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시장이 몇 년새 급격히 확대됐다. 한·중·일 크루즈 상품을 이용한 탑승객이 2008년 2,000여명에 불과했던 데서, 단일 여행사가 전세선을 운영하고, 한국 국적의 크루즈 선사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허나 아직까지 대형 크루즈가 접안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항구도 없고, 고객은 물론 여행사마저 크루즈의 기본 에티켓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6월 롯데관광은 전세선을 기획해 성공적인 모객을 하고도, 운영상 미흡한 부분을 보였다. 그러나 롯데관광이 무리수를 뒀다고 말할 문제는 아니다. 그 만큼 크루즈 대중화를 위해 파격적인 시도를 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14만톤급의 초대형 크루즈가 속속 상륙하고 있는 지금, 크루즈의 저변 확대에 대해 다시 고민할 시점이다. <편집자주>

-롯데관광 전세선, 모객은 성공·준비는 미흡
-에티켓 익숙하지 않은 고객·여행사도 문제
-부실한 국내 인프라…넘어설 수 없는 한장벽

“32세 여성 K 씨는 어머니와 함께 설레는 기분으로 첫 크루즈 여행에 나섰다.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항에서 탑승을 하고, 여수 엑스포까지 한번에 볼 수 있는 롯데관광의 전세선 상품을 선택했다. 출발일인 6월4일 인천항으로 간 모녀는 시작부터 당황스러웠다. 터미널에서 탑승을 위해 한참을 기다렸고, 뙤약볕을 맞으며 1,000명이 넘는 여행객 사이에 섞여 화물항인 북항에서 어렵사리 탑승을 했다. 출발시간이 지연됐으니 다음날 여수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진 것은 당연했다. 인기 전시관 3~4개를 둘러보려던 애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여수에 다시 와야겠다고 K 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배에 다시 탑승해 보니, 60~70대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선내에서 여행사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에도 1회차인 6시에 제대로 식사를 못했다며 언성을 높이는 어른들이 있었다. 몇몇 승객들은 마지막날 도착한 부산항에서 급기야 여행비용을 환불해달라며 집단으로 하선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물론 K 씨도 여행 중 불편한 부분이 있었으나 오랫동안 동경해온 크루즈 여행을 경험한 것에 만족했다”



■세번째 도전 … 버거웠던 준비 과정

지난 2년간 성공적으로 전세선을 운영한 롯데관광은 올해 7만톤급의 빅토리아호로 전세선 재도전에 나섰다. 인천에서 탑승해 여수를 거쳐 후쿠오카, 도야마 등을 관광하는 일정으로 약 2,100명, 앞뒤 페리편을 포함해 총 4,800명 가량을 모객했다. 모객 인원으로 봤을 때, 롯데관광은 매년 성장세를 기록하며, 국내에서도 크루즈의 대표 여행사로 확실히 자리잡았다고 할만 했다.

그러나 올해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롯데관광은 지난해에 이어 인천항을 모항으로 하는 전세선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인천항에는 빅토리아호가 접안할 수 없는 시설이 없어 승선과정부터가 복잡했다. 여기에 여수에서는 사전예약제가 사라지면서 엑스포를 관람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인솔자가 50여명 탑승했지만 2,000여명의 승객을 모두 도와주기에는 부족했고, 식음료 서비스도 일부 원활하지 못했다. 롯데관광의 시도 자체는 ‘공항 없는 공터에 여객기를 들여온 것’으로 비유될 만큼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보다 세밀한 부분에서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 물론 코스타크루즈 측과 손발이 맞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롯데관광 백현 부사장은 “준비가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하며 앞으로는 철저한 사전 교육과 국내 인프라를 감안한 프로그램으로 완벽한 행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행사
환상 심기보다 철저한 안내부터

모든 문제에 있어서 ‘무조건 여행사 책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위험하지만 고객에게 사전 교육을 철저히 시키지 못한 롯데관광과 대리점 여행사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롯데관광에 따르면 이번 전세선은 60% 가량이 자체 모객, 30%는 롯데관광의 대리점, 10%는 기타 여행사에서 모객됐다. 소규모 여행사의 경우, 여행사 직원 혹은 사장이 고객과 함께 탑승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크루즈 여행을 처음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크루즈 여행의 기본 에티켓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승객뿐 아니라 이들과 동승한 여행사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더욱 씁쓸한 결과로 남는다. 또한 문제가 된 승객 중 상당수는 고연령층으로, 이들은 크루즈라면 그저 ‘호화로운 대접’을 받을 줄 착각한 것도 문제였다. 이에 대해 A여행사 관계자는 “판매 여행사에서 크루즈 상품에 대한 정확한 안내를 하는 게 우선인데 ‘호화로운 여행’이라는 환상만 심어준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고객
선내는 이탈리아법…대부분 몰라

사실 지금까지 패키지 상품에 익숙한 크루즈 초보 여행자들이 여행의 불편을 호소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 롯데관광 전세선은 전 탑승객이 한국인이었던 만큼 집단이 경험한 문화적 이질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크루즈 선내에서는 해당 크루즈 선사의 국적법을 따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승객, 식사시간이 엄격히 구분돼 있음에도 통제를 따르지 않는 승객, 선실 등급에 따라 서비스의 차등화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사실에 불만을 제기한 승객 등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크루즈의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로얄캐리비안크루즈 이재명 한국대표는 “기존에 로얄캐리비안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어떠한 여행사가 행사를 맡든 한국처럼 크루즈가 저변화되지 않은 시장에서 이같은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수치상으로 여행객이 늘어난 것만 보고 크루즈 여행이 보편화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정부
열악한 항구 인프라가 궁극적 문제

결과적으로 이번 전세선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꾸준히 시장을 개척하고, 저변 확대에 앞장선 롯데관광의 공만큼은 높이 사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중국, 일본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롯데관광이 전세선을 시도한 것 자체부터, 인바운드 여행객 유치뿐 아니라 인천항, 여수항 등 크루즈 인프라의 개발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롯데관광 백현 부사장은 “인천항에서 승선을 위해 법무부, 인천항만공사, 국정원, 세관 등 수많은 기관의 협조를 이끌어냈다”며 “롯데관광에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겠지만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 없이는 수준 높은 크루즈 여행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 차원의 과감한 투자 없이는 인·아웃바운드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관광시장을 창출할 기회는 유보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국내의 어떤 항구에도 크루즈 탑승을 위한 갱웨이(Gangway)는 물론, 브릿지조차 들어서지 않은 상태다. 2014년 말 부산항에 10만톤급 크루즈가 접안할 수 있는 부두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인천항의 경우, 매년 3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들어오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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