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일하는 즐거움이나 일의 가치를 느끼기도 전에 직장을 쉽게 옮기고 또 쉽게 그만두고 있어 너무 안타깝습니다』
지난 62년 한국관광공사(사장 趙英吉)가 창립될 당시 임시직으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근속하면서 한국관광공사의 역사를 30년간 지켜본 경비수장 朴允萬씨(60)의 젊은이들의 직업의식 결여에 대한 짧은 지적이다.
朴씨는 6·25 발발후 강원도 김화에서 단신으로 남하했다. 군제대후 국립영화제작소의 조명기사로 잠시 일하다가 당시 관광산업에 대해서는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관광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정부가 한국관광공사를 설립할 때 임시직으로 입사하면서 공사와 인연을 맺었다.
2년 뒤 정식 발령을 받아 행정업무를 맡는 등 관광공사인으로서 본격적인 근무에 들어갔다.
그러나 순탄하던 직장 생활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지난 73년 집안에 개미가 많아 농약을 뿌렸는데 그것에 중독돼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 때문에 손이 떨려 글씨를 쓸 수 없어 행정업무를 할 수 없게 됐다』며 『그래도 계속 근무토록 배려해 준 회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朴씨가 하는 일은 경비업무외 사서함 우편물의 직배, 문서발송 등.
朴씨를 중심으로 한 경비업무는 3명이 순번대로 3일 1회 24시간 근무한다.
『관광공사 자체 건물이 없어서 걸스카웃 빌딩, 반공연맹회관, 반도아케이드, 홍익빌딩, 극동빌딩 등에서 세들어 살때는 관광공사뿐만 아니라 타회사의 경비업무까지 해야만 했다』고 당시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나 『이젠 자체 사옥에서 우리 식구만을 위한 경비업무를 맡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 있을 까닭이 없다』고 환히 웃어보였다.
朴씨가 처음 받은 월급액수는 2천5백원. 지금은 30년 근속으로 적지 않은 월급을 받지만 10년간 남의 집살이를 한후 유일하게 마련한 터전은 성북구 하월곡동의 20년간 살아온 무허가 판자촌이다.
지난 66년 결혼해 26년간 함께 살아온 부인 金敬子씨(58)와의 사이에 세 딸을 둔 朴씨는 『딸 셋을 대학공부까지 시키자니 교육비 때문에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셋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니 무엇보다도 마음 든든하다』고 말했다.
朴씨와 입사동기이자 29년이상 장기 근속한 직원은 공사내 모두 11명. 현재 그들은 공사내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간부들이지만 朴씨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은 직위의 고하여부에 있지 않기에 경비업무에 대한 소흘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인터뷰 도중에도 朴씨는 찾아오는 손님마다 직접 안내하거나 층별 체크를 했다)
『단돈 10만원을 벌어도 내일을 했다는 긍지가 있어야 한다. 일도 하기 전에 일에 대한 대가를 따지지 말고 일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자긍심을 갖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朴씨의 말에서 젊은이 못지 않은 기백과 요즘 젊은 세대의 직업에 대한 가치관 정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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