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여행사 미주팀 팀장이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몇 주 전부터 그는 업계 관계자들과의 모든 연락을 두절한 상태다. 그의 행방불명 사건은 한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랜 여행업계의 관행이 곪아 터진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그가 10여 년간 몸 담아왔던 업계를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업계에 잔뼈가 굵은 사람에게는 뻔하디 뻔한 스토리일 수도 있겠다. 실적에 대한 부담감, 품질보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 성향 등의 주변 환경은 업계 관계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적정가 이하로라도 우선 상품을 판매하고 사후에 손해 분을 메우려는 계산이다. 누구나 위험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팀장은 매번 감수하는 쪽을 택했던 듯하다. 1~2년 동안 반복된 관행으로 25만 달러 이상 누적된 빚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떠났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쯤이면 ‘행불 사건’은 업계에 가십으로 흘러 다닐 법 한데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한 업체뿐만 아니라 미주 여행업계 상당수 관계자들도 언급하기를 조심스러워 한다. 타 부서가 성과급 잔치를 벌일 때 고개를 못 드는 미주 팀장들, 하향 곡선을 그리는 송출객 수, 덩달아 줄어드는 수익성에 한숨 짖는 랜드사 소장들은 내 아픈 곳을 쿡쿡 찌르는 것과 같다 말한다. 선뜻 입을 떼기 어려울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 공감한 탓인지 대부분 말을 삼갔다. 한 랜드사 소장의 말처럼 미주가 집단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침묵에 빠진듯 보였다. 힘들다는 이야기밖에 나오는 것이 없으니 서로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는 게 예의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보는 건 이제 그들이 침묵을 스스로 허물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상품 개발이든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든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미주에 적을 두고 있는 관계자들이 모임을 결성하며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물론 당장의 위기가 해소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을 끝낸 업계가 우울함을 치료하는 초기 대처법을 찾았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었다. 모든 치료는 증세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냉철하게 현재를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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