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원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지사장
schoi@tourism.australia.com


여행업계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예상치 못했던 외부적인 악재가 발생하면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는다는 점이다.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든 간에 수요는 곧장 바닥으로 주저앉고 마는데, 그 외부 악재가 사라질 때까지 별 뾰족한 수도 없어 보인다. 먼 옛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며 참고 기다리고, 홍수가 들면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견뎌내는 그런 형국이다. 악재가 걷히고 경기나 소비심리가 회복세로 되돌아서면, 여행 수요는 즉시 빠르게 회복이 되곤 한다.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여행업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다른 업종도 여행업계만큼 외부 요인에 따라 심각한 수준의 타격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모 외국기업에서 출시한 염모제 이야기가 있다. 이 염모제는 기성 제품들에 비해 두피나 모발 손상이 현저히 줄어드는 품질 덕분에, 비싼 가격에도 수요가 꾸준히 늘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업이 미용실에 제품을 공급하는 기준이나 조건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다. 미용실은 염모제 회사가 마련한 일정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교육 이수자의 숫자, 미용실의 규모나 시설 등을 꼼꼼히 파악해서,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예 제품을 주지도 않는단다. 다른 경쟁사 제품들은 소량을 주문해도 즉각 판매사원이 뛰어오고, 평소에도 자사 제품을 써달라고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는데 말이다. 미용실들은 발빠르게 신청해야만 제품을 확보할 수 있으며, 공급 가격도 매우 비싸다.

시쳇말로 갑과 을이 뒤바뀐 배짱 장사를 하는 셈인데, 워낙 제품이 좋으니, 명백한 갑이었던 헤어살롱들이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제품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파고 들어 물어보니, 기존 제품들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제조되었다는 설명이다. 경쟁 우위의 상품성이 있으니, 칼자루를 쥐고 모든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장사를 하는 것이다.

“승리할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전투에 임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보고 싶다. 지난 6월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해군사관학교 이민웅 교수의 ‘창의력의 승리, 한산대첩’ 강의 중 나온 이야기이다. 세계 해전 사상 유례없는 23전 23승의 신화도 결국 기존 게임의 룰대로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이 충무공의 지략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전까지의 해전은 서로 배를 붙이고 갑판으로 뛰어올라 양쪽 병사들이 칼이나 창으로 난타전을 해서 이긴 쪽이 배 두척을 다 갖는 이른바 ‘해적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충무공은 왜적이 생각하는 기존의 방식 대로 게임을 하지 않았다.

적이 배를 바짝 붙이지 못하도록 거리를 유지했고, 심지어 왜군들이 아군의 배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거북선 갑판에 뾰죽한 창칼을 솟아 있게 설계했다. 노젓는 사람들을 다른 군사들과 분리해서 훈련시켜, 배의 속도와 기동성을 높여 순식간에 180도 배의 회전을 요하는 학익진(鶴翼陣), 즉 야전에서나 가능했던 전술을 바다에서도 실현시켰다. 또한 훈련된 사수들을 대거 배에 태워, 총포와 화살로 일본 수군들을 일시에 제압하는 방식을 썼다. 당연히 배를 붙이고 싸우는 해적 스타일의 싸움에만 익숙했던 일본 수군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설명을 듣고서야, 일본 수군에 엄청난 손실을 입히고도, 우리 수군의 피해가 제로였던 사례들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오랜 의문이 풀렸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기존의 방식대로 게임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한경쟁시대에 승리하는 비결이라면, 여행업계에는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여행업계도 이게 끝인가 싶으면 또 들이닥치는 외부 요인에 번번이 휘청거리지 않고, 탄탄하게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갈 수 있는 내공을 키워나갈 해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도 이순신 장군처럼 뛰어난 지략을 지닌 한사람의 업계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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