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이나 항공사 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가격 염탐’.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 업체들이 시장에 내 놓은 상품가를 매일매일 체크하는 것이야 말로 호텔과 항공 업계 종사자들의 중대한 업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시장 조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업무 프로세스는 전혀 그럴싸하지 않다. 여행관련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경쟁사의 상품을 하나하나 클릭하고 엑셀파일에 Ctrl+C, Ctrl+V를 반복하는 작업이다. 이 일이 얼마나 막중한지 경쟁사 가격을 자동으로 체크하는 호텔 관리자 프로그램이 개발됐을 정도다.

올해 달력을 세장 넘긴 4월 현재 ‘가격 염탐’은 7~8월에 멈춰서 있다. 전 여행업계가 붉은색(적자)으로 물들어 있던 회계장부를 검은색(흑자)으로 전환하기 위해 성수기 장사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쟁자들이 9월 이후에는 고정적인 정규요금만 출시한 상태인 까닭에 성수기 이후 장사까지 복잡하게 셈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과연 누가 먼저 성수기 요금을 ‘치느냐’에만 골몰할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4개월 이후 까지, 딱 이 기간만이 업계의 현재다. 누가 먼저 요금을 낸 것도 아닌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가격 전략을 노출할 필요가 없다는 의도다. 우선 시장이 움직이는 상황을 보고 나서 계산기를 두드리겠다는 거다.
반면 항공과 호텔 등 재료를 조합해서 상품을 설계해야 하는 여행사들은 팔짱을 끼고 관망하는 항공사와 호텔들 때문에 마음이 타들어간다. FIT 손님과 허니문들은 벌써 9월 이후, 내년 상품까지 예약하려고 안달인데 항공과 호텔에 특가를 문의해도 아직 가격 정책이 안 나왔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손님에게 재깍재깍 견적을 내주고 싶은 여행사들은 속이 탄다. 일찍 예약하면 저렴하다는 공식을 굳게 믿고 있는 얼리버드 여행자들에게 ‘아직 요금이 안 풀렸다’는 답을 해줄 수야 없지 않는가.

얼리버드 예약자가 라스트미닛 신봉자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번 두 번, 자신이 예약한 상품가가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면 여행시장에서의 스마트한 소비는 좀 다른 의미임을 직감한다. 대학원서 넣듯 막판까지 치열한 눈치작전을 펴는 이들로 지칠대로 지친 업계는 리드 타임이 중요하고 판매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정작 안정적으로 좌석과 방을 채우며 상품을 ‘확약’해 줄 고객을 맞을 준비는 부족해 보인다.
당장 내일 떠날 휴가를 상상하며 어디서든 쉽게 라스트미닛 상품을 아이쇼핑하는 것처럼 내년 여행 상품을 탐색할 놀이터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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