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2가지 저비용항공사(LCC)가 존재한다. 한국의 LCC와 그렇지 않은 것. 한국의 LCC는 사회·경제적으로 LCC라고 불리지만 외국의 사례와는 다른 특징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에 엄밀하게 말해서 한국의 LCC는 진정한 LCC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한국의 LCC’라는 말도 나왔다. LCC라는 개념에는 유럽의 라이언에어(Ryanair), 아시아의 에어아시아(Airasia)처럼 극단적인 LCC가 있는가 하면 일본의 스타플라이어처럼 프리미엄 LCC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LCC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편집자 주>
박우철 기자 park@traveltimes.co.kr

-상품값 쌌지만 소비자는 외면해
-서비스 눈높이 못 맞춘 게 주효
-여행사와의 밀월, 오래 지속될 듯

■8년 만에 월마트가 철수한 이유

2006년 6월, 세계적인 대형할인점인 월마트가 한국 진출 8년만에 한국에서 철수했다. 당시 업계와 언론은 유통업계의 ‘골리앗’인 월마트가 한국형 대형할인점인 ‘다윗’에 사실상 백기 투항한 것이라며 크게 놀랐다. 일본, 중국, 브라질 등 10여국에 4,400여개 점포, 직원수 190만명, 매출액 3,450억달러의 골리앗을 한국의 성장하고 있는 작은 할인점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미국 현지의 대형할인점 특성을 고스란히 한국에 적용하려고 했지만 소비자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월마트는 한국인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에브리데이 로프라이스’라는 슬로건만을 내세워 저가의 상품을 공급했지만 창고형 매장, 불편한 접근성 등으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반면 당시 월마트를 인수한 이마트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매대, 편리한 접근성, 친절한 직원 등의 강점으로 한국형 할인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서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싼 가격 못지않게 수준 높은 서비스도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LCC’ 이마트를 따르다

월마트의 사례는 한국의 LCC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례이다. 티웨이항공 함철호 대표는 “월마트가 한국 시장에서 성장하지 못한 이유에서 한국의 LCC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며 “한국 LCC들이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1989년 1월1일부터 해외여행자유화가 시행돼 항공여행이 아직까지 성숙하지 않았고, ‘비용 대비 높은 서비스’를 당연시 여기는 한국인의 정서가 항공사 선택에도 중요한 요소가 된 것도 한몫한다.
이에 한국 LCC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LCC는 기본적으로 항공기 운영에 필요한 지상 조업, 연료비, 공항 직원 등을 최소화 해 비용을 낮춰 소비자에게 저렴한 항공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마트의 경우처럼 서비스를 올려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된 것이다. 한국의 LCC의 후발주자인 티웨이항공은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한국 LCC들 중에서 유일하게 기내식을 제공하고, 승무원들이 풍선아트, 사진서비스 등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실시한다. 국내선도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며, 기내잡지 등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도 강화했다. 다른 한국의 LCC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LCC답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부 국제선의 경우 무료 기내식을 제공하고, 주류를 제외한 음료 서비스를 실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됐다. 이처럼 연료비, 인건비 등 필수적인 비용 이외에 서비스 개선을 위해 부가비용이 들어 LCC는 높은 수익을 남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저가항공사 임원은 “기내식을 제공할 때 단순히 ‘기내식’ 1개에 대한 비용만 드는 것이 아니다”며 “운반, 적재 등 보이지 않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하드웨어 부족에 골머리

한국의 LCC가 갖는 태생적인 한계도 있다. 외국의 LCC들은 공항이용료가 싼 지방의 공항을 이용하지만 한국은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등 대형공항이외에는 허브공항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이 사실상 전무하다. 게다가 LCC가 공항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대형항공사의 것과 차이가 없다. 한국에 운항하고 있는 에어아시아X의 경우 쿠알라룸푸르 신공항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교통편이 불편하고, 편의시설이 다소 부족한 LCC전용 공항에 취항한다. 에어아시아X의 또 다른 노선인 쿠알라품푸르-브리즈번 노선 역시 저렴한 골드코스트 공항을 이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청주공항이 대안공항으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부실한 면세점, 서울로부터의 거리, 취약한 지방수요, 공항의 인센티브 부재 등으로 힘든 상황이다. 또 한국 경제, 사회 시설들이 서울로 집중되면서 지방공항 자체로의 소비자 유도가 만만치 않다. 한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수요를 유치하는 것 자체에 비용이 든다”며 “해외 LCC들의 사례를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여행사-LCC 서로를 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의 LCC는 우리 항공시장에서 조금씩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국내선인 김포-제주 노선에서 LCC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50%에 달하고 있고, 국제선의 경우 방콕, 오사카, 세부 등 휴양·레저노선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처럼 LCC들이 레저노선에서 선방하고 있는 이유는 낮은 요금으로 소비자들의 직접 구매를 유도하고, 항공자유화 등 취항기회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여행사와의 협업이 꼽힌다.

여행사들은 한국의 LCC에 전세기를 의뢰하거나 사후 책임제 등을 도입해 저렴한 요금을 받고, 다시 현지 행사와 결합해 저렴한 여행상품을 출시한다. 한국의 LCC 중에 이스타항공은 여행사와 협업에 가장 적극적인 항공사로 꼽힌다. 호텔앤에어 관계자는 “한국의 LCC 중에 PSA를 운영하고 있는 이스타항공은 좌석 공급의 유통성, 요금의 탄력성 등에 있어서 다른 항공사보다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세기나 하드블록 형태의 영업은 다수의 여행사들에게 좌석을 공급하는 정규항공사의 형태를 벗어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단계적으로 적절히 조합한다면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도 있다.

■‘GDS 예약·발권’의 의미

최근 한국의 LCC들은 토파스나 애바카스 등의 CRS·GDS를 통한 예약·발권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이 토파스를 통한 예약·발권을 오픈했고, 에어부산은 애바카스와 계약을 맺고 BSP대리점에서 예약·발권이 가능하도록 작업하고 있다. 에어부산의 가입이 완료되면 한국의 모든 LCC들은 GDS를 통한 간접판매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한국의 LCC들이 CRS·GDS 가입에 나서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제주항공은 토파스 예약·발권을 오픈한 뒤로 판매실적이 크게 상승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2010년 토파스 예약·발권을 오픈하면서 정체됐던 판매가 크게 올라섰다”며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소득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GDS 오픈은 ‘간접판매’의 대표적인 수단인 만큼 직접 판매보다 항공사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큰 게 사실이다. 항공사가 GDS로 티켓 한 장을 팔 때 드는 비용은 ▲세그먼트피(Segment Fee) ▲BSP 은행 수수료 등 직접적인 비용과 ▲여행사 대상 마케팅·프로모션 비용 ▲시스템 운영비용 등 간접비용이 추가로 든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LCC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지출인 셈이다.

때문에 여행사와 LCC간의 밀월이 계속 이어질지에 대해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에초에 직판에 적합한 예약시스템을 도입했고, 대형항공사들 역시 온라인 직판에 상당한 공을 들인 만큼 소비자들의 항공권 예약 문화가 직판으로 옮겨지만 누구보다 신속하게 GDS와의 결별에 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LCC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LCC들은 PSA를 두고, GDS에 가입하면서 적지 않은 유통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그러나 항공사 스스로 직판을 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토양이 갖춰진다면 언제든지 GDS나 PSA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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