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을 멍하니 텔레비전에 빼앗기는 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꽃할배’처럼 보고 싶은, 혹은 일 때문에 봐야만 하는 프로그램은 다운로드(물론 돈을 지불한다) 받아 보고, 뉴스는 DMB나 신문기사로 접한다. 그래도 세상에 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텔레비전에서 시작되는지라, 요즘 텔레비전에서 뭐가 유행이고 화제인지 사람들과 조금만 대화를 하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렇게 알게 된 이야기 중 하나. 요즘 SBS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에선 ‘아몬드’가 화제란다. 한 아몬드 회사에서 그 드라마를 협찬했는데, 주인공들이 너무 자주 아몬드를 먹고, 아몬드 예찬론을 펼치는 통에 내용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사람까지 나온 모양이다. 예를 들면 남녀 주인공이 샐러드를 만들어 먹다가 갑자기 아몬드를 꺼내 샐러드에 넣으면서 ‘아몬드는 다이어트에 좋아’ ‘나는 아몬드를 꼭 챙겨먹어’ 같은 대사를 하는 식이라고. 기자 역시 콘텐츠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드라마 제작 때 협찬을 받는 일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민망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더 자연스럽게,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세련된 표현’은 요즘 여행업계의 화두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똑똑해짐에 따라 더 이상 ‘정보’로 소비자를 유혹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여행사들이 ‘스토리텔링’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특히 적극적인 여행자들이 몰리는 자유여행 시장, 정보를 얻기 쉬운 유럽여행 시장에서 강하게 일고 있다. 배낭여행 전문 업체 신발끈여행사 역시 비슷한 한계를 느끼고 현재는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를 한 번에’라는 콘셉트의 상품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 미주 현지에서 진행되는 외국인 투어 프로그램에 고객을 합류시키는 상품인데, 컴플레인 발생률이 0%에 가까울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유럽 패키지 시장에서는 참좋은여행이 ‘감성마케팅’으로 매출을 대폭 올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너도나도 ‘감성 입히기’ 작업에 나서는 모양새다.

여행업계가 변하는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상품에 스토리를 입히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아몬드 사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남들이 하니까 나도’식으로 무작정 시도하기보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스토리텔링을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고서령 기자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