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부친 편지 1. 페루 마추픽추
계량화되지 않는 감동을 만나다


마추픽추를 발견한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람 빙엄의 저서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11년 만에 남미를 다시 다녀왔다. 페루와 칠레는 두 번째 방문이었고 브라질, 아르헨티나와는 초면이었다. 다시 만난 풍경은 저릿한 추억을 불러냈다. 그리고 새롭게 안면을 튼 풍경은 오랫동안 지속될 감동을 선사했다. 주어진 시간은 늘 그렇듯이 빠듯했는데, 촉박한 일정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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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글·사진=Travie Writer 노중훈

■공중 도시로 가는 길

페루의 우루밤바(Urubamba)에서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났다. 잉카제국의 도읍지였던 쿠스코(Cuzco)에서 옮겨온 시간이 원체 늦었던 데다 그 다음날 올라타야 하는 기차의 출발 예정 시각이 원체 일렀던 탓이다. 차량은 미명에 호텔을 출발했다. 곧게 뻗은 도로 주변으로 낮은 담장의 집들이 이어졌다. 원주민 몇몇이 드문드문 지나갔다. 아침을 서둘러 맞는 사람들이었다. 길을 도와 달린지 30분 만에 올란타이탐보(Ollantaytambo) 기차역에 닿았다. 파란 바탕에 노란 글씨가 쓰인 기차 페루 레일과 흰 바탕에 붉은 글씨가 쓰인 기차 잉카 레일이 철로 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잉카 레일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빈 좌석을 찾기 어려웠다. 벽면에 붙은 원주민의 대형 얼굴 사진이 생동했다. 새벽 6시 40분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창밖으로 강과 밭과 산이 갈마들었다. 산발치에 낮게 엎드린 집들이 새끼손톱만 했다. 산과 구름이 때때로 교접했다. 구름의 일부는 산의 등줄기까지 흘러내렸다. 땅 위를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구름이었고, 산의 입장에서 따지면 그것은 안개였다. 안개와 구름은 관점의 차이에 불과했다. 높이 솟은 산봉우리와 험준한 산마루가 기차에 바싹 다가섰다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지금 공중 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로 가는 중이다.

아침 8시 기차는 마추픽추의 아랫마을 아구아 칼리엔테(Agua Caliente)에 멈춰 섰다. ‘뜨거운 물’이라는 뜻의 마을은 역을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했다. 상점과 식당들도 선로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그 상점과 식당들은 외지인들, 정확히 말하자면 마추픽추를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생계를 전적으로 의탁했다. 관광객들에게 마추픽추가 감탄과 경외의 대상이라면 마을의 주민들에게 마추픽추는 생계의 방편이었다. ‘신(新) 7대 불가사의’를 두고 목적과 수단이 교차했다. 해발 약 2400m의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동 수단에 한 번 더 의지해야 했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갈지자형의 길을 주저 없이 나아갔다. 버스는 족히 열 번 이상 좌우로 크게 꺾였다. 그리고 경사진 길의 끝에서 버스는 사람들을 부려 놓았다. 서울, LA, 리마(Lima), 쿠스코, 우루밤바를 거쳐 겨우겨우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남미의 강렬한 햇살과 그 햇살보다 더 강렬한 마추픽추의 풍경이 눈을 날카롭게 찔러왔다.

■모호함에서 발현되는 진정한 매력

남미가 여전히 미지의 대륙일지는 몰라도 마추픽추는 더 이상 베일에 가려져 있지 않다. 페루, 더 나아가 남미의 모든 관광자원 가운데 인지도와 지명도 면에서 최전선에 위치한다. 페루, 더 나아가 남미대륙이 여행자들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은 상당 부분 마추픽추에 빚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탐탁하지 않지만 어쨌든 지구촌의 1억 명이 표를 던져 마추픽추를 새로운 일곱 개의 불가사의 리스트에 올려놓기도 했다.
물론 마추픽추의 탄생의 비밀과 흥망성쇠를 두고 여전히 다양한 학설과 주장이 난무한다. 잉카문명의 총체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뜨거운 논쟁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존재였다면 굳이 마추픽추에 불가사의라는 이름표를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마추픽추에서 가장 분명한 것은 모호함인데, 그 모호함은 치열한 상상력을 불러온다. 때로는 낱낱이 파헤쳐지지 않아 그 속내를 온전히 알 수 없을 때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다.

2000년 5월 마추픽추를 처음 대면했을 때도 가이드의 세세한 설명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추픽추의 역사적 배경과 조성 원리와 유적에 관한 안내는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마추픽추의 감동은 활자와 사진과 영상을 통해 퍼트려진 세세한 정보가 길어다 주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이거나 혹은 객관에 도달하고자 하는 지식은 마추픽추의 매력을 조금도 포획할 수가 없다. 말과 글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추픽추와 실제로, 최초로 눈이 마주쳤을 때 즉각적이자 즉물적으로 전해지는 전율일 뿐이다.

그것은 가슴이 쿵 떨어지는 정서적인 충격이자 감각을 일거에 마비시키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다. 오로지 하늘로만 열려진, 높은 산의 비탈면을 따라 꼼꼼하게 축조된 옛 도시의 위용과 위엄은 빛의 속도로 살갗을 파고든다. 그러니 마추픽추에서는 개별적인 유적에 깃든 사연을 탐닉하거나 미리 챙겨온 지식을 대입시키려는 노력보다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놓은 채 이 완강한 신비와 온몸으로 교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쉽지는 않겠지만 잠시만이라도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대화를 나눠보는 것 또한 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travel info

가는 방법은 미국의 LA를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LA에서 남미를 대표하는 항공사인 란항공을 이용하면 페루의 리마까지 8시간 정도 소요된다. 리마에서 마추픽추 여행의 베이스캠프인 쿠스코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1시간. 우루밤바에서 마추픽추까지 가는 기차에는 페루?잉카?마추픽추 레일 세 가지가 있다. 페루 레일의 역사가 제일 오래 됐지만 최근 들어 기차를 리노베이션했다. 가장 최근에 영업을 시작한 마추픽추 레일은 내부가 협소하다는 단점이 있다. 보통 페루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마추픽추를 전후로 리마와 쿠스코를 간단하게 둘러보게 된다. 리마의 중심은 대성당과 대통령궁 등이 자리한 아르마스 광장이다. 라크코마르는 바다에 인접한 쇼핑센터로, 다양한 종류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해질녘의 풍경이 빼어나다. 쿠스코에서는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Qorikancha)가 대표적인 볼거리다. 삭사와만(Sacsayhuaman)은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는 견고한 요새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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