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이 붐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2000년대 초 이야기다. 대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너도나도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은 곧 배낭여행’이었다. 그게 트렌드였다. 배낭여행을 전문으로 내걸은 여행사도 많았다. 배낭 여행사들의 춘추전국시대였다. 트렌드는 변하는 법이다. ‘유럽=배낭여행’이란 공식도 깨진지 오래다. 배낭여행 전문여행사를 표방했던 여행사 대부분이 기울었다. 배낭여행사가 살아나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 <편집자 주>
 
-한때 대형여행사 앞선 항공 점유율
-1세대 배낭여행사 대표 결국 매각
-자유여행시장 이끌 무기는 ‘전문성’
 
자유여행 부흥 이끈 배낭여행사
 
1990년대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여행 트렌드는 ‘배낭여행’이었다. 대학생, 직장인 할 것 없이 여름, 겨울 시즌에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나의 유행과도 같았다. 으레 방학이면 배낭여행을 가야만 할 것 같은 게 당시의 분위기였다. 01학번 한 여행사 관계자는 “당시 우리 과의 정원이 20여명이었다. 절반 이상이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03학번으로 여행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유럽을 도는 22일 동안 학교 동기 세 명을 만났다. 모두가 따로 여행을 온 것이었다. 그만큼 배낭여행은 인기였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에 정보가 넘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수 십 여일 배낭여행을 떠났다. 배낭여행자들을 이끌었던 건 ‘배낭 자유여행 전문 여행사’다. 당시 이들 여행사의 상품은 획기적이었다. 단체지만 자유여행을 표방했으며, 자유여행이지만 인솔자가 있었다. 호텔팩, 단체배낭팩들이 바로 그것이다. 배낭여행 부흥기를 이끌던 여행사에 근무했던 한 여행사 부장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면 으레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나 또래로 이뤄진 그룹이 단체로 움직인다는 점, 상품에 따라 그룹을 이끄는 인솔자가 있다는 점이 부모를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여행사들은 여행에 필요한 항공과 숙소, 유럽 배낭여행의 필수품인 유레일패스 등을 준비해줬다. 정보전달을 위해 배낭여행 설명회도 개최했다. 이들이 개최하는 설명회에는 수백명씩 학생들이 몰렸다. 당시 잘나간다는 배낭 여행사들은 극장을 대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배낭 여행사들은 방학시즌이면 수천명의 학생들을 송출했다. 유럽 외항사들의 실적 상위에는 배낭 여행사들이 자리 잡았다. B항공 관계자는 “당시 송출인원이 대단했다. 배낭 여행사들은 중소여행사다. 그럼에도 여름시즌에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등 대형 패키지 회사와 견줄만큼 실적이 좋았다”고 말했다. 당시 배낭 여행사들에 호텔을 공급했던 K여행사 관계자는 “해외 본사에서도 여름 방학시즌이면 이들이 달성하는 실적에 놀라곤 했다. 호텔 점유율이 대단했다”고 밝혔다. 여행 전문지들도 여름 성수기를 전후해 이들의 실적과 동향을 전하기 바빴다. 
 
배낭 1세대의 몰락
 
트렌드는 변했다. 인터넷엔 정보가 넘쳐나고,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도 쉬워졌다.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도 배낭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다. 부모들의 인식도 변했다. 유럽은 더 이상 위험하고 먼 나라가 아니다. 배낭여행을 전문으로 했던 여행사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배낭 여행사들도 업종을 변경하거나 이전 또는 폐업했다. 

대표 배낭 여행사였던 A여행사는 지난 7월부터 부도설이 이어지고, 결국 배낭여행 1세대로 불리던 대표가 회사를 매각하며 물러났다.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한 때 유럽여행의 트렌드를 이끌던 이들이 몰락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이 여행사는 한 때 전국에 지사를 개설하고 서울에만 두 개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등 배낭여행 전문사로 입지가 대단했다”며 “자유여행을 전문으로 운영을 잘 해왔지만 대표는 사업에서 철수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강남에 위치했던 B여행사도 강남권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강북으로 이전했다. 사업도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진했던 노선의 상품판매는 중단하고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도 대폭 정리했다.

강남에 위치한 C여행사는 주력 사업을 변경했다. 배낭여행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어려워진 시장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변화를 시도해나가는 중이다. 이 여행사는 유럽과 일본 지역의 일부 호텔들을 모아 B2B 및 B2C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자유여행 상품 판매 외 채널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제2의 도약 위해선 ‘전문성’ 강조
 
배낭여행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이들에게 시장의 변화는 혹독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여행사들은 자유여행을 전문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대형 여행사에 밀리고, OTA에 밀리고, 인터넷에 밀리고 있다. 

결국 전문화다. 20여 년간 쌓아온 풍부한 노하우와 경험은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맞춤여행 등은 대형여행사도, OTA도 해줄 수 없는 것이다. B여행사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일정대로 구성해 단 하나뿐인 일정을 제공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며 “최근 고객들이 많이 똑똑해졌다고 하지만, 전문여행사만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도시는 굉장히 많은데다, 아직 소개되지 않은 곳도 많다. 고객보다 앞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A여행사는 콘텐츠 강화에 나섰다. 전문성을 강조하고 홍보할 수 있도록 SNS를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임직원들의 끊임없는 출장을 통해 여행지를 개발하고 연구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즉, 고객보다 한발 앞선 정보는 이들이 가지는 최대 무기다. 한 자유여행사 관계자는 “솔직히 A여행사의 블로그를 자주 본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 유용하다. 하물며 고객들은 어떻겠는가. 블로그를 통해 전문성을 강조하니 고객은 자연스럽게 이 여행사를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배낭여행이 쇠퇴했다고 해서 이들 여행사가 끌어들일 수 있는 수요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앞서 밝힌 배낭 여행사만이 지닌 강점은 자유여행 수요를 끌어들이기에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강조한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내일투어의 경우가 배낭여행사가 성장한 좋은 예다. 시장이 변하며 자신들의 전문성을 강조해 자유여행 수요를 대거 끌어오며 성장할 수 있었다”며 “배낭 여행사들이 가진 데이터베이스와 전문성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난다고 하지만, 여행사의 전문적인 상담 없이는 진행하기 힘든 여행은 여전히 많다. 수요도 충분하다. 제2의 배낭·자유여행사의 도약의 기회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신지훈 기자 jhshi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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