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업계 ‘인력 빼가기’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신규 인력을 교육해 실무에 투입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거나 이직해버리기 일쑤. 남는 자 보다 그만두는 자가 많다보니 인원은 항상 부족하다. 서울 시내 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할 만큼 각 노선 전문지식을 필수로 요하기 때문에 그만한 인원을 충원하기도 쉽지 않다. 성수기를 앞두고 당장의 매출을 늘리려 상도의를 벗어난 인력 빼가기도 발생한다. 10월29일 현재도 채용사이트를 통해 여행사 FIT 경력자 구직 광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편집자주>
-시간·비용 들여 인력 양성하면 이직 비일비재
-돈·복지·회사 브랜드 등 이직이유도 다양해
-전문여행사에 손벌리는 대형사…상생은 어디로
-돈·복지·회사 브랜드 등 이직이유도 다양해
-전문여행사에 손벌리는 대형사…상생은 어디로
A 사원은 FIT를 전문으로 하는 한 중소 여행사 입사 후 3년 차가 됐을 때 어느 정도의 물량을 수월히 조율 할 능력이 됐다. 그리고 출장과 행사 참석의 기회가 많아졌다. 여러 자리에 다니다 보니 각 여행사 유럽 담당자 및 팀장들과도 친분이 쌓였다. 특히 한 홀세일 여행사 팀장이 적극적인 호의를 보였다. 어느 날 그 팀장에게 연락이 와 시간이 괜찮으면 술 한잔하게 자신의 회사로 오라고 했다. 대뜸 회사구경을 시켜주고 술자리로 옮기자 달콤한 제안을 했다. “너 지금 이정도 연봉 받지? 얼마만큼 올려줄게. 같이 일해 볼래? 생각해봐”
인력 양성 자체가 어려운 전문가
FIT 담당자. 알아야할 것이 많다. 고객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해진다.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들은 FIT 담당자에게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한다. 상담 중 인터넷에 있는 정보조차도 모르고 있다면? 고객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문의는 곧 다른 여행사로 이어진다. 특히 장거리 노선 담당자들은 끝없이 공부해야한다. 한 나라의 한 도시만을 담당하지 않는다. 유럽 만해도 수십개의 국가에 수백개의 도시가 있다. 각 도시로 취항하는 항공사는 무엇이 있으며, 각 항공사들이 제공하는 클래스별 요금을 대략 머릿속에 정립해야한다. 고객과 상담하며 원하는 출발 날짜에 맞춰 GDS 검색을 통해 최상의 스케줄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쩌면 담당지역 항공사 정보는 카운터 담당자보다 더 알아야한다.
그 뿐이랴. 많게는 10개이상의 국가와 도시를 여행하겠다고 한다면 각 도시별 이동 수단 또한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한다. 대략적인 이동 시간까지도 제시한다. 도시별 숙박정보와 관광지로의 이동방법도 꿰차고 있어야한다. 시간이라도 많다면 괜찮다. 천천히 하면 된다. 그러나 담당자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최대한 빠르게 일정과 금액을 제시해야한다. S여행사 FIT 유럽팀 팀장은 “담당자의 능력이 곧 회사의 실적과 이어진다.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상담하고 일정을 제시하느냐, 또한 한 번에 얼마나 많은 물량을 다룰 수 있느냐가 곧 담당자의 능력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알아야할 것도 많고,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한 사원이 일정 수준까지 능력이 올라오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비단 유럽뿐만 아니라, 미주, 남태평양,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각 노선 FIT 담당자는 일정 수준까지 업무 능력이 올라오는데 최소 수개월에서 몇 년이 필요하다.
‘양성’의 산을 넘고 나면 ‘이직’이라는 산
문제가 그뿐이라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교육 시키면 된다. 간단한 문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일정 부분 업무 능력이 올라오기 전 그만두거나 타 팀으로 옮겨가버리기 때문이다. “FIT업무는 일도 많을뿐더러 계속된 전화 상담으로 신입사원들이 초반에는 버거울 수 있다. 그 시간을 이겨 내야하는데 한 번의 여름 성수기를 겪고 나면 태반이 그만둔다. 아니면 인사팀과 상담한 후 타 팀으로 재배치 받는다. 이러니 신입사원 키우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고 B여행사 팀장은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직이다. 최근 이직한 A 사원의 사례가 어쩌면 FIT 업계에서 비일비재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3년 차급 사원에게 돈은 크다. 가뜩이나 평균 연봉이 낮은 편인 여행업계에서 당장의 몇 백만원은 크게 다가온다. 중소 FIT 전문 여행사에서 홀세일 또는 직판 여행사 등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가장 흔한 사례다. 돈, 회사의 브랜드 가치, 타 회사 직원과의 친분 등은 이직의 주요 이유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간다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다. 한 여행사 FIT 팀장은 “후배에 애정을 갖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열심히 교육시키고, 이제 일할 만한 자원이 됐는데 이직해버린다고 하면 정말 허무하다. 조직 입장에서도 큰 손해다. 교육을 다 받은 사람이 나가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업무 공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시키기도 싫어진다. 이런 일들이 FIT 업계에서 비일비재하니 신규 인력 양성에 소극적이고, 나 조차도 인원보충은 다른 여행사에서 데리고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해버린다”고 말했다.
서로가 피해…그런데도 왜?
그렇다면 회사입장에서는 기껏 양성한 사원의 이직이 큰 타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회사의 사원에게 이직을 권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Y여행사 FIT 팀장은 “다른 여행사 2~3년차 급 사원에게 이직을 권유하며 제시하는 연봉의 비용이 신입사원을 뽑아 2~3년차 직원으로 만들기까지의 비용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형 여행사의 경우는 오히려 신입사원 초봉이 중소 FIT 전문여행사 2~3년차 급 사원의 연봉보다 높은 경우도 있다. N여행사에서 L여행사로 이직한 B사원은 “더욱 많은 연봉을 제시받고 회사를 이직했으나, 이 회사의 공채 신입사원 초봉이 나보다 높다는 것을 알았다. 내 능력을 보고 이직을 권유했다고 생각해 뿌듯했으나, 물건으로 쳤을 때 회사입장에서 나는 일명 ‘가성비’가 좋은 것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불어 바로 경력직 사원을 실무에 투입하면 매출실적 상승이라는 결과를 바로 얻어낼 수 있다. 한 직판 여행사 FIT 팀장은 “예를 들어 네 명으로 구성된 팀에서 100만원이 각자가 올릴 수 있는 매출의 한계치라고 봤을 때 한 명을 더 뽑는다면 당장에 400만원의 매출이 500만원이 될 수 있다. FIT 매출은 인력에서 나온다. 인원이 늘면 매출도 오른다. 한명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장의 매출 상승효과를 신입사원에게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 인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형 여행사부터 직접 양성에 나서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FIT를 전문으로 하는 중소 여행사는 임직원 단속에 바쁘다고 하소연이다. 몇몇 여행사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대리급 이하의 직원에게는 행사참석의 기회를 주지 않으며, 출장의 기회도 제한한다. 최대한 타 회사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는 것이다. 한 중소여행사 대표는 “몇 년 전 성수기를 앞두고 모여행사에서 팀장급 임직원을 빼가 피해가 심각했다. 그해 매출이 전년대비 매우 줄었다. 상도의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FIT 인력 유치 경쟁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마땅한 대책도 없을뿐더러, 여행업계 전체의 연봉, 복지 등의 임직원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을 제시하는 여행사로의 이동은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L 여행사 인사팀 팀장은 “임직원이 이직을 하겠다는 이유는 대부분이 돈과 복지와 관련한 문제다. 어차피 여행사 일은 거기서 거기다. 더 나은 근무조건, 복지정책, 인센티브 제 등 인력 빼가기 문제를 해결할 자구책 마련이 시급한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한 FIT 전문여행사 대표는 홀세일, 직판 여행사의 인력 빼가기 행태를 지적했다. 이 대표는 “전문 여행사에서 없는 돈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인력을 만들어 놓으면 브랜드 파워와 돈을 앞세운 홀세일과 직판 여행사에서 인원 빼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직원에 투자할 여력은 홀세일과 직판여행사가 더 많다. 직원 빼가기로 큰 타격을 입는 건 우리와 같은 전문 여행사다. 회사의 판매 전략도 함께 빠져나간다. 서로 상생하며 같이 커나가자면서 이게 어딜 봐서 상생인 것이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신지훈 기자 jhshin@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