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있지만, 사실 진짜 빚을 갚는 건 말이 아니라 ‘신뢰’인 것 같다.
얼마 전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탈주극을 벌이려다 검찰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해외로 도피하기 전 그가 빼돌린 회사 돈 200억 중에는 직원들의 퇴직금 80억도 포함돼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단지 ‘털 난 양심’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온갖 거짓말을 일삼아온 희대의 사기꾼이었다는 것이다. 군 제대 후 서울대 법대 모임에 나가 학우는 물론 교수님까지 속이더니 들통난 후에도 태연하게 연락을 지속했다고 한다. 비법은 하나. 남을 현혹시키는 언변과 타고난 사교성 덕분이었다.

여행업계에서도 ‘도주’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적지 않게 본다. 거액의 계약금을 지불했으나 회사가 도산해 대표가 잠적하기도 하고, 현지에 미수금을 깔아놓은 채 현금을 챙겨 달아나기도 한다. 경영부진으로 인한 부도는 둘째 치고 ‘한 탕’을 노린 의도적인 사기행위도 종종 있다. 도산, 횡령, 도주로 이어지는 3단계의 앙상블은 해결책도 보상금도 없이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겨 버리기 일쑤다.

최근 여행업계에는 한때 도산과 도주로 관련업체에 피해를 입히고 홀연히 업계를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지난 3월 현지에 미수금을 깔고 도주했던 모 랜드사 사장이 업계에 출몰했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도피 당시 도피처에서도 사업을 벌이다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다시금 여기저기 쑤시고 있는 모양이다.

‘도주’라는 선택을 한 랜드사 중에는 다소 다른 사례도 있다. 인도차이나 전문 랜드로 활약하던 모 랜드사 사장은 오랜 도피와 수감생활을 끝내고 새로이 인도차이나 랜드사를 창립했다. 건실한 운영과 함께 업계와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포부를 갖고서 말이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런 만큼 피해를 입은 업체에게 차근차근 빚을 갚아나가겠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게 것은 뛰어난 언변이나 사교성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언정 관계 회복을 위한 진정성과 신뢰를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 천 냥 빚을 갚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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