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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구시가지의 관문인 비루 게이트

“에스토니아에 일주일간 여행을 간다고요? 하루면 다 보는 곳 아닌가요?”라고 에스토니아를 여행해 본 사람들이 말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발트 3국 중 하나’라는 사실만 알아도 실은 에스토니아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에스토니아는 더 이상 유럽의 변방이 아니다. 당신의 다음 유럽 여행지로 꼽아두어도 에스토니아가 전혀 손색이 없는 이유를 소개한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취재협조=에스토니아관광청 www.visitestonia.com 핀에어 02-730-0067 www.finnair.co.kr


■Tallinn탈린
재래시장에서 발견한 에스토니아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는 문화적으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보다는, 언어와 민족적 특성이 북녘의 핀란드와 유사하다. 젊은이들이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것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다른 점이다. 소련에서 독립한 후, 가파르게 경제 성장을 구가해 온 에스토니아는 MSN 메신저와 스카이프(Skype)를 개발한 IT 강국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탈린은 물론 지방 소도시의 식당에서도 대부분 무선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할 정도다. 발트 3국 중 유일한 유로 사용국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는 지정학적으로 다양한 문화의 교차로에 있다. 특히 재래시장을 방문한다면 혼재된 문화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발틱역(Baltic Station) 맞은편에는 러시아식 재래시장이 매일 열린다. 앤티크 제품부터 채소, 과일, 생필품까지 50여 개 상점이 문을 여는데 탈린 시내와는 전혀 다른 구소련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차가운 사람들의 표정마저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린 것만 같다. 발틱역에서 트램으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자리한 옛 공장터 ‘키르부투르크(Kirbuturg)’에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벼룩시장이 열린다. 누가 사 입을까 싶은 낡은 옷가지부터, 고장난 라디오까지 어딘가 익숙한 시장 풍경이 펼쳐진다. 여름철이면 구시가지의 시청광장에서는 민족 장터도 수시로 열린다. 탈린이 고대부터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상징하듯 광장에는 주변 국가의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음식과 수공예품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언덕에 올라 부엌을 들여다보아라”

덴마크인들이 11세기에 이주해 오면서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탈린은 13세기에 한자동맹의 중심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거친 장사꾼들이 드나들며 만들어진 도시가 지금 이처럼 매혹적인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관광지로 변모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중세시대에 탈린은 상인과 일반인들이 거주하던 저지대와 영주나 귀족들이 거주하는 고지대로 나뉘었다. 저지대에는 과거 길드 상인들의 건물들이 식당, 카페, 기념품 상점들로 용도가 바뀌어 보존되고 있으며, 고지대에는 교회와 각국 대사관을 비롯해 부유층의 집들이 있으니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탈린은 도시 전체가 평평한 지형으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톰페아 언덕(Tompeaa Hill)이 해발 40m밖에 되지 않아 도보 여행을 즐기기에 좋다. 구시가지 도보여행은 비루 성문(Viru gate)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문을 통과해 100m 즈음 들어가면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구시청사와 시청광장이 펼쳐진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광장 주변 노천카페에서 음식과 차를 즐기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시청광장 부근에는 1422년에 문을 열고, 10대째 내려오는 약국, 중세 분위기를 가장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카타리나(Katariina) 골목이 유명하다. ‘부엌을 들여다보아라(Kiek in de Koik)’라는 엉뚱한 이름의 포수대에는 탈린 성곽의 역사를 알려주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탈린 시내를 조망하기 좋은 톰페아 언덕에는 제정 러시아 시절의 역사를 반영하는 알렉산데르 네프스키 교회가 화려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돔 성당도 있다. 성당 내부에는 교회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식품들이 가득해 어수선한 느낌을 주는데 현재는 중세시대의 유물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종교에 큰 관심이 없는 까닭에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구시가지에는 살 만한 기념품도 많다. 먼저 발트 지역의 명물인 호박Amber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구시가지에는 인력거에서 중세 복장을 한 아리따운 여인들이 아몬드에 다양한 향신료를 첨가해 그 자리에서 직접 볶아서 판매하는 가게를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으니 선물용으로 훌륭하다.

-전국민이 합창을 하는 나라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들은 많지만 노래를 통해 혁명을 이룬 역사를 가진 민족은 드물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1988년, 혁명 기간 중 약 30만명의 시민들이 집결해 소련의 통치에 반대하며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광장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당시 소련은 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위를 진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91년 독립을 이뤄내기까지 에스토니아는 반폭력 독립운동으로 일관했으며, 소련을 해체시키는 기반을 이뤘다. 에스토니아인들의 노래 사랑은 역사가 꽤 깊다. 탈린에서는 1869년부터 5년에 한번씩 송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에스토니아인들은 합창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 3만명이 합창을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무대에 한번쯤 서 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문화 수도 탈린에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미술관도 있다. 18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표트르 대제가 아내인 캐서린 1세를 위해 헌사했다는 카드리오르그 공원(Kadriorg Park)에는 화려한 궁전과 미술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궁전 내부에는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러시아의 16~19세기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대형 홀에는 낭만주의 시대의 명작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어 미술 애호가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카드리오르그 공원에서 얕은 언덕을 따라 오르면 석회석으로 지어진 뾰족한 외관이 인상적인 현대 미술관 쿠무(KUMU)를 만날 수 있다. 2006년에 문을 연 에스토니아 최대의 미술관으로, 2008년 ‘올해의 유럽 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변의 자연 지형과 어우러진 디자인과 독특한 내부 설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Lahemaa national park
습지 하이킹으로 유명한 라헤마 국립공원

많은 이들이 에스토니아를 하루 혹은 이틀만 여행하는 것은 ‘탈린 너머의 에스토니아’를 발견하지 못한 까닭이다. 탈린에서 출발해 러시아 방향으로 향하는 1번 도로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전혀 다른 세상에 다다를 수 있다. 때묻지 않은 늪지대와 울창한 삼림, 중세시대 영주들의 호화로운 저택들이 어우러져 있는 라헤마 국립공원(Lahemaa national park)은 1971년 구소련이 지정한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공원 내에서도 비루(Viru Raba) 지역은 하이킹 코스로 유명하다. 침엽수림과 습지의 조화로 밀도 높은 산소를 내뿜는 이곳에서는 습지 위에 통나무를 깔아놓은 3.5km 산책로를 걸어야만 한다. 산책길 중간중간 만날 수 있는 작은 연못은 물고기가 서식할 수 없을 정도로 맑아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국립공원에는 840종에 달하는 식물군을 볼 수도 있으며, 찰스 다윈이 가장 좋아한 식물이었다는 식충식물도 곳곳에 있어 살아있는 과학교실로 활용되고 있다.

여유가 있다면 국립공원에서 하루쯤 숙박하는 것도 좋다. 특히 옛 영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매너하우스(Manor House)를 구경하며 그곳에 머무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라헤마 국립공원의 3대 매너하우스로 불리는 팔름세(Palmse), 사가디(Sagadi), 비훌라(Vihula)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크풍 건물과 화려한 정원, 18세기 영주들의 유물과 예술품을 구경하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훌라 매너하우스는 골프코스를 갖추고 있고, 스파, 워터파크 등의 시설은 물론 인접한 해변에서 카야킹, 말타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 스포츠가 가능하다. 1박 숙박료가 비수기에는 90유로 수준으로, 럭셔리한 시설을 감안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Parnu페르누
“유럽에서 전신 마사지를 6만원에”

에스토니아의 ‘여름수도’로 불리는 패르누(Parnu)는 단지 라트비아 리가로 가는 길에 머물기만 하기엔 아까운 도시다. 탈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남쪽으로 2시간만 달리면 패르누에 닿는다. 거리상 129km밖에 떨어지지 않음에도 탈린에 비해 공기가 훨씬 온화한 패르누는 ‘여름 수도’라는 수식어거 무색하지 않게 널따란 백사장을 끼고 있다. 꼭 한여름이 아니더라도 스파를 즐기며 사시사철 휴식을 취하기 좋다.

19세기부터 스파 문화가 발달하해 자국민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와 동유럽 지역에서도 스파를 즐기기 위한 여행객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웰니스 스파(Wellness Spa) 외에도 치료 목적의 메디컬 스파(Medical Spa)를 다루는 리조트도 많다. 스트랜드 호텔(Strand Hotel & Conference)에서 진흙팩 트리트먼트를 받았다. 75분 동안 사해 머드를 온 몸에 바르고 나니 피부가 수분을 단단히 머금었고, 노폐물과 몸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 듯했다. 유럽에서 이 정도의 서비스를 받고 39유로(약 6만2,000원)만 지불하면 된다는 사실도 새삼 놀랍다. 스파 에스토니아(Spa Estonia)와 같은 메디컬 스파 호텔에서는 각종 질병 진단을 10유로 수준에서 받아볼 수도 있다. 패르누의 랜드마크 격인 아멘데 빌라(Ammende Villa)는 아르누보풍 호텔로 객실 내에 핀란드 사우나를 갖추고 있어 호젓한 휴식을 누리기에 좋다.




■Info

항공 - 핀에어를 이용하면 웬만한 서유럽 국가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헬싱키에서 탈린공항까지는 35분이 소요되며, 헬싱키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이동하면 2시간 가량 소요된다.
화폐 - 에스토니아는 올해부터 유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크룬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무선인터넷 - 에스토니아는 EU 국가 중에서도 IT가 가장 발전된 나라다. 대부분의 호텔과 식당에서 WIFI를 무료로 제공한다.
탈린 카드(Tallinn Card) - 탈린 여행의 필수품으로 6시간(12유로), 24시간(24유로), 48시간(32유로), 72시간용(40유로)이 있으며, 카드 한 장이면 대중교통, 박물관, 스파·사우나 입장은 물론 가이드 투어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탈린 호텔과 라헤마 국립공원 투어 등은 할인이 가능하다. 탈린관광청 웹사이트(www.tourism.tallinn.ee/fpage/
tallinncard) 혹은 호텔 및 관광안내소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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