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여행업계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직함을 둘러싼 ‘전근대적인 인식’ 말이다. 위계 질서와 선후배 문화가 유별난 한국문화에서는 직함이 너무 낮거나 높으면 영업하는데 지장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상이 여행업계에서 도드라지는 이유는 그 특유의 수직적 하도급 유통방식 때문일 것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회사를 창업하거나 경영자의 위치에 오른 이들은 어느 ‘수위’의 직함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호기롭게 사장 직함을 썼다가는 어른들에게 건방지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인지 많은 대표들이 ‘사장’, ‘대표이사’와 같은 직함을 사용하길 꺼린다. 이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FIT 여행사들이다. 회사를 설립하고 수년이 지나도 이사, 부장, 실장 등의 직함을 고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반드시 대표이사, 사장, CEO 등의 직함을 써야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너무 낮은 직함을 달고서는 영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인지 ‘직함 인플레이션’이 심한 회사들도 있다. 직위에 맞는 처우나 권한을 주지 않은 채 차장, 부장, 이사 직함을 주는 회사들도 적지 않다. 여행업계도 직위를 신분처럼 여기는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랜드사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장’이라는 직함은 위의 두 경우와는 조금 다른 연유로 우리 여행업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해외든, 국내든 직영사무소를 운영하는 회사가 아님에도 ‘소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랜드사 대표’는 곧 ‘소장’이라는 관성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직함을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업계 구조상 ‘을’의 위치에 있기에 대표보다는 조금 낮아보이는 직함을 택했다는 이들도 있다.

반면 통용되는 직위 체계는 일본식을 따르는 것이라며,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기 위해 ‘매니저’, ‘디렉터’ 등의 직위를 쓰는 회사도 더러 있다. 주로 외국계 회사들이지만 최근 들어 국내 업체 중에도 이같은 직함을 쓰는 곳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직함 달기만 서양식을 따른다고 선진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신선한 시도’를 기업문화 전반에 적용하는 회사가 있다면 주목해볼 일이다.

물론 직함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함 달기에 스며 있는 여행업계의 후진성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팸투어를 가면 ‘여권까기’부터 하고 형님, 아우를 확인하기 급급한 여행인들이 갈수록 글로벌한 환경에서 경쟁해야 하는 여행업계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지 종종 의문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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