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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규슈 올래길의 이브스키 코스를 걷는 사람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규슈에 올레 바람이 불고 있다. 치유와 느림의 걷기로 한국인의 마음을 다독여준 제주 올레가 일본에 수출 된 것이다. 제주와 참 많이 닮은 규슈 곳곳에서 올레의 상징인 간세(조랑말)와 화살표, 리본을 따라 걸었다. 올레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문화와 풍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순수하고 목가적이며 때로는 아찔하고 드라마틱한 풍경들의 향연. 올레꾼들에게만 허락된 규슈의 속살을 조심스레 풀어본다.

일본 규슈 글·사진=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규슈관광추진기구 (http://www.welcomekyushu.or.kr)


■바다를 품고 걷는 낭만 하이킹
가고시마현 이브스키 코스

이보다 더 낭만적인 여행의 시작점이 또 있을까. 무인역이라는 단어에서 묻어 나는 약간의 외로움과 설렘이 가득한 이브스키 코스의 시작점, 니시오야마역이다. 규슈 최남단이라는 말답게 그 풍경에는 야자수와 초여름의 신록,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노란 우체통이 더해져 여행에 대한 기대를 한껏 크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부치고 싶은 아기자기한 그림엽서에 이부스키 스탬프 하나를 꾹 찍고 푸르른 밭 사이 뻗은 길에 발을 내디뎠다. 엽서보다 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이부스키 코스의 또 하나의 매력은 바다를 끼고 걷는다는 데에 있다. 군데군데 매끈하게 포장된 길이 되려 올레의 매력을 감소시킨다는 애정 어린 투정도 어느새 올레 길 아래 파랗게 펼쳐진 바다 풍경에 묻혀버렸다. 청량한 파란색 바다 빛깔이 제주의 바다와 닮아있었다. 바다 옆 조금씩 농도를 달리한 연두색, 초록색의 네모난 밭들은 갓 물들인 빛깔 고운 천 같다. 바다거북을 따라 용궁에 다녀왔더니 10년이 지나버렸다는 우라시마 타로의 전설을 들으며 용궁신사와 하얀색 등대를 지나 검은 모래 해변을 걸었다. 이마를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과 파도 소리를 벗삼아 걷다 보면 머릿속 상념들이 사라진다. 혼자임에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속 올레 길 위 마음 속 휴식은 숲길로 이어진다.

바다를 이웃하고 걷는 길이 마음 속까지 트이게 해줬다면 숲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운동화 아래 느껴지는 부드러운 흙과 은은한 쑥 냄새, 그리고 마른 향나무 잎과 잔가지의 바스락 소리까지 온 몸의 감각이 오랜만에 만난 자연에 활짝 열린다. 1941년에 시작되었다는 허브원은 그 자연의 향기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곳. 포푸리나 허브제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허브 티 한잔의 휴식도 즐길 수 있다.

마을로 접어드니 모내기 철이라 물이 가득 찬 논밭에는 규슈의 후지산이라는 불리는 가이몬다케가 거꾸로 담겨 있다. 시골길에 정겹게 옹기종기 서있는 규슈의 돌하르방, 다노간사는 그 천진한 표정이 보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자아낸다. 그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든다는 가이몬역에서 코스는 끝났다. 봄이면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종착지다. 올레 길 내내 저 멀리서 올레꾼들을 지그시 바라봐주던 가이몬다케 산에 인사를 고하고 떠난다.

▶Travel info 이브스키 코스
Course JR니시오야마역-나가사키바나 등대-나가사키바나 곶-나가사키바나 해안-소나무숲-레저센터 카이몬-카와지리 해안-카와지리 어항-카이몬 산록 허브원-히가시카이몬역-카가미이케-히라키키 신사-JR카이몬역
(거리 20.4㎞ / 소요시간 5~6시간 / 난이도 하)
Point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난이도. 아기자기한 풍경과 바다가 매력적이다. 제주의 바다를 떠올리며 걸어보자.
Must 모래찜질은 가고시마현에서 해볼 수 있는 이색체험. 지열로 데워진 모래가 짧지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따스한 정과 목가적인 농촌 풍경
오이타현 오쿠분고 코스

오이타현 안에서도 오지에 가까운 이 코스의 어떤 점이 제주 올레에 비견되는지 궁금증을 안고 시작했다. 이부스키 코스처럼 오쿠분고 코스도 작은 무인역 아사지역에서 시작한다. 소박한 역사에 멈춰서는 두 칸짜리 노란색 기차는 일본의 그 많은 철도 마니아들이 이해갈 정도로 사랑스러웠고, 올레꾼들을 환영하는 조금은 어설픈 한국어 환영인사와 마을 초입에 세워놓은 인형들에서 주민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걷기도 전에 이 코스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코스의 첫 번째 볼거리인 유자쿠 공원은 에도시대의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정원만 남아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500그루의 단풍나무가 화려하다는데 보라색 창포꽃이 피어있는 초여름의 연못의 모습도 아름답다. 규슈 최대의 마애석불이 있는 후코지 절까지는 일본의 전형적인 농촌과 산촌 마을의 모습이 펼쳐진다. 계단식 논에서 작은 청개구리가 튀어 오르고,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특별할 것 없는 시골의 일상일진데 그 소박한 감동에 가슴이 벅찼다. 대기가 물기를 품어 더욱 짙은 초록을 빛내는 나뭇잎이며 길옆으로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들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라 이름이 궁금해졌다. 일행이 제주 올레를 걸으며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얘기를 시작했다.

항상 그곳에 있었던 것들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고 더 알고 싶어졌다. 마치 막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여행의 과정이었지 여행의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길의 매력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하얀색 꽃잎이 바람에 날려 손을 뻗으니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점심시간에 빌딩숲 사이 청계천에서 쫓기듯 얻던 감질나던 안식이 이곳에 있었다.

숲 속에 위치한 후코지 절에서는 유난히 음악을 사랑하는 주지스님 덕분에 법당의 피아노 연주까지 들을 수 있다. 산 속에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이곳에 수국이 가득 피는 계절을 그려본다. 절에서 나와 길을 재촉하는 우리를 주민들이 잡았다. 마침 점심 때니 요기나 하라며 즉석에서 야키소바를 만들어 한 접시 가득 건네는데 침이 넘어간다.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된다는 우리네 인심과 다를 바 없다. 이 코스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이런 정이 제주 올레를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름도 몰랐던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의 환대로 힘을 얻어 소가와 주상절리까지 한달음에 내달렸다. 무사들이 살던 마을을 지나 닿은 소가와 주상절리는 육각형의 기둥모양의 암석들로 이루어진 곳으로 시원한 강물을 바라보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다시 오르막길에 올라 한참을 걷다보니 오카성터가 나왔다. 산 위에 지어진 난공불락의 성이었지만 현재는 이끼가 낀 돌담만이 그 시절의 위용을 나타낼 뿐이다. 저 멀리 소보산, 아소산까지 들어오는 풍경도 일품이거니와 이 오카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황성의 달’이라는 곡이 산 아래 도로에서 어렴풋이 들려와 운치를 더한다. 성에서 내려오면 작은 교토로 불리는 성하 마을이 나타난다. 코스의 마지막은 일본식 정원을 지닌 오카쿠야 식당에서 말차와 화과자를 음미하고,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낭만적인 70계단과 아이젠도 절의 법당을 거닐며 조용히 마무리했다.

▶Travel info 오이타현 오쿠분고 코스
Course JR아사지역-유자쿠공원-후코지-묘센지 절 밑 갈림길-소가와 주상절리-오카산성 후문-혼마루(타키 렌타로 동상)-치카도구치-오카산성주차장-타키 렌타로 기념관-16나한상-JR분고 다케타역
(거리 11.8㎞ / 소요시간 4~5시간 / 난이도 중)
Point 일본의 평화로운 농촌, 산촌 마을의 모습을 걷는 코스로 주민들의 친절과 자연에 흠뻑 빠져보자. 주민들과 만나면 ‘곤니찌와’하며 인사를 건네보자. 더 밝은 미소로 화답을 받게 될 것이다.
Must 후코지 절 법당 피아노는 올레꾼들에게도 열려있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면 한 곡 준비해 가 보자. 산 속에서의 피아노 독주, 멋지지 않겠는가. 단 한 손으로의 장난스러운 연주는 금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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