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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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25년 차(次)인 선배는 오가는 길에 종종 내 일터에 들러 차를 마시고 간다. 50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가 다화(茶話)의 주제로 가장 많이 꺼내놓는 것은, 정년퇴직 후의 불확실한 미래다. 회사에서 보장해 준 55세의 정년은 곧 다가오고 지금도 퇴물 취급을 받으며 자리보존만 하고 있음을 선배는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아직 둘째는 대학도 들어가지 않은 나이라는 것이 선배를 더 힘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일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고 체력도 팔팔한 나이에 사회에서 밀려나야 한다는 현실 인식이 선배를 가장 힘들게 한다.

얼마 전에는 후배 기자가 술자리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하게도 여행업계는 마흔이 넘으면 업계에서 하나 둘씩 사라져요.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이며, 무엇을 하는지가 궁금해요.” 나는 그것이 비단 여행업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어느새 그가 가졌던 궁금증은 내 몫이 되어있었다. 정말로 마흔 넘은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마흔은 한창 현장에서 일할 나이고, 지리산으로 들어가기에는 택도 없이 젊은 나이며, 교외에 펜션을 짓고 한량 노릇을 하기에는 축적된 재산이 그리 많지 않을 나이인데 그 많던 마흔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선배는 55세에 쫓겨남을 안타까워하고, 후배 기자는 마흔 넘어 사라지는 업계의 현실을 의아해 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는 고령화 사회로 숨 가쁘게 진입하고 있다. UN은 전체 인구 중 65살 이상 인구가 100명 중 7명이면 ‘고령화 사회’로, 14명이 넘으면 ‘고령 사회’로, 20명이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한다는데 통계청은 한국이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18년에는 ‘고령 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노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일하는 기간도 늘려야 한다는 회사도 신문에 등장한다. 버려진 남이섬을 취임 10년 만에 200만 명이 찾게 만든 강우현, 남이섬 CEO에게 기자가 묻는다. “직원 100명 중에는 전직 교장, 대기업 임원, 공무원, 화가도 있다더라. 정년 80세라는 고용방식으로 화제가 됐다.” 그가 대답한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로 경륜 있는 선배 세대의 조기 퇴진을 당연시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직원을 뽑을 때 나이, 학력, 경력을 묻지 않는다. 정직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 자격이다. 종신직원이 되면 죽을 때까지 월 80만원을 지급한다.” 최근 들어 고용노동부에서 40~60대 전문 퇴직자를 위한 일거리 제공 사업이나 재취업교육사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변해야 할 것은 또 있다. 바로 근로자의 인식전환이다. 그래야만 마흔의 고개를 넘으면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억울한 노계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즉, 서른 후반만 되면 갑자기 뒷짐 포즈를 선호하며 ‘이 나이에 내가하리’ 정신으로 무장하고 감과 배를 직접 따기 보다는 ‘감 놔라 배 놔라’ 훈시를 폼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절대 고령화 사회에 준비된 근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업에서 젊은 직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들의 실무능력이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이다. 세련된 문서 작성 능력, 능숙한 컴퓨터 활용 능력, 유려한 프레젠테이션 능력, 능통한 외국어 구사 능력이 젊은 직원의 경쟁성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직급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이 모든 능력을 ‘나도 한때는’ 이라는 수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책상 서랍 속에 던져버린다. 내가 아는 어느 사장은 이렇게 푸념했다. “과감하게 마흔 넘은 경력 직원을 두어 명 고용했더니, 이들은 단순한 한글 작업도 못하고 뭐든 팀원을 시키려고만 합니다. 이러니 회사는 시키는 사람만 많고 일하는 사람은 적은 기형 구조가 돼버리지요.”

너나없이 건강관리에 목숨을 걸며 60에는 바람을 필지언정 환갑잔치는 안한다는 이 원기 왕성한 고령 사회에서 마흔을 넘은 관리자들은 스스로 어깨 힘을 빼줘야 한다. 엑셀을 못 다루면 부하에게 물어보고, 파워포인트를 못하면 책을 사서라도 배워야한다. 부하 직원이 공석일 때 비록 서툰 솜씨지만 부하 직원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어야 고령 사회의 관리자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쩔 줄 몰라 하며 휴가 직원의 핸드폰을 못살게 구는 관리자라면, 그가 어느 날 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다한들 안타까워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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