 되돌아 왔다. 피를 나눈 혈맹 관계이니, 형제라는 것이다. 이 대답에 낯선 길거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도움을 준 쪽은 기억을 하고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데, 도움을 받았던 쪽은 전혀 기억도 못하고 있구나…’

2002년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을 앞두고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두 나라의 인연이 알려졌고, 경기장에는 태극기뿐 아니라, 터키 국기가 한국 관중들 손에 들려있었다. 치열한 경기였고, 아쉽게도 터키에 3대 2로 한국이 지면서 경기가 끝나갔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던 터키 선수들이 갑자기 한국 선수들을 끌어 안기 시작한 것이다. 양국 선수들이 서로 얼싸안던 모습은 가슴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올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한 테이블에 앉아 경기를 보았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터키 선수들이 저러는 건, 단순히 스포츠 정신 때문만은 아니야”

호주도 한국전 참전 국가다. 몇 년 전 시드니 외곽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졌다. 한 동네에서 자라고, 사랑하게 돼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결혼했던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이다. 결혼 3개월 만에 남편이 한국전쟁에 파병됐는데, 안타깝게도 전사해 다시는 신부 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꽃다운 나이의 신부는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았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을 즈음, 지인들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남편의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전사한 남편의 무덤은 부산의 유엔군 참전용사 묘역에서 발견됐고, 무덤 앞에서 오열하는 할머니의 사연은 호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호주 브리즈번에서는 매년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다. 수백명이 넘게 모이는 행사라고 하는데, 호주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은 바 있는, 전 콴타스항공의 장공섭 사장님은 사재를 털어 선물을 마련해 매년 참석하신다. “그런데, 해마다 숫자가 줄어” 작년 행사를 다녀오신 후, 침울해하시는 장 사장님을 뵈었다. 참전 용사들도 모두 할아버지가 됐으니, 매년 하나 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종국에는 한반도에 분단을 가져왔던 한국 전쟁.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피를 흘려가며 우리를 도왔던 나라들이 있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야’ 어른들이 가끔씩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국가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OECD DAC(경제협력기구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함으로써,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격상됐던 2009년의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한국의 사례는 전세계에서 지금까지 유래가 없는, 최초의 사건이라고 한다. 우리가 정말 막막했을 때 받았던 도움을 이제 되돌려주고 갚을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덧붙여 2011년은 한국과 호주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은 올해를 ‘우정의 해(Year of Friendship)’로 선포하고, 더욱 돈독한 국가 관계를 다짐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두 나라가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서서, 더욱 단단한 우의를 다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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