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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유황가스가 새어나오는 언덕 위로 족욕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만들어져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섬, 술라웨시. 그 북쪽에 있는 주도 마나도는 세계 10대 다이빙 포인트에 드는 아름다운 곳이다.
여러 종교가 화합하고, 미나하사 원주민들의 영혼이 살아있는 이 미지의 도시 여행.



인도네시아 마나도 글·사진=이동미(Travie writer)
취재협조=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 02-783-5675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www.garuda-indonesia.co.kr

■종교의 하모니를 이루는 도시

동쪽에서 서쪽까지 5,120km에 걸쳐 있고, 무인도까지 합하면 무려 1만7,500여개의 섬이 있는 나라, 인도네시아. 그 중앙부에 있는 술라웨시(Sulawesi) 섬은 인도네시아에서 네 번째, 세계에서는 11번째로 큰 섬이다. 섬은 크게 북술라웨시와 중앙, 남동부, 남술라웨시의 네개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북술라웨시의 주도인 마나도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

자카르타를 거쳐 비행기로 3시간을 더 가야하는 멀고 먼 곳이다('마나'의 현지 의미도 '멀다'라는 뜻이란다). 외국에는 세계적인 스쿠버다이빙 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마나도 자체가 섬은 아니다. 지도에서 보면 술라웨시 섬은 K자 모양과 비슷한 4개의 반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북쪽 반도 끝에 마나도 도시가 위치해 있다.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는 마나도에서 배를 타고 가면 나오는 다섯 개의 섬으로, 총 40여 곳의 다이빙 포인트가 있다.

마나도는 우리가 알고 있던 인도네시아와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는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도시이며, 사람들의 생김새도 말레이·인도네시아 계열보다는 캄보디아, 라오스 쪽과 더 비슷하다. 도시의 주인은 북술라웨시의 원주민인 '미나하사'인들. 듣는 말 하나하나가 낯설기만 한 마나도는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자연 경관과 숨은 여행지로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어느 지점에서는 숨이 턱 막히는 절경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에코투어리즘의 정수라 불리는 코스타리카의 열대 자연을 자꾸 떠오르게 했던 마나도. 관광시설은 부족하지만, 그래서 더 순수했던 마나도를 소개한다.



마나도는 남부에 있는 마카사르와 함께 술라웨시 섬에서 가장 큰 도시에 속한다. 16세기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면서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도시 주민의 50% 이상이 기독교를 믿고 있다. 이런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해도 도시를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이곳에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있는지 금세 알게 된다. 도착한 날은 밤이었는데, 여기저기 세워진 빨간 십자가들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거대하리만치 큰 교회의 울타리를 온통 빨간 십자가로 두른 곳도 있었다. 부활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장식이 더욱 화려했던 터였다. 마나도가 예수의 도시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시트라랜드 레지덴셜 에스테이트(Citraland residentioal estate)'의 언덕 위에 세워진 50m의 예수상이다. 이 예수상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다. 언덕 위에서 도시를 향해 날고 있는 듯 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런 자세로는 세계 최초의 예수상에 꼽힐 것이다. 2010년에 세워진 이후 마나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여겨지고 있다.

다른 도시보다 기독교인과 천주교인이 월등히 많긴 하지만, 마나도에는 여전히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 산다. 도시는 무엇보다 이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조화'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마나도 시티에서 55km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킷카시(Bukit Kasih)에 가면 이 사상 위에 세워진 다섯 종교의 '하모니'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의 언덕'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다섯 종교를 한 면씩 표현한 5각형의 기념탑과 다섯 종교를 숭배하는 공간이 한 장소에 모여 있다. 기독교 교회, 천주교 교회, 불교사원, 힌두사원, 이슬람사원이 2000개의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사랑의 언덕' 꼭대기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곳은 원래 미나하사족과 토아족(Toar), 루미무트(Lumimuut)족이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지역이다. 그래서 이곳에 내리면 직접 쇠를 깎아 만든 천주교 묵주 팔찌와 목걸이, 여러가지 액세서리를 파는 미나하사족들을 만날 수 있다.

마나도에서 부킷카시는 유일하게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처럼 보였다. 다른 동남아 여행지처럼 관광객들이 도착하면 우루루 몰려와 자신의 것을 팔려고 애를 쓰는데, 마나도에서는 이마저도 꽤 낯선 풍경이 된다. 어디에서도 이런 광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언덕'이라는 말 그대로의 사랑스러운 의미와는 달리, 처음 이곳에 내렸을 때 느끼는 분위기는 약간 세기말적(?)이다. 산 곳곳에서 유황가스가 새어 나오고, 유황 온천물이 새하얀 연기를 뿜으며 흐르는 화산 지역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유황에 닿아 다리와 계단, 건물 곳곳은 녹슨 것처럼 주황색으로 변해있고, 원주민들은 온천물에 삶은 계란과 옥수수를 판다. 날이 워낙 더운 지역이라 온천욕을 하는 곳은 없고, 건물마다 족욕을 하는 시설을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찾는 관광객이 별로 없어 족욕탕은 텅 비어 있다. 그래도 이곳에서 먹는 옥수수와 마나도의 전통 간식들은 무척 달달하니 맛있다.



부나켄 국립 해양공원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마나도투아 섬(왼쪽)의 모습

■부나켄 섬으로 떠나는 다이빙 투어

마나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스쿠버다이빙이다. 마나도 베이에서 서쪽으로 다섯 개의 큰 섬이 위치해 있는데, 이중 부나켄(Bunaken)과 마나도투아(manado Tua)가 다이빙 스폿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마나도 베이에서 부나켄까지는 스피드보트로 30분. 마나도시티에 숙소를 잡고 하루는 부나켄으로, 하루는 마나도투아로, 하루는 실라덴 등으로 스쿠버다이빙 투어를 갔다왔다 하는 일정이 일반적이다. 섬 안에는 이렇다 할 리조트가 거의 없고, 있어도 시설이 열악한 편이라 대부분의 다이버들은 마나도시티에 머문다.

다섯 개의 섬 중에는 부나켄 국립 해양공원이 가장 유명하다. 세계적인 다이빙 스폿으로 꼽히는 곳도 이 섬이다. 인도양-태평양 서부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의 70%가 이곳에 있으며, 아름다운 산호초 군락지가 펼쳐져 있어 생태학적으로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예쁜 물고기 니모가 있는 곳이라 더욱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부나켄 섬으로 가는 길에는 반듯한 삼각형의 마나도투아가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그 풍광을 감상하며 다이빙 포인트가 가장 많은 부나켄 섬 부근으로 간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없다면 스노클링에 만족해야 겠지만, 일정이 넉넉한 여행자라면 하루 정도의 다이빙 교육을 받은 후 오픈워터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 대신 하는 스노클링이 뭐 그리 대단하겠어 싶은 실망감이 처음엔 있었지만, 부나켄 바다 속의 모습은 기대 이상으로 멋있었다. 솔직히 지금껏 해본 스노클링 지역 중 최고였다. 바다 위의 세상보다 바다 속 세상이 더 아름다운 곳이라는 인솔자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인솔자는 바다속 리프(암초)를 따라 가며 스노클링을 하면 된다고 알려줬는데, 새파란 불가사리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따라다니다 갑자기 시커먼 낭떠러지 절벽이 나타나 깜짝 놀랐다. 리프 끝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흙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 까만 바다는 너무나 조용하고 깊어서 두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저 깊은 곳에 무엇이 있을지 몹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아마 다이버들도 끝없이 내려가고 싶은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심연으로 들어간 <그랑블루>의 주인공들처럼. 전문 다이버들은 부나켄 섬과 마나도 베이와 면하여 있는 다이빙 지역을 비롯, 동쪽의 렘베 해협과 상히에 섬의 백 여개 지역에서 다이빙 파라다이스를 즐길 수 있다. 특히 고속페리로도 6시간이 걸리는 상히에 섬에서는 바다 속 화산을 경험할 수 있다. 그 화산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해저 활화산이라니, 말만 들어도 신비로울 뿐이다.


1 가드니아 리조트에 있는 빌라의 모습
2 스쿠버다이빙을 위한 산소통도 배에 함께 실려간다.
3 라우어 레스토랑에서 먹은 통통한 살이 한가득인 생선구이와 삼발소스

■미나하사 하이랜드 투어를 떠나다

마나도는 아직 스쿠버다이버들 외에는 일반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 아니고, 제대로 된 여행 정보도 쉽게 찾을 수가 없어 좀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는 마나도 내의 현지 여행사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한 방법인데, 여러가지 투어 중 가장 인기있는 것이 바로 '미나하사 하이랜드 투어(Minahasa Highland Tour)'다. 미나하사인들의 전통과 생활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투어로 마나도 시티를 출발, 울로안(Woloan)과 토모혼(Tomohon) 도시를 거쳐 다시 마나도로 돌아오는 하루 일정의 투어다. 울로안 마을에 도착하면 미나하사인들이 전통 방식으로 지어온 가옥들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집들은 판매를 위해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울로안 마을은 이 전통 가옥을 만드는 마을로 유명하다. 아이런 우드(Iron Wood)라 불리는 '철나무'로 집을 짓는데, 철나무는 이름처럼 내구성이 강해 드릴로 구멍을 내야할 정도로 단단하고, 100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천연 방부목이다. 지진에도 견디는 나무라 세계 곳곳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톤다노(Tondano) 호수에 있는 라우어(Lour)레스토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는 깜짝 놀랄 만한 경치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즐겨먹는 이곳의 생선 요리와 삼발 소스도 마나도에서 먹어본 음식 중 최고였지만, 그 미각을 한껏 돋워준 것은 바로 레스토랑 뒤쪽으로 펼쳐진 톤다노 호수의 절경. 흐린 날씨의 드라마틱한 구름이 호수 위에 그대로 유영하면서 마나도 최고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거칠고 메숲진 산비탈을 올라 도착한 토모혼 도시에서는 호수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리노(Linow) 호수도 거닐었다. 옥색의 탁한, 물 속을 잘 볼 수 없는 이 호수는 전체가 뜨뜨미진근한 온천수라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 하루에도 서너번씩 물의 색이 변하는 이곳은 미나하사인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토모혼 도시는 곳곳에 항상 꽃이 만발해 있어 '꽃의 도시'라 불리는 동시에 북술라웨시의 유일한 활화산인 로콘(Lokon)이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로콘 산이 바로 앞산처럼 내다보이는 가드니아 리조트(Gardenia Resort)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열대의 꽃들과 울창한 밀림이 우거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코스타리카의 아레날 화산지역으로 떠났던 여행이 떠올랐다. 화산 위에서는 한낮에도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새빨간 꽃들이 눈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비슷한 풍경에 순간 이곳이 인도네시아가 아닌, 코스타리카의 내륙 어딘가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솔직히 이번 여행에 동행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지역의 열악한 관광 시설과 환경에 실망하고 있었다. 이곳은 쿠션감이 좋은 킹 베드와 잘 차려진 조식, 럭셔리한 라운지와 볼거리 가득한 관광지를 원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이곳의 자연은 소박하고 도시는 빈약하다. 외국 관광객조차 거의 없어 다니는 곳마다 빤히 쳐다보는 현지인들의 눈총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선하고 웃음은 착하다. 아직 관광지로 때묻지 않은 이곳에서 사람들의 웃음에 미소 짓고, 온화한 호수 앞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개인적으로는 실망보다는 감사할 일이었다. 마나도가 많은 여행객들에게 두루 인기있는 관광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이 순수한 자연과 바다가 지속되는 한, 탐험을 위한 다이버들과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은 계속해서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인도네시아 마나도 글·사진=이동미(Travie writer)


▶가는 방법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을 이용해 수도 자카르타를 경유, 마나도까지 갈 수 있다. 자카르타까지 6시간, 자카르타에서 마나도 국제공항인 삼라투랑기(Sam Ratulangi)까지는 3시간의 비행시간이 소요된다. 매일 1일 1회 운항하며, 자카르타에서 마나도 편 비행기는 매일 2회 운항한다.

▶기후
열대몬순기후에 속하며, 한 해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뉜다. 11~4월까지는 우기, 5~10월까지는 건기다.
▶시차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고, 수도 자카르타와 수마트라는 2시간이 느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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