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면 1]

칼바람 추위에 뜨거운 햇볕이 그리운 회사원 A. 가까운 동남아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번뜩 스마트폰을 꺼내 든 A. 당장 여행사 사이트를 접속해서 적당한 상품을 검색하고 후다닥 결제까지 마치고 싶다. 주말에는 푸른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자신을 상상하면서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하지만 A는 슬슬 짜증이 몰려온다. 스마트폰으로 여행상품을 찾아보던 A는 여행사 사이트를 모바일 브라우저로 확인할 수 없어서 끓어올랐던 여행욕을 식혀버렸다.

[# 장면 2]

성질 급한 B. 인터넷은 속도가 생명이라는 생각에 외국생활 때부터 이런저런 브라우저를 시험해보다가 파이어폭스, 구글크롬 등 새로운 브라우저를 접하게 됐다. 익스플로러보다 가볍고, 속도가 빨라서 애용하고 있다. 외국 사이트를 돌아다닐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여행상품을 이리 저리 검색하던 중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클릭조차 먹히지 않는 여행사 사이트를 보면서 답답하기만 하다.



■인터넷=익스플로러?

컴퓨터를 키면, 인터넷 창을 연다. 당연하게 파란색 ‘E’ 아이콘을 더블클릭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인터넷을 이용해온 한국인은 MS사의 익스플로러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인터넷=익스플로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익스플로러’란 말도 생소할 수 있다. 익스플로러는 인터넷 브라우저의 한 종류로 줄여서 IE라고 부른다.
브라우저는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안경’과도 같은데 웹의 정보를 보는 이로 하여금 편하게 인지할 수 있게 직관적으로 표현해주는 도구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 10명중 9명이 브라우저로 IE를 쓴다.

시장 상황에 맞춰 여행업계도 IE에 최적화된 사이트를 구축해 왔다. 특히 여행사 사이트는 검색과 예약뿐만 아니라 ‘결제’까지 가능해야 한다. 때문에 IE용 응용 프로그램 없이는 여행사 사이트를 완벽하게 이용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이트를 돌아다니다보면 열심히 설치해야하는 그것, ‘액티브 엑스’가 지금은 귀찮은 정도지만 슬슬 업계와 고객 모두를 짜증나게 만드는 주원인일 수 있다.

■실시간 검색, 실시간 예약?

외국 여행을 하다가 한국 사이트를 접속하면 화면이 깨지는 일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제, 일상생활에서도 외국에서와 같은 당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바로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새로운 기기 사용이 빈번해지면서 부터다. 사파리나 망고 같은 브라우저를 사용하면서 인터넷으로 특정 사이트를 접속할 수 없는 일을 누구나 겪고 있다. 여행사, 호텔, 면세점 사이트들도 예외가 아니다.

‘실시간 검색, 실시간 예약’을 열심히 홍보하는 여행사들이 정작 빠른 예약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IE’에만 길들여진 인터넷 환경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여행사에게도 고객에게도 ‘스마트’한 기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 인터넷 검색의 약 20% 정도가 데스크톱이 아닌 모바일로 이뤄지고 있기에 더 시급한 문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이 IE에 종속돼 있다 보니 여행사 사이트도 국제적인 인터넷 환경과 동떨어져있다. 전 세계 시장이 IE가 아닌 다양한 브라우저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 대비가 부족하다. IE가 아닌 구글크롬, 파이어폭스와 같은 브라우저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여행사 사이트를 찾기 힘들다.


■구글크롬에서는 클릭조차 안돼

<여행신문>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구글크롬’에서 ‘클릭’조차 먹히지 않는 국내 대형 항공사·여행사 사이트가 허다하다. 인터넷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온라인 여행사도 마찬가지. IE 밖에서는 먹통이나 다름없다. 브라우저간의 호환, 즉 ‘크로스브라우징’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당장은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최근 ‘브라우저 시장’ 변화 추이를 보면 단기간 내 ‘IE에만 통하는 여행사 사이트’ 문제는 ‘문제’가 될게 뻔하다. 10월 현재,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은 IE가 40.2% 파이어폭스가 26.9%, 구글크롬이 25%로, 3대 인터넷 브라우저가 엎치락뒤치락 경쟁하고 있는 구조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IE가 독보적으로 우위지만 그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올해 1월만 해도 점유율이 3%로 미미했던 구글크롬은 10월에 7.7%까지 올랐다.

■공지 띄운 사이트, 단 한 곳 뿐

IE가 아닌 브라우저로 사이트 이용이 원활하지 않는 항공·여행사 사이트 중에서 방문자의 불편이 있을 수 있다는 안내문을 팝업창으로 띄운 곳은 대한항공 한 군데 였다.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 대한 여행업계 인식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크로스브라우징이 안될뿐더러 모바일에서도 사이트 구동이 불가능한 한 여행사는 “온라인 예약 비율이 높지 않아 주목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상황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호텔 예약업체는 “모바일 사이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신경썼는데 크로스브라우징은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의 다각화는 여행업계가 적응해야 할 웹 환경의 중대한 변화다.

■다가올 인터넷 대란에 대비하라

반면 인터넷 사이트가 어떤 브라우저에 관계없이 구동되도록 만들어 놓은 업체도 있다. 크로스브라우징이 가능하도록 자사 사이트 환경을 정비한 호텔자바. 호텔자바의 김형렬 이사는 “예전에는 모바일로 접속하거나 다른 브라우저로 접속하는 고객 수가 워낙 미미했기 때문에 여행업계가 웹 구축에 투자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 지적했다.

온라인여행사 트래포트는 구글크롬에 맞춰 사이트를 설계한 경우다. 트래포트 안경열 사장은 “IE의 독점은 우리나라의 특이사항이라 세계적 표준을 따르고자 했다”라며 “상품 예약이 100%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여행사인 만큼 웹 조건에 맞는 사용자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투자 필요

비용의 문제도 인터넷 생태계 변화에 여행업계가 대응하기 힘든 애로점이다. 시시때때로 사이트 개발을 외주에 맡겨야 하는 여행사에는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중급 개발자를 고용하려면 월당 600만원 선이 든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형 여행사의 사이트 경우에는 크로스브라우징을 포함한 전체 사이트개편비용이 2억원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비용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한국 브라우저 시장에 IE 점유율은 떨어지고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의 증가 추이로 볼 때, 시장 변화에 앞서 여행사들의 준비가 필요한 대목임은 분명하다. 호텔자바 김형렬 이사는“보편적인 인터넷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일은 여행업계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며 “지금은 표준에 맞추려는 과도기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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