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를 경영하는 임원진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직장 풍속은 바로 ‘보신주의’다. 조직을 위해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만족하는 부하직원을 어떻게 하면 뜯어 고칠 수 있을지 경영진은 고심한다. 보신주의에 빠진 직장인들의 목표는 승진과 뛰어난 성과보다 가늘고 길게 가는 인생이다. 성장을 부르짓는 경영진과 쿵짝이 맞을 리가 없다. 보신과 혁신. 가치의 충돌을 겪는 조직은 대부분은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 호봉제를 연봉제로 전환하고 기본 급여는 낮추되 성과급 비중을 늘리며 능력과 실적을 직장인의 최고 미덕이라 주장한다.

일단 사측이 고안한 급여 정책은 재빠른 성과를 낳는 것 같다. 직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목표를 채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부서 간 인센티브 경쟁을 벌인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전 직원의 ‘성적표’를 공개하는 날이면 사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잘 나가는 부서로 옮겨 달라 아우성이다. 인센티브가 많다는 소식에 쟁쟁한 회사를 그만둔 경력직원까지 유입된다. 이쯤이면 성과제를 도입한 경영진들은 ‘그래, 이게 살아있는 회사지’하며 몰래 미소를 지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경쟁은 성장의 필요조건이라는 믿음을 재확인하면서 말이다. 현 시대에선 기업의 최종 목표가 이윤창출인 이상 이같은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수가 압도적인 것 같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이미 체화했거나 받아들이려는 준비단계에 돌입한 여행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현 상황에서 경쟁을 없애야 한다든지, 직장인의 삶이 비인간적이라든지 하는 말은 불필요한 것 같다. 다만 ‘성과 경쟁 체제’를 강화하려는 여행사 경영진이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부쩍 위축된 호주 패키지 시장을 취재하다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대양주 시장이 침체된 데는 경기, 항공, 환율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성과만을 우선시하는 여행사의 행태도 한 몫 했다는 거다. 당장 회사가 제시한 실적을 충족시켜야 하는 직원들은 잘나가는 상품을 파는 데만 바쁘다. 팔릴지 안 팔릴지도 모르는 신상품을 개발하고 있을 여유 따윈 없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에너지가 없는 대양주는 식상하고 정체된 시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열심히 상품을 판매한 그들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다. 다만 경영진이 생각하는 ‘성과’의 범주가 눈앞의 이익보다는 상품 기획력, 창의성까지 아울렀다면 어땠을까하는 가정을 해본다. 경영진이 급여 체계까지 변경하면서 얻고자 하는 혁신은 목전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과’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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