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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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알고 지내는 사장님들이 간혹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어 오신다. “혹시 용한 점집 아는 데 없어요?” 나는 안다. 점집을 알아보는 사장 중에 재미 때문에 그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그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가슴을 옹종거리며 어둠의 터널 속에서 실오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나에게 점집을 알아본다.

술자리가 지루해질 무렵, “내가 이번에 점을 봤는데 말이야” 로 서두를 꺼내면 그 술자리는 단박에 화색이 돋고 생기가 나는 것도 사장들의 술자리 특성이다. 한때 내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님은 회사 이전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무속인을 찾았다. 평소 근엄함과 차가움을 펄펄 풍기던 사장님이 이삿날을 지정 받으려고 점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는 모습은 기이함보다는 귀여움이었다. 그런데 그 귀여움이 기이함으로 변한 것은, 사장님이 받아온 것은 이삿날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 쥐어진 도면에는, 점쟁이가 직접 지정해준 직원의 좌석배치도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화장실에서 혼자 큭큭 웃으며 과학의 시대에 가마를 타고 다니는 미개인을 비웃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사장이 되니, 나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더라. 몇 년 전 지금의 사무실로 이사를 했을 때, 외부인을 초청해서 이전식도 잘하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산뜻하게 출발했는데 이상하게 영업이 바닥을 기는 것이다.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나는 갑자기 동해의 선녀보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강원도 여행취재 때 만나서 이후 나의 휴대폰에 모셔져 긴할 때마다 불려나오는 무속인이다.

“왜? 뭐가 또 안 돼? 또 개고기 먹었지?” (그녀는 언제나 개고기같이 나쁜 음식을 먹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라 경고한다) “아니야. 이번에 이사를 했는데 돈이 안 벌려.” “회사 앞에 뭐 있어?” “강북삼성병원” “고사는 지냈어?” “응. 뷔페로 이전식을 하면서 돼지 저금통 하나 올려놓고 사람들에게 절하라고 했어.” “ 쯔쯔쯧 쯔쯔쯧.” “ 왜?”

“살아 있는 것들은 진짜 음식을 먹고 귀신에게는 가짜를 먹이냐? 병원 앞이면 귀신들이 특히나 많을 텐데 제대로 대접하면서 자리를 봐달라고 귀신을 달래야지. 고사 다시 해”
“네” “받아 적어. 준비물은, 한지, 시루떡, 막걸리, 과일, 모시는 방법은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이틀 후 마누라님은 전날 하루 종일 떡을 하고 돼지머리를 장만하고 시장을 보고, 선녀보살님이 지정해준 꼭두새벽에 죄다 불려 나온 직원들은 유난히 비장한 얼굴을 한 사장의 궁둥이 뒤에서 위아래 층을 오가며 돼지머리에 절을 하고 제문 낭독을 듣는 의식을 진행했던 것이다. 고사가 끝난 후 느닷없이 자리를 바꾸라는 말에 구시렁대며 짐을 쌓던 경리여직원은 아직도, 그것이 바로 선녀님의 지시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가 얇은 사람이 누구냐고 한다면 나는 사장님들일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을 제일 많이 가는 사람도 나는 역시 사장님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남보다 유능했으므로 자기 회사를 차린 사장님들이 이렇게 귀 얇고 절대적 미신숭배자로 바뀌게 되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직원과 그들 가족의 삶과 미래를 책임져야 할 사장들이라면 그 부담감에 짓눌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테다.

물런 직원 입장에서는 피곤한 일이다. 느닷없이 새벽에 불려 나와 돼지머리에 절을 하고, 정들었던 자기 책상을 영문도 모른 체 남에게 넘겨주고, 사장이 던지는 새로운 일거리에 늘 허덕허덕 적응해야 하고, 적응할 만하면 사장은 이미 그 아이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 모든 굿거리장단에 춤을 춰야하는 직원은 죽을 맛일 테다.

그래도 어쩌느냐. 당신 회사의 사장님만 그런 것이 아닌데. 그저 그것이 사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 생각하고 적응해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테다. 사장님이 그럴 때마다 하하 호호 웃어버리는 것이 끌탕하다가 위장병 생기지 않는 비결이다. 단, 웃을 때는 화장실에서 혼자 웃을 것.

점괘 받아와서 진지하게 의식을 진행하는 사장 앞에서, “ 호호호 아니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뻥을 왜 믿는 거에요? 사장님 너무 유치하셔” 라고 말하는 순간, 사장님의 귀에는 얼마 전 점쟁이가 했던 말이 환청으로 들린다. “그 회사에 툭하면 나대는 아이 있지? 그 마귀는 잘라버려. 걔 때문에 당신 회사가 안 돼.” 댕강,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 목 날라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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